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항일혁명운동가 이관술”과 함께 했던 지난 1년을 마무리한다 - 일제강점기 후반부를 뒤흔든 항일 독립운동가 학암 이관술(46)

배문석 / 기사승인 : 2022-06-22 00: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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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시작했던 때가 2021년 4월 12일이었다. 총 46회로 ‘이관술’의 생애를 기록하는 기획연재를 마치는 데 14개월이 걸렸다. 처음엔 이렇게 오랫동안 연재를 이어가게 될지 가늠하지 못했다. 그저 울산에 뿌리를 뒀던 비운의 독립운동가를 잘 알리고 싶다는 마음에서 출발한 후 되도록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 애쓴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겨졌다.

연재 기획 당시 ‘이관술’ 서훈 불발

2019년 4월 24일, 독립운동가 이관술의 명예를 회복하고 그 뜻을 기리기 위해 만든 기념사업회가 발족했다. 그보다 10년 전 한 차례 시도했지만 때가 영글지 못했다는 판단으로 몇 번의 초동 모임을 가진 후 기약 없이 뒤로 미루다 결실을 맺은 날이었다.


너무도 선명한 독립운동 족적을 밟았던 이관술이지만 해방 후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학살당했기 때문에 기념사업회 결성조차 쉽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는 오랜 기간 이념 갈등과 희생 그리고 ‘빨갱이’라는 붉은 낙인의 트라우마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후손들은 기념사업회를 만들고 난 뒤에야 국가보훈처에 독립운동 유공자 서훈을 정식으로 신청할 수 있었다. 촛불혁명으로 세상이 바뀐 후였고,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에 대한 공훈 인정이 너그러워진 때였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너무도 황망했다.


유공자 심사를 보류한다는 결정서에는 그 이유를 1948년 8월 남북한에서 동시에 선거를 통해 뽑은 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명단에 이관술이 들어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당시 이관술은 소위 ‘정판사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받고 대전형무소로 이감돼 갇혀있던 때였다. 어떤 정치적 행위를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상징적으로 선출 명단에 이름이 올려진 것으로 보인다. 국가보훈처는 이를 문제로 삼아 보류한 것인데 왠지 회피와 변명으로 느껴졌다.


보훈처 심의위원들도 이관술이 북한 정권을 위해 어떤 행위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음을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이관술을 국가유공자로 서훈하게 된다면 당시 야당과 보수 세력들의 문재인 정부에 대한 공격이 거세졌을 것이란 게 주된 원인으로 작용했으리라 짐작된다. 이관술 유족들의 서훈 신청에 1년 앞서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손혜원의 부친 손용우가 서훈을 받았다. 이를 두고 당시 야당은 남로당 활동 경력이 있는데도 특혜를 줬다면서 맹공을 펼쳤다. 결국 그런 논란은 이관술을 비롯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에 대한 예우를 다시 한번 주춤하게 만들었다.
 

▲ 2021년 8월 15일 방영된 MBC 다큐프라임 <불굴의 항일투사 학암 이관술>

계속 커지는 이관술 명예 회복 목소리

이관술의 서훈심사 보류 결정과 별개로 명예 회복을 위한 다양한 목소리가 계속 커져왔다. 안재성 작가가 쓴 <이관술 1902-1950> 평전 이후 여러 역사서에 이관술과 항일혁명 동지들의 이름이 언급돼왔다. 2019년 4월 임성욱 박사가 쓴 <조선정판사 ‘위조지폐’사건 연구>가 대중서로 발간된 것이 이관술의 명예 회복에 큰 기여를 했다. 이미 학계에서는 해방 후 이관술을 감옥에 가뒀던 정판사 사건이 조작된 사건이라는 게 통설로 자리 잡고 있었는데 이를 확실하게 정립한 이론서였다.


언론도 그런 변화를 반영하기 시작했다. 연재가 시작된 뒤 8월 15일 광복절을 기념해 MBC 다큐프라임에서 이관술의 생애를 다룬 기획방송을 전국에 방영됐다. 울산 지역 공중파 TV에서도 이관술과 친일경찰 ‘고문왕’ 노덕술을 대비시킨 기획방송을 내보냈다. 인터넷 백과사전인 여러 ‘위키’에 이관술이 걸었던 독립운동과 행적이 새롭게 조명되거나 잘못 알려졌던 내용들이 수정돼 반영됐다. 그런 변화에 45회 동안 연재해왔던 울산저널의 이관술 기획 기사도 한몫하고 있다.


이관술 생가가 있는 울주군 구영리 입암마을을 찾는 시민들의 발걸음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작년 4월에는 전국에서 이관술을 찾아 모인 이들이 생가 근천에서 추념식을 올리기도 했다. 역사기행이란 이름으로 입암마을을 찾는 시민들도 늘어났다.


이런 변화는 고스란히 후손들에게도 전달되는 법이다. 존경받을 독립운동가 선조를 뒀지만 오히려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시절이 더 많았던 후손들 아닌가. 친손 외손 구분할 것 없이 강제로 침묵해야 했던 상처를 이겨내고 서로 위로를 건네고 용기를 낼 수 있을 만큼 나아졌다.
 

▲ 2021년 4월 17일, 학암 이관술 선생 71주기 추념식. 입암마을 생가 앞.

울산으로 돌아온 이관술의 유품

이관술이 남긴 유품은 매우 비밀스럽게 보관돼왔다. 일제강점기에는 일제 경찰의 감시를 받았고, 해방 후에도 반인권적인 연좌제에 시달렸던 후손들이 숨겨온 것들이다. 하나하나가 매우 높은 가치를 지녔다.


그중 동경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 교사로 부임했을 당시 졸업앨범이 가장 큰 무게를 지닌 사료다. 동덕여고에서도 원본이 없어 복제본을 만들어 갈 만큼 귀한 대접을 받았다. 이관술뿐 아니라 앨범에 등장하는 동료 교사들 가운데 독립운동가가 여럿이고 학생 중에도 이효정, 박진홍, 이순금, 이종희 등 걸출한 여성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경 유학 시절 이관술이 사용한 역사지리 스크랩 자료, 동경고등사범학교 졸업앨범, 일제강점기 이관술의 옥중편지, 제자 이효정이 이관술을 기억하며 쓴 시와 편지도 있다.


기획연재 중 필자가 일하고 있는 울산노동역사관에 그 유품들을 모두 위탁하기로 협약한 것은 정말 뜻깊은 순간이었다. 이관술의 막내딸 이경환과 외손녀 손옥희가 경주 양동마을과 포항에서 보관해오던 자료들이 울산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나중에 ‘이관술 기념관’을 만들기 전까지 잘 보관하겠다고 약속하고 위탁받았다. 제대로 기념관이 들어선다면 기쁜 마음으로 유품을 이관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 2021년 8월 21일, 독립운동가 학암 이관술 유품 위탁 협약식. 울산노동역사관.

이관술 유적비는 양지바른 곳으로 옮겨야

기획연재를 하면서 이관술의 생애를 탐문하고 정리하던 중 연관된 독립운동가의 후손들도 만날 수 있었다. 먼저 이관술 생가 건너 집에 살았던 손진수, 손후익 그리고 손응교로 이어지는 독립운동가 집안의 외손 김주를 꼽을 수 있다. 친가는 혁신 유림을 대표했던 심산 김창숙이 할아버지다. 아버지 김찬기와 큰아버지 김환기도 국가유공자다.


그녀를 통해 어머니 손응교가 쓴 비망록 속에서 이관술의 젊은 날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해 여름 서울 자택으로 찾아가 처음 만났다. 그녀는 일행과 함께 지난 가을 울산에 처음 방문했다. 이관술의 제자이자 항일혁명 동지였던 이효정의 아들 박진수도 작년 가을과 올봄 두 차례 인천과 서울에서 만났다. 그는 99세 나이로 영면한 어머니를 통해 이관술의 풍모와 행적을 건네 듣고 우리에게 들려준 바 있다. 독립운동가 후손 두 분을 통해서 알게 된 이야기는 이 기획연재 속에서 한차례 녹여내기도 했고, 별도의 간행물과 연구 글로도 정리했다.


연재 기간 중 이관술이 어린 시절 성장했고, 감옥에서 병보석으로 나와 요양하다 탈출했던 입암마을을 여러 차례 찾았다. 2007년부터 입암을 곳곳을 찾아 다녔는데 연재하면서는 더욱 새삼스러운 마음으로 입암마을을 걸었다. 때로는 역사기행을 원하는 이들과 함께했고, 기자들의 취재에 동행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꼭 발이 길게 머무는 자리가 있다. 바로 2020년 가을, 14년 동안 이관술 생가 앞 밭고랑 깊이 묻혔다 다시 파낸 유적비 앞이다. 머릿돌과 몸통이 분리된 비석 앞에 서면 절로 마음이 숙연해진다. 비석을 땅에 묻는 순간까지 쫓아와 비석 옆모서리에 망치를 두들기며 패악질을 한 흔적을 만질 때면 더 그렇다.


원래 비석이 세워졌던 선바위 휴게소는 이제 공원으로 바뀌어 버렸다. 이를 관리하는 울산시는 이관술이 국가유공자 서훈을 받은 뒤에야 원래 자리로 세울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런 이야기를 주억거리게 되면 마음은 숙연함을 넘어 처연해진다. 후손들뿐 아니라 마을 사람들은 이관술 유적비가 보다 양지바른 자리로 옮겨가길 바란다.


세웠다 뽑히고, 묻었다 다시 파낸 이 비석 자체가 우리 현대사의 질곡을 그대로 보여준다. 기획연재를 하고 있는 동안 이관술 유적비가 놓일 번듯한 자리를 놓고 여러 뜻있는 이들과 교감을 나누고 있다. 그 뜻이 성사된다면 늦어도 내년 봄에는 제 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 연재 중 만난 독립운동가 후손들. 왼쪽 이관술 외손 손옥희, 김창숙과 손후익의 손녀 김주(입암마을). 오른쪽 손옥희, 이효정과 박두복의 아들 박진수(인천 부평)

 

▲ 공공주택지구로 지정돼 사라질 위기에 놓인 입암마을과 이관술 생가

기획연재를 끝내지만 남은 숙제들

이제 기획연재를 마치기 전 독자들에게 고백해야 할 것이 남았다. 처음 써두었던 글보다 연재 기간 동안 늘어난 글이 훨씬 더 많았다. 이왕 글을 시작했으니 최대한 많이 써보라는 주변의 조언이 맞다고 여겼다. 하지만 전업으로 연구하고 글 쓰는 이가 아니라 매번 마감에 치여 원고를 완성했고, 이는 뒤로 갈수록 더 심해졌다. 특히 연재 속에서 이관술이 운명하는 순간이 다가올 때는 쉽게 떠나보내지 못한다는 듯이 글이 늘어져 버렸다. 오타와 비문을 교정할 시간이 부족했을 편집자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이런 부족함은 연재를 마친 후 전체 원고를 묶어서 한 권의 책으로 완성할 때 보강하고자 한다. 또 사용된 자료와 인용 역시 다시 여유를 갖고 살펴볼 생각이다. 그동안 달고 쓴 조언을 해준 선배와 동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앞으로 남은 숙제 때도 부탁을 드릴 생각이다. 그렇게 완성된 글은 <항일혁명가 이관술의 불꽃 같은 삶>(가칭)이란 제목의 아카이브 전시에도 사용할 생각이다.


이관술을 비롯해 여러 독립운동가의 삶을 품고 있는 입암마을은 공공주택지구 개발지역에 지정돼 완전히 철거될 위기에 놓여있다. 이관술 생가 주변에도 “결사반대 생존사수”란 현수막이 마을 대책위원회 이름으로 붙어있다.


선바위와 태화강 상류 물결이 굽어 흐르는 좋은 땅이 아파트 단지로 바뀌는 것에 결코 찬성할 수 없다. 그 결정을 되돌릴 수 있다면 손과 발을 다 빌려주고 싶은 맘이다. 이런 택지 개발에는 거대한 자본과 권력이 배경이 돼 계산기를 두드리기 마련이다. 한 마을을 없애고 역사를 돈으로 갈아엎는 어리석은 결정에 단호히 반대한다.


배문석 울산노동역사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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