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처참함과 도구로서의 성(性)

이민정 영화인 대경대 방송영상과 겸임조교수 / 기사승인 : 2021-10-19 00:00:43
  • -
  • +
  • 인쇄
영화 인문학

국가마다 영상물등급에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한국 기준으로 청소년 이용불가 등급은 과도하게 폭력적이거나 성적(性的)인 경우다. 유교적 이념을 강조한 시대는 남녀 간 성을 통제하는 경향이 강했는데, 우리나라의 대표적 유교 이데올로기 시대는 위화도 회군 쿠데타의 이성계 조선, 일본제국주의 식민지 시대, 그리고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이다. 조선의 유교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을 억제하거나 사회적 양심에 심리적 압박을 강요함으로써 쿠데타 세력이 가장 두려워한 또 다른 쿠데타의 싹을 키우지 않기 위함이었고, 일제의 유교는 내선일체 국가에 충성을 강요하기 위함이었으며, 박정희의 유교는 조선의 유교와 일제의 유교가 혼합된 것이었다.


등급이 완화된 폭의 훨씬 이상으로 매체에서 성을 다루는 수위가 무척 높아졌다. 성인이라도 수용하기 곤란한 영화가 <살로, 소돔의 120일>(1975,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감각의 제국>(1976, 오시마 나기사), <세르비안 필름>(2010, 스르잔 스파소예비치)이다.

 

1980~90년대에 성을 의도적으로 활용한 장르는 할리우드 공포물이다. 당시 미국에서도 청소년들의 성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첫 희생자는 반드시 섹스를 한 청소년들이었다. 이러한 공식을 깨뜨린 대표적인 작품이 저예산 영화 <쏘우>(2004, 제임스 완)였다. 말레이시아인 감독을 통해 정서적이고 가족적인 공포물로 장르를 재해석했다.


공포물이 매력적인 이유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스크린의 공포적 상황이 객석의 관객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으므로 안전하게 스릴감을 즐기는 것이다. 이런 장르적 허를 찌른 영화가 <스크림>(1996)이다. 드류 베리모어가 약물 중독으로 호된 홍역을 앓은 뒤 겸손하게 오프닝에만 단역으로 출연하며 재기의 발판이 된 영화로, <나이트메어>(1985) 등 공포물의 거장인 웨스 크레이븐이 연출했다. 영화에서 관객은 살인마에게 무차별 공격받는다.

 


<살로, 소돔의 120일> 등 세 영화의 공통점은 전쟁이란 시대적 배경과 성을 도구로 활용하는 고어물(잔혹한 장면으로 공포심‧혐오감을 유발하는 장르)이다. <살로, 소돔의 120일>은 전쟁 위기에서 이탈리아 귀족들이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변태성적 만족감을 취하며 현실도피하는 내용이다. 파졸리니 감독은 아동성애자였는데, 출연했던 소년에게 살해당한 뒤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감각의 제국>은 전쟁 동원을 기피하는 유곽 주인이 기생과 성적 탐닉에 매몰되다 그녀에게 살해된 뒤 성기가 절단된다. 실제 일본에서 있었던 사건을 영화화했다. 오시마 나기사는 제국주의를 부정하는 대표적인 일본 뉴웨이브 감독으로, 유곽 주인이 기형적인 성에 몰두할 때 담장 너머로 동원된 일본군이 지나가는 장면은 오시마의 사상적 메타포라고 할 수 있다. 감독의 명성에도 출연하기로 했던 여배우는 첫 촬영에 나타나지 않았고, 대신 출연한 신인 여배우는 이후 어떤 영화에서도 볼 수 없었으며, 국제영화제 수상 전에는 본국 개봉도 하지 못했다.

 


두 영화가 변태성욕적이거나 포르노적이라고 한다면 <세르비안 필름>은 스너프필름(실제 성행위 또는 살인 장면을 담은 영상. 살인 영상의 의미로 더 많이 사용)에 가깝다. 세르비아 내전의 참혹함을 스너프필름처럼 만들었는데, 출연자들이 멀쩡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처참하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장르의 영화를 접하는 영화인조차 이 영화를 소화하기에 힘들다. 전쟁의 참혹함을 여성과 소녀, 심지어 신생아에게까지 성적인 가혹행위를 하는 것으로 은유했어야 했는가 하는 물음과 처절한 영상의 잔상으로 오랫동안 괴롭다.


그럼에도 이 영화들에서 강렬한 교훈을 얻는 지점이 있다. 전쟁이 얼마나 일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지, 그리고 그 일개인은 누구라도 될 수 있으며, 그 누구도 절대로 겪어서는 안 될 경험이라는 것. 혹시라도 성적 만족감을 위해 이 영화들을 보겠다면 포르노를 보는 것이 나을 것이고, 단순한 호기심으로 보려 한다면 전쟁의 참상을 온몸과 마음으로 겪어서 한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릴 각오를 해야 한다. 이 영화들은 관객의 안전을 결코 보장하지 않는다. 


이민정 영화인, 대경대 방송영상과 겸임조교수

 

[저작권자ⓒ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

오늘의 울산 이슈

주요기사

+

많이 본 기사

정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