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 1박 2일

김윤경 글 쓰는 엄마 / 기사승인 : 2020-11-25 00: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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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일기

주말에 아빠 보러 거창에 다녀왔다. 거창은 부모님 고향이다. 동변리에 종갓집과 선산이 있다. 내 할아버지를 시작으로 산 위로 올라갈수록 윗대 산소가 줄줄이 나온다. 할아버지는 거창 며느리를 고집했다. 친정에 들르면서 산소에 한 번이라도 더 오지 않겠냐는 이유에서다. 큰며느리는 마리면, 작은며느리는 웅양면 출신이다. 할아버지의 작전은 성공했다. 


할아버지는 부잣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농사 짓기 싫다고 처자식 남겨두고 혼자 부산으로 떠난 것이 고생길 시작이었다. 아빠는 할아버지가 예순두 살에 돌아가시자 안도했다. 새색시가 보는 앞에서도 아들의 안경이 날라 갈 정도로 후려쳤던 할아버지다. 


아빠가 생전에 좋아하던 음식을 준비해갔다. 씨 없는 청포도, 사과, 배, 귤, 삶은 밤, 생수를 차려놓고 인사 드렸다. 엄마는 아빠가 꽃을 좋아했다며 분홍색 조화를 꽂았다. 큰이모는 하얀 국화꽃다발을 놓았다. 오빠는 중환자실에서 뽑은 아빠 머리카락을 묻었다. 외손녀는 지난번에 묻어두고 간 편지가 아직 있는지 확인했다. 영정사진을 들었던 큰손자는 “할아버지는 가루가 됐다”고 회상했다. 손주 다섯 명이 웃고 뛰는 소리가 산소를 둘러싼다. 


아빠가 새언니 꿈에 나왔다. 정장을 입고서 “내가 죽은 게 맞냐?”고 묻는 꿈이었다. 엄마 꿈에도 아빠가 나왔다. “데리러 올게.” 한마디 남기고 사라져서 엄마는 오싹해 했다. 저승사자 같은 대사다. 애써 비가 오는 날이면 아빠가 엄마 일터까지 데리러 갔기 때문일 거라 해석한다. 


외갓집에서 하루 잤다. 여든여덟 살의 외할머니는 우리 온다고 김치를 담그고 가래떡을 뽑았다. 보통 나이가 들수록 음식 맛이 짠데 외할머니 솜씨는 그대로다. 토란국, 고추부각, 다시마부각, 김치에 젓가락이 자꾸 간다. 주전자 가득 끓여 놓은 보리차에서도 외할머니의 애정을 느낀다. 집이 보일러를 빵빵하게 틀어 놔서 찜질방이나 다름없다. 


부엌에는 메주가 있다. 마당에는 말려 놓은 시래기가 있고 장독들은 반짝반짝 광이 난다. 외할머니는 “이제 아플 때도 됐지”하며 두 무릎을 만진다. 방 하나, 거실 하나, 부엌 하나, 화장실 하나 있는 집에서 어른 여섯, 애들 다섯 명이 세끼를 먹고 잠을 잤다. 몇 년 만에 들렸는데도 집이 정갈하다. 외할머니는 음식할 때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자고 난 이불은 털어서 넣는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외할머니는 붉어진 눈시울로 두 팔 벌려 엄마를 안았다. 돌아올 때는 서운하다며 죽기 전에 또 오라는 말로 인사한다. 청국장, 시래기, 떡국 떡, 김치, 간장을 엄마한테 싸주느라 바쁘다. 집을 나서는 엄마에게 춥다고 지퍼 올리라는 외할머니 말이 나는 왜 이렇게 뭉클할까. 내가 엄마한테 듣는 말을 엄마는 외할머니한테서 듣는다. 내가 보기에 엄마는 외할머니의 다섯 자식 중에 제일 아픈 손가락이다. 형편이 어렵고 종종 아픈데다 남편까지 일찍 잃었으니 말이다. 아니다. 어쩌면 속 썩이는 사위였기 때문에 가슴을 쓸어내릴지도 모른다. 아무튼 아빠가 돌아가신지 얼마 안 지나서 외할머니마저 뒤이어 가실까 봐 걱정이다. 


연로한 외할머니의 손발은 가까이 사는 큰이모다. 우리가 먹은 밥상은 외할머니와 큰이모의 합작품이다. 바로 위에 언니인 큰이모는 엄마에게 친구나 다름없다. 엄마가 아플 때 가장 챙겨주는 어른이 큰이모다. 며칠씩 큰이모집에 요양 가 있었던 엄마가 기억난다. 큰이모의 딸, 그러니까 내 외사촌언니는 의식주 중에 의를 해결해준 은인이다. 어려서부터 언니가 물려준 옷들 덕분에 나는 기죽지 않았다. 이번에도 언니 옷을 왕창 받아왔다. 아빠 보고 오는 길에 반가운 외갓집 얼굴들을 만났다. 덕분에 덜 슬펐다. 마음이 따뜻하게 채워지는 1박 2일이었다. 


김윤경 글 쓰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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