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와 함께] 영국이 낳고 인도가 키운 아쌈

정온진 글 쓰는 탐험가 / 기사승인 : 2022-06-21 00: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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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마시지 않아, 차를 선물하거나 우려주면 곧잘 마시면서도 통 차에 관심을 두지 않는 친구가 있다. 음식 취향이 비슷해서 함께 차에 대해 이야기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으로 차의 세계로 인도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어느 날 같이 음료를 사다가 아쌈 밀크티 패키지를 보고 어린 시절 봤던 만화 홍차왕자의 아쌈왕자가 떠오른다며 아쌈은 어떤 차냐고 질문했다.


아쌈(Assam)은 인도의 아쌈 지역에서 생산되는 홍차로, 세계 최고의 다우(多雨)지역이라 매우 습하고 무더운 기후에서 자라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아는 찻잎에 비해 나무와 잎이 큰 편이다. 세계 최대의 홍차 생산국인 인도에서도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차로, 맛이 강하면서도 특유의 향이 짙지 않고 쉽게 맛이 우러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블랜딩티나 가향차, 밀크티용으로 적합하다.


아쌈은 크게 브로큰(Broken) 타입과 홀리프(Whole Leaf) 타입으로 나눈 후 다시 그 안에서 찻잎의 등급을 매긴다. 홀리프 타입은 당연히 어린 새순으로 한정되기 때문에 생산량이 적고 비싸다. 생산량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브로큰 타입은 주로 CTC(Crush Tear Curl) 공법으로 만들어진다. 큰 찻잎을 잘게 부수고 찢어 둥글게 마는 방법으로 찻잎이 동글동글 작은 환처럼 생긴 것을 말한다. 짧게 우려도 맛이 강하게 우러나기에 주로 밀크티용으로 쓰인다.


실제로 인도에서 생산되는 아쌈의 대부분은 자국 내에서 차이로 소비되고, 나머지는 밀크티용 찻잎 혹은 밀크티 음료에 블랜딩되어 있어 쉽게 접할 수 있다.


흔히 아쌈만의 특색으로 몰트 향을 이야기하는데, 몰트는 맥아당 즉 엿기름을 말한다. 다즐링의 청포도 향처럼 아쌈은 이 맥아당 향을 느낄 수 있다고 하는데 브로큰 타입보다는 홀리프에서 나무껍질, 흙내음과 함께 달콤한 곡물 향기를 느끼기 쉽다.


아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빠질 수 없는 게 바로 영국이다. 영국은 오늘날 홍차 하면 떠올리는 나라지만 의외로 유럽에서 제일 처음 차를 마시기 시작한 나라는 16세기 말의 네덜란드다. 유럽에 중국의 차가 처음 전해진 이후 거의 60여 년이 지난 후에야 영국에 차 문화가 전해진다.


주변국에 비해 차 문화의 시작이 빠르지는 않았지만 17세기를 지나 18세기에 이르면 영국은 최대의 차 소비국이 되고, 19세기를 거쳐 20세기 초반이 되면 차 생산국으로 거듭나며 홍차 문화를 꽃피우게 된다.


그렇다면 유독 영국에서 홍차 문화가 발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 경제 지리 문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이지만 당시의 상황을 보면, 차가 처음 유럽에 전해질 당시에 유럽은 이미 커피가 유행 중이었다. 또한, 유일한 차 생산국이자 수출국인 중국의 엄격한 통제로 인해 쉽게 구할 수 없는 사치품이지만 커피는 유럽과 가까운 식민지에서 재배하면서 대중에게까지 널리 인기를 끌 수 있었다. 그러나 커피를 재배할 수 있는 식민지나 무역을 할 수 있는 항구와 관련된 패권국은 프랑스와 네덜란드였고 영국은 그들과 사이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18세기 이후 영국 동인도회사가 아시아와의 무역을 장악하면서 차 보급이 수월해졌고, 자연스럽게 커피에서 차로 그 유행이 옮겨가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보스턴 차 사건, 아편전쟁 등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해도 수업시간에 한 번쯤 들어봤던 유명한 사건들이 바로 당시 최대의 차 소비국이자 수입국인 영국의 차 사랑 때문에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1823년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의 아쌈 지역에서 인도 재래종 차나무를 발견하게 된다. 이전까지 차나무는 오로지 중국에서만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왔고, 또 중국이 차의 제조법과 종자의 유출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 차를 생산하지는 못했다. 1848년 영국 식물학자가 중국 상인으로 변장하여 중국의 차 제조법과 묘목, 종자를 가져온 이후로 인도는 본격적인 홍차 플랜테이션이 되었고 오늘날 최대의 홍차 생산국이 되었다.


친구의 기대와는 다른 아쌈 이야기였지만 의외로 친구는 굉장히 재미있어하면서 홍차에 흥미가 생겼다는 말로 나를 기쁘게 했다.


그리고 ‘세계에 어떤 나쁜 일이 벌어졌다면, 대부분 영국 때문이다.’라는 말을 들었는데 홍차도 해당된다면서 신기해했다. 우스갯소리이긴 하지만 사실이기도 한 것이 영국과 전혀 무관해 보이는 세계의 큰 사건들의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꼭 영국이 등장한다.


그러고 보니 영국 때문에 인도의 3대 홍차가 생산되기 시작했고, 밀크티와 차이티도 만들어졌다. 미국의 독립에도, 청나라의 패망에도 영국의 ‘차’가 있었다. 우리는 최근의 아프칸부터 미국 독립까지 이야기하다가 쓰게 웃고 말았다. 커피도 마찬가지지만 우리가 즐기는 홍차 대부분이 영국 제국주의, 식민지배와 떼려야 뗄 수 없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참 입맛이 썼다.


기호품은 누군가의 희생이 따른다는 사실을 상기하여 커피와 차의 쓴맛을 함께 떠올려본다. 만화의 캐릭터로 시작된 홍차와 역사 이야기가 공정무역 상품에 대한 주제까지 이르자 훌륭한 차 친구를 얻었다는 생각과 함께 좋은 대화를 나눴음에 행복을 느끼고 이에 감사하고 싶어졌다.


오늘은 내가 마시는 한 잔의 차와 커피의 역사를 들여다보며 차 친구를 위한 주제를 모아두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정온진 글쓰는 탐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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