닿지 않아도 괜찮은 편지

김윤경 글 쓰는 엄마 / 기사승인 : 2021-02-03 00: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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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일기

예슬씨, 뭐라고 부를지 고민했어요.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본 적 없어서요. 그러다 예슬씨가 떠올랐어요. 적당한 호칭인 것 같아서요. 예쁘고 슬기롭게 자라라고 지어준 이름, 쓰진 않았어요. 그 이름으로 불러도 괜찮을까요?


예슬씨와 저는 굉장한 인연인데 서로 모르는 사이죠. 세상에 이런 관계도 있네요. 어떻게 지내는지 안부는 모르지만 늘 응원하는 마음이에요. 어디서든 평안하길 바라요. 가끔 아이들과 예슬씨 이야기를 하기도 해요. 처음엔 제가 먼저 말을 꺼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이 먼저 말해요. 작은애가 어른이 되고 나면 만나도 좋을 것 같아요. 예슬씨가 괜찮다면요. 작은애는 예슬씨가 과자를 많이 사서 우리 집에 놀러 오면 좋겠대요. 만나면 뭐하고 싶냐고 물었더니 꼬옥 안아줄 거래요. 너무 예쁜 마음인데 저는 눈물이 났어요. 놀러 오는 건 좋은데 자길 데려가면 안 된대요. 동심이 느껴지죠.


잠들기 전에 꿈나라 기차 이야기를 하곤 했어요. 어떤 날은요, 꿈나라 기차를 타면 누가 있을까 물었더니 예슬씨가 있을 거래요. 생각나고 보고 싶고 만나고 싶고 그런가 봐요. 갓난아기 때부터 낳아준 엄마가 따로 있다고 말해줬어요. 큰애가 자기 태어난 얘기해달라고 하면 작은애가 옆에서 귀 쫑긋하고 들어요. 초반엔 작은애가 출생 과정을 헷갈려 하더니 이제는 말도 술술 잘해요. 최근에 만삭인 제 친구가 놀러 왔었어요. 작은애가 부른 배를 보더니 뱃속에 있을 때를 상상하더라구요. 뱃속에서부터 예슬씨가 사랑하고 소중히 아꼈다고 말해줬어요.


처음 작은애를 데려올 때 직원분이 종이를 줬어요. 짤막하게 적혀있는 몇 가지 기록이었어요. 난산이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었어요. 예슬씨가 보름 남짓한 기간 동안 정성껏 아기를 돌봤다는 문장을 보고 많이 울었어요. ‘정성껏’이라는 세 글자가 마음에 와닿아서요. 아이의 건강한 발달과 행복을 위해 친권을 포기했다고 들었어요. 그 마음이 오죽했을까요. 우리에게 온 작은애는 예슬씨가 지켜내고 싶었던 존재였다는 걸 알겠어요. 예슬씨는 지키셨어요.


작은애를 보면서 저도 예슬씨를 상상하곤 해요. 운동신경과 피부는 타고나는 거니까 예슬씨도 좋은가 보다 그 정도? 기질이 강하면서 예민한 것도 예슬씨를 닮은 건가요? 사실 제가 작은애 키우면서 식겁했어요. 저랑 성향이 달라서요. 그런 의미에서 만나면 할 말이 많아요. 작은애는 어린이집에서 친구들을 이끄는 편이고 자기주장이 세요. 밖에서 신체활동 엄청 좋아하구요, 모래놀이도 몇 시간씩 할 정도예요. 채소도 잘 먹는데 고기를 제일 좋아해요. 돈까스가 1등이에요. 면은 싫대요. 중국집 가면 탕수육만 먹어요. 저희 원래 중국집 가도 탕수육 안 시켰는데 이제 탕수육은 필수예요.


몇 년간 예슬씨와 작은애 지분을 나눠 가진 기분이었어요. 주변 입양가정에 물어봤더니 그 분은 그렇게 생각한 적 없대요. 아마 입양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가 보다고 하더라구요. 예슬씨는 어떻게 생각해요? 내 딸이고 내가 엄마라는 확신은 있어요. 다만 예슬씨의 공로가 크다는 거죠. 차라리 내가 낳았다면 좋았겠다 싶어요. 아이가 자라면서 겪게 될 마음고생을 생각하면 더 그래요. 아이가 덜 혼란스러워 하기를 바랄 뿐이에요.


입양할 때 직원분한테 예슬씨 앞으로 편지 남겼었는데 전해지지 않았겠죠? 지금도 닿지 않을 편지를 쓰고 있어요. 닿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그냥 할 말이 많았어요. 요즘 작은애가 얼마나 영특함을 발휘하고 있는지 몰라요. 한 번씩 깜짝깜짝 놀랄 정도예요. 우리 가족은 예슬씨에게 고마운 마음이에요. 예슬씨의 바람처럼 예쁘고 슬기롭게 자라고 있으니 걱정 마요. 혹여 자책이나 죄책감 이런 거 있다면 덜어내요. 예슬씨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물어볼 것도 많은데 이만 줄일게요. 잘 지내요.


김윤경 글 쓰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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