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다(製茶)가 행복한 화차(花茶)

김상천 시인 / 기사승인 : 2021-02-04 00: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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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향만리

 

제다(製茶)는 “기술이 아니라 예술이다”라는 말이 있다. 차를 만드는 과정을 예술로 승화시킨 다인(茶人)들의 정성과 아름다운 모습을 들어 그렇게 표현한 것이리라. 제다 과정을 보면 참으로 ‘불의 예술’임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뜨거운 가마솥에서 덖어내는 것을 살청(殺靑)이라 하는데 제다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과정이며 제다인(製茶人)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살청이 얼마나 잘 됐는가는 그 차의 상품성을 온전히 드러내는 척도가 된다. 여기서 제다인의 기술로만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어 사람들은 차의 제다 과정을 ‘불의 예술’이라 칭하는 것이다. 섭씨 300도에서 600도의 고열을 오르내리는 불 조종을 통해 차를 덖어내는데 이때 온도와 덖는 시간 그리고 축적된 경험에 의한 손놀림 등으로 차의 좋고 나쁨이 결정되는 것이다. 물론 찻자리에서의 물의 온도 또한 맛과 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제다 과정이 예술이라 한다면 제다 과정이 가장 아름다운 차가 화차(花茶)라 할 수 있다. 나는 ‘행복한 차 만들기’, ‘아름다운 제다인’ 등의 말을 화차를 만드는 사람들을 향해 사용한다. 이른 봄부터 늦은 가을까지 이 강산 산야에 아름답게 피는 야생화, 긴 치마 끌고 대바구니에 꽃잎을 따 담는 여인의 모습은 참 아름답기도 하지만 꽃잎을 따 담는 본인은 얼마나 행복할까. 꽃잎은 찻잎보다 제다가 더 어렵다. 꽃잎이 연하기도 하지만 고운 색감을 유지하기 위해 때로는 찌고 때로는 덖고 아니면 그냥 곱게 말려야 하는 까다로움이 있는 것이다. 채엽(採葉), 위조(萎調), 살청(殺靑), 유념(揉捻), 건조(乾燥)가 어려워 세밀한 정성과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나에게 있어 화차는 맛보다 제다가 너무 아름답고 행복해서 좋다. 


뛰어난 요리사는 요리사가 만든 음식을 먹는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 음식을 먹는 사람보다 만드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고 하는 순간 그것은 예술과도 같은 것이다. 이 주방의 아름다움과 행복을 음식점에 다 빼앗기는 요즘 제다가 행복하다고 하는 말에 얼마나 동의하겠는가 생각하면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생각에 자조하게 된다. 


근래 우리나라에서는 화차를 만들고 음용하는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차(茶)가 원래 고유명사인데 보통명사로 쓰인 지가 오래됐다. 그래서 국화즙 혹은 탕이라 해야 하는 말이 국화차가 되고 쌍화탕이 쌍화차가 돼도 별로 이상하지 않다. 


화차를 만드는 지인의 집을 방문하면 수백 가지 화차를 만들어 진열하고 있다. 보기에도 참 아름답다. 국화차 매화차 연꽃차 장미차 등 울긋불긋 꽃 대궐이다. 그 속에서 차를 따르는 여인이 참 아름답고 행복해 보였다. 제다하는 과정을 상상해 보면 더 돋보인다. 


그러나 이 땅의 모든 꽃잎이 다 차가 되는 것은 아니다. 꽃잎 자체에 독성이 있는 꽃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 차로 만들 수 없는 꽃이 더 많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수백 가지가 넘는 화차를 보면서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선뜻 말할 수 없는 것은 화차의 제다 과정 속에 있는 아름다움과 행복함을 폄하할 것 같아서다.


청허당(淸虛堂) 차실에서의 화차는 꽃잎을 제다하지 않고 녹차 잔에 그냥 꽃망울 하나 띄우는 것이다. 오늘 마침 자칭 송정호수 지킴이라는 친구의 매화꽃 소식을 사진으로 전해 듣고는 내일은 매화 꽃망울을 따러 가야겠다고 다짐을 한다. 청허당 차실의 화차는 찻잔에 꽃잎 하나 곱게 띄워서 내어놓는 것이다. 매화 꽃망울을 따서 병에 담아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손님이 오면 찻잔에 띄운다. 뜨거운 찻잔 속에서 속살을 드러내는 매화의 자태를 마음껏 감상하면 차향과 함께 퍼지는 매화향이 추운 바람에 언 마음들을 녹여준다. 머지않아 남쪽 어느 연꽃 위에 놀고 있던 봄바람이 불어올 때 아내와 함께 행복한 화차 만들기에 폭 빠져야 하겠다. 


김상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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