가정에서 배운다

김윤경 글 쓰는 엄마 / 기사승인 : 2021-01-07 00: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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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일기

계단 내려갈 때 주머니에서 손을 빼라는 건 아빠에게 배웠다. 화장실을 참으면 안 된다는 건 엄마에게 배웠다. 신호등을 잘 보고 건너라는 건 두 분 다 강조하셨다. 초록불로 바뀌어도 바로 건너지 말고 이쪽저쪽 보고 건널 것, 신호를 기다릴 땐 두세 걸음 뒤에 서 있을 것, 급하게 서두르다 사고 나기 쉽다는 것. 잘게 나눠서 말할 만큼 신호등은 중요했다. 내가 대학생이 되어 활동반경이 넓어지자 신호등 주의는 더 자주 들었다. 요즘엔 운전 조심하라는 말을 듣는다.


따뜻한 물을 자주 마시라는 건 아팠던 아빠에게 배웠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는 건 우울과 불면을 세트로 겪었던 엄마에게 배웠다. 배움은 내 삶에 물들었다. 여름에도 냉장고에 물을 넣어두지 않는다. 살면서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순 없고 되도록 털어내려고 한다. 


내가 배웠던 것을 아이들에게도 전수한다. 계단을 내려갈 때, 화장실 갈 때, 횡단보도 건널 때 인용한다. 자리에 앉아서 밥 싹싹 먹기, 잘 먹었습니다 인사하고 스스로 싱크대에 넣기는 내가 강조하는 것들이다. 남편은 아이들에게 싸우고 나서 화해하는 걸 강조한다. 싸우더라도 욕하거나 폭력은 안 된다는 건 우리 부부의 공통된 가르침이다. 


큰애가 학교에 가더니 욕을 배워왔다. 그 욕을 동생에게 써먹었다. 싸울 때 ‘임마, 새끼’에 ‘죽어’라는 말도 곁들여서 주고받는다. 보고 있으면 가관이다. 욕은 폭력을 불러오기 쉽다. 막장 드라마처럼 머리를 잡거나 발로 찬다. 작은애는 발로 차고 도망가는 게 고작이고 큰애는 쫓아가서 동생 머리카락을 쥐어뜯는다. 우리 집 흑역사다.


“욕을 대신할 말이 있을까?” 아이들에게 물었다. ‘임마, 새끼’는 대체할 말이 안 떠오른다. ‘죽어’는 여러 가지 대안이 나왔다. “나빠”, “하늘나라에 가라”, “지옥에 가라”, “난 네가 없었으면 좋겠어”가 후보에 올랐다. 내가 그중에서 “나빠”가 좋겠다고 말하자 심드렁한 반응이다. 아이들의 동심은 어디 갔나. 폭력과 욕을 쓰지 않으면서 싸우는 방법을 찾아가는 중이다. 앞으로 배워오는 욕은 점점 많아질 텐데 어떡하지. 


마음만은 신혼 11년차인 우리 부부가 다퉜다. 추운 날에 산에서 놀았던 것이 불씨였다. 애들은 나무막대기로 얼음을 깨면서 놀았다. 남편이 이제 그만 집에 가자고 했다. 애들은 더 놀고 싶어 했고 나는 애들을 지지했다. 남편은 차에 먼저 타고 우리는 더 놀았다. 남편이 빨리 오라고 손짓했다. 이제는 진짜 가야 했기에 애들과 차에 탔다. 돌아오는 길에 남편은 잔뜩 화가 나 있었다. 집에 와도 춥다며 열을 재고 이불을 꽁꽁 싸매고 누웠다. 애들이 아빠는 예민해지니까 이제 집에 두고 다니자고 했다. 


다음 날 아침, 남편이 간밤에 라면 두 개를 끓여 먹은 흔적을 발견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부터 내내 눈치를 봤던 것과 연결되면서 뭔지 모를 배신감을 느꼈다. 쾌차한 남편에게 뾰족하게 굴었다. 애들은 이 상황을 보고 “엄마가 아빠를 혼낸다”, “안녕 자두야 만화에 나오는 엄마 같다”, “엄마 아빠가 이혼할까 봐 무섭다”고 말했다. 서로 화해하고 나서 큰애에게 물었다. “엄마 아빠가 다투는 거랑 너희가 다투는 거랑 뭐가 달라?” 큰애의 대답은 총평 같았다. “엄마 아빠는 욕이나 폭력을 안 쓰고 그냥 말로만 싸워.” 나는 안도함과 동시에 후회했다. 주말 오전 시간을 공포 분위기로 만든 것을 후회했다. 애들은 두고두고 목격담을 말할 것이다. “그때 엄마 아빠 싸웠잖아”하면서 말이다. 말로만 싸우는 것의 예시였음에 안도해도 될까. 애들아 말로만 싸우는 것은 이런 거란다. 아니다. 후회가 더 크다. 비난하지 말고 둥글게 싸워야 좋은 예시가 될 거다. 그러고 보니 우리 부부 둘 다 이건 자라면서 배우지 못했다. 배우지 못했어도 익혀야 한다. 부모가 됐기 때문에. 


김윤경 글 쓰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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