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승

김윤경 글 쓰는 엄마 / 기사승인 : 2020-12-09 00: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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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일기

둘째가 나의 스승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때 역지사지를 일깨워준 참스승이다. 나와 기질이 다른 자녀를 사랑으로 키운다는 게 이렇게 힘들구나 몸소 겪었다. 둘째가 네 살이 되기까지 나의 멘탈은 우수수 털리기 일쑤였다. 다섯 살이 되고부터는 살만했다. 장소 불문하고 드러눕지 않고 말귀도 알아들으니까 한결 나았다. 그랬던 둘째가 다시 깨달음을 주려는지 요즘 심상치 않다. 


아침에 등원 준비할 때면 조마조마하다. 뭐 하나 얻어걸리면 그때부터 어린이집 차를 탈 때까지 우렁차게 운다. 사소한 걸로 시작했다가 등원 거부로 이어진다. 엊그저께 나갈 채비를 하는데 조끼가 마음에 안 든다고 했다. 그럼 벗으라고 했더니 그건 또 싫단다. 어쩌라는 건지 부글부글 끓는다. 한껏 울고 나서 진정이 됐을 때 왜 울었냐고 물어봤다. 개미 같은 소리로 “그냥” 이러고 끝이다. 허탈과 허무를 반죽하면 이런 기분일까 싶다. 어린이집에 가기 싫어서 아침마다 꼬투리를 잡는 걸까. 


종종 애들 재우고 나서 공부하러 식탁으로 나온다. 그럼 둘째가 자다가 깨는 경우가 많다. 어느 날은 둘째가 울면서 잠꼬대를 했다. “나 놔두고 가지마~, 손 잡아~” 눈을 감은 채 저벅저벅 걸어 나온다. 분리불안이 있는 걸까. 둘째가 잠을 설치니까 웬만하면 밤에 공부를 안 하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 낮을 분 단위로 생활한다. 시간을 찢고 싶다. 이런 내 배려를 둘째는 모른다. 정작 내가 둘째 몸부림에 자주 깬다. 배 위에 발을 올리는 건 그나마 매너를 지킨 날이다. 내 갈비뼈 사이를 발끝으로 꾹꾹 누를 때면 정말 짜증이 난다. 발바닥으로 척추를 지그시 지압하기도 하고 내 팔을 옥죄기도 한다. 내 얼굴이 반대쪽을 향해 있으면 자기 쪽으로 돌린다. 잠결에도 엄마와 연결되고 싶은가 보다. 자기를 작게 만들어서 하늘나라에 보냈다가 다시 엄마 뱃속에 들어가고 싶다는 말에서 얼마나 하나 되고 싶어 하는지 전해진다. 


이번에는 어떤 가르침을 줄까. 이 과정에서 나는 무엇을 알아차려야 하는가. 물음표들이 둥둥 떠다닌다. “네가 원하는 걸 말로 해.” 매번 짜증대마왕 둘째에게 요구한다. 잉잉 짜증내는 소리를 계속 듣다 보면 버럭 한 번으로 끝내고 싶다. 그러나 나는 사랑으로 키우고 싶은 엄마이기에 참는다. 곱게 참아지는 날을 늘리고 있다. 참다가 무시했다가 눈을 맞추며 좋게 말해봤다가 으름장을 놓기도 하고 카운트다운을 세기도 한다. 운이 좋으면 이런 와중에 둘째의 눈빛이 돌아오고 “죄송합니다”하면서 품속에 안긴다. 운이 안 좋으면? 끝내 데시벨이 천장에 닿고 씩씩거리며 회초리로 쓰는 실리콘주걱을 꺼내거나 등짝스매싱이 출격한다. 그러면 둘째는 “엄마 나빠! 엄마 없었으면 좋겠어!” 울부짖으며 맞선다. 


둘째가 가끔 나를 시험할 때가 있다. “엄마는 나 말고 어린이집 친구들 중에서 누가 좋아?” 이 질문에 담긴 둘째의 의도를 알아차려야 한다. 엄마가 내 친구들 중에 누굴 좋아하는지 궁금한 게 아니다. 이 질문의 핵심은 ‘나 말고’에 있다. 순진무구하게 친구 이름을 말하면 “엄마는 나보다 그 친구를 더 좋아하구나”하고 토라진다. “엄마는 어린이집에서 우리 딸이 제일 좋아”라고 말해야 둘째의 흡족한 미소를 볼 수 있다. 


“엄마 누구 좋아해?”, “나 못 생겼어?” 같은 질문은 방심한 사이에 훅 들어온다. 끊임없이 애정을 확신시키는 작업이 뒤따른다. “엄마는 네가 너무 좋고 너무 예뻐.” 어디다 새겨두고 싶다. 어린이집에서 배워온 미세먼지 노래를 부르고 지구가 아프다며 환경지킴이가 돼야 한다고 말할 때 둘째의 생각주머니가 자랐구나 실감한다. 사랑스러운 지점들이 많다. 목소리, 작고 도톰한 손과 발, 말랑말랑한 볼 살, 매생이 같은 머리카락, 참외 배꼽, 무장해제됐을 때 나오는 장군님 웃음소리, 안 맵다 하면서 바로 물 마시는 허세마저 귀엽다. 엄마를 들었다 놨다 하는 다섯 살 스승님, 여섯 살에도 잘 부탁드려요. 


김윤경 글 쓰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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