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NA 백신과 카탈린 카리코 이야기

권춘봉 이학박사 / 기사승인 : 2021-10-18 00: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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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자연과학

필자가 이 지면에서 코로나19에 관련된 글을 쓰면서 백신의 개발과 개발 절차, mRNA 백신의 배송을 포함한 관련된 모든 것들의 패러다임이 너무나도 빨리 변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래서 예상했던 것이 한 가지 있다. 올해 생리학 또는 의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을 한 사람에게 주는 노벨 생리·의학상을 ‘이 사람’이 받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 사람’은 ‘카탈린 카리코’다(사진). 카탈린 카리코는 그의 전 동료 드류 바이스만 (Drew Weissman)과 함께 합성 mRNA를 이용하는 방법을 개발한 과학자다. 현재 코로나19 사태에서 사용하는 모든 mRNA 백신은 카탈린 카리코와 바이스만이 발견한 RNA 변형 방법을 사용한다(Karikó et al., 2005). 


노벨재단에서 수상자 후보를 공표하지는 않지만, 매년 노벨상 수상자 발표에 앞서 수상 후보나 분야에 대한 예측이 이어진다. 비단 필자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위 두 사람의 생리의학상 수상 가능성을 높이 점쳤다. 하지만, 지난 10월 4일 발표된 생리의학상은 고추의 캡사이신을 이용해 온도와 촉각을 느끼는 수용체를 발견한 미국 캘리포니아대 생리학자 줄리어스 교수(David Julius)와 미국 스크립스연구소의 신경과학자 파타푸티언(Ardem Patapoutian)에게 돌아갔다. 왠지 모를 아쉬움은 그녀의 연구 인생을 조금 알기 때문일까?

 

▲ 사진: A.1978년, B.박사후 연구원, C.mRNA 백신 접종 모습

카탈린 카리코는 1955년 헝가리 솔노크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에 과학자를 본 적이 없지만, 그의 아버지가 도축한 피 묻은 돼지 사체들을 주의 깊게 살펴봄으로써 과학에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뉴욕포스트 인터뷰). 그는 1976년 헝가리 세게드대학의 생명과학 수업에서 mRNA를 처음 접했다. <뉴욕포스트>지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가 대학 공부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항상 다른 학생들보다 뒤처져 있다고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1975년, 1976년, 1977년, 세게드대학의 학생 저널에는 당시 학생이었던 카탈린 카리코가 두 가지의 장학금을 받은 기사가 나온다. 이 재정지원은 우수한 학업 결과를 이룬 학생들에게 주는 장학금이었다. 


mRNA 연구에 매력을 느껴 1978년, 그는 생물물리학 연구소의 염기 화학 연구실에서 박사학위를 시작했다. 당시는 3~4개의 핵산(뉴클레오타이드, nucleotide: DNA, RNA의 구성단위가 되는 저분자 화합물)으로 구성된 매우 짧은 RNA 단편만을 화학적으로 합성할 수 있었고 이들 분자에 대해 항바이러스 활성을 조사했다. 단백질을 만들 때 정보를 제공하는 mRNA는 이보다 훨씬 더 길며 각각 수백 및 수천 개의 핵산을 포함한다. 당시에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RNA 중합효소를 아직 합성할 수 없었기 때문에 mRNA를 만들 수 없었다. 


5년 후 1982년, 그는 ‘항바이러스성의 짧은 RNA 분자의 합성과 적용’이라는 연구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그곳에서 1985년 30세까지 일하고 해고됐다. 그 후 미국 필라델피아 템플대학교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일하기 위해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가게 된다. 그들의 차를 암시장에서 1200달러에 팔고 당시에는 현금을 국외로 반출하는 것이 불법이었기 때문에 두 살 된 어린 딸의 테디베어 인형에 돈을 넣어 미국으로 향했다. 미국에서도 7년간의 박사 후 연구원 시절을 보내며 3개의 대학을 전전하다 1990년 펜실베니아대학교로 직장을 옮겨 조교수로서 연구생활을 지속했다. 


연구는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다. mRNA 연구를 위해 보조금을 신청했지만 번번히 거절당했다. 동료들로부터는 mRNA 연구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을 받았고, 연구 성과 부진으로 대학에서는 mRNA 연구를 포기하거나 직위와 연봉을 대폭 삭감하거나 둘 중 하나를 강요받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6년 만에 교수직에서 연구원으로 돌아와 연구했다. 무엇을 포기하지 않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1995년에는 설상가상 암까지 걸리고 만다. 그러다 면역학자인 드류 바이스만 박사를 만나게 됐다. 바이스만 박사는 카리코에게 공동 연구를 제안하고 2005년, 현재 mRNA 백신의 작동원리 중 가장 중요한 핵심 단서를 처음으로 보여준 논문을 공동으로 출판했다. 이 논문을 출판하면서 그는 드디어 여러 연구자에게 인정받게 됐고, mRNA를 백신과 치료제로 사용하려던 그의 연구가 가능성이 있음을 확신하게 됐다. 


그는 2012년 커리코와 와이즈먼은 mRNA의 항바이러스 면역 반응을 줄이기 위한 뉴클레오사이드 변형 이용법에 대한 특허를 출원하고 작은 회사를 설립했다. 2014년 독일 바이온테크와 모더나 회사에서 영입 제의를 받고, 25년간의 대학 연구환경을 떠나 독일 바이온테크사를 택해 이 회사에서 현재까지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이 회사가 바로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화이자 백신을 만든 회사다. 그가 고독하고 외로웠던 연구의 터널에서 mRNA를 손 놓아 버렸다면 오늘날 mRNA백신 개발은 가능했을까? 


2021년 노벨 생리·의학상에 mRNA 백신 개발에 큰 기여를 한 카탈린 카리코 박사와 드류 바이스만 교수가 배제된 것에 미국 보스턴대 엘리 머레이 교수와 워싱톤대학교의 알렉시 머츠 교수 등이 의문과 불만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노벨위원회도 10월 7일 <네이처>지를 통해 “mRNA 백신이 인류에게 엄청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 것은 인정한다. 팬데믹에 대한 긍정적인 영향이 완전히 명확해지기 전에 노벨상 생리·의학상 수상자가 정해졌다”는 취지의 입장을 나타냈다. 이는 이들이 충분한 자격은 있지만 노벨상 수상은 아직 이르다고 보는 것이다. 과학 분야 노벨상은 충분한 시간 동안 검증이 이뤄진 연구 업적에 주어진다. 2019년 노벨화학상의 수상자인 존 B. 구디너프(미국), 스탠리 휘팅엄(영국/미국), 요시노 아키라(일본) 교수의 수상이 그 예다. 이들은 1980년대 리튬 이온 배터리 개발에 공헌했다. 근 40년이 지난 후에야 업적을 인정받았다. 이런 전례를 보면, mRNA 백신 연구 역시 효과와 안전성에 대한 입증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타당한 것 같기도 하다. 


카탈린 카리코 박사는 연구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많은 고난을 겪었고 그가 가진 직업윤리와 집중력으로 많은 것을 극복했다고 평가받는다. 현재 66세인 그가 언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게 될지는 누구도 모른다. 2020년 <뉴욕포스트>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나는 내가 가진 것과 사는 곳과 하는 일을 좋아합니다. 나는 매일 바쁩니다. 앞으로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권춘봉 이학박사

※ 참고
김우재의 보통과학자, mRNA 백신과 진화, 2021. 동아사이언스 https://www.dongascience.co m/news.php?idx=48643
https://bttpet.com/128/?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 ode=view&idx=5516196&t=board
Karikó, K., Buckstein, M., Ni, H., Weissman, D., 2005. Suppression of RNA recognition by Toll-like receptors: the impact of nucleoside modification and the evolutionary origin of RNA. Immunity, 23(2), 165-175. 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pii/S107476 1305002116
세 개즈 대학 홈페이지 https://u-szeged.hu/sztehirek/2020-aprilis/koronavirus-elleni?objectPa rentFolderId=25255
뉴욕포스트 https://nypost.com/2020/12/05/this-scientists-decades-of-mrna-research-led-to-covid-vacci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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