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기자의 지극히 사적인 울산시립미술관 관람기

정승현 기자 / 기사승인 : 2022-01-13 20:3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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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6일 울산시립미술관 개관
울산시립미술관에서만 볼 수 있는 미디어 아트 작품 돋보여

▲ 중구 북정동에 있는 울산시립미술관 전경. ⓒ정승현 기자

 

[울산저널]정승현 기자 = 울산은 광역시인데도 시립미술관조차 없어 늘 아쉬웠다. 미술에 조예가 있는 건 전혀 아니지만, 그래도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미술관 정도는 있었으면 했는데 드디어 지난 6일 시립미술관이 개관했다. 대왕암 공원 옛 교육연수원에서 열리는 전시까지 다 보고 난 후 총평을 하자면 나에게는 합격이다. 미술관인데 그림이 없어서 낯설다는 부정적인 반응도 있지만, 오히려 그래서 좋았다. 다른 미술관에서는 잘 볼 수 없는 '미디어 아트' 작품들을 '울산시립미술관'에서만 볼 수 있기에 우리만의 색깔을 분명히 가지고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미래형 미술관'을 표방하는 것치고는 최신 디지털기술 전용체험관(XR) 말고는 '미래'에 대한 것들을 느낄 수 없었던 점은 아쉬웠다. 그럼에도 산업도시 울산과 자연 생태계, 미래 세계에 대한 상상 등 울산과 미래, 자연을 잘 엮어서 전시 작품으로 표현했고 충분히 와닿았다. 대왕암 공원 안에서 펼쳐지는 전시도 대왕암이란 공간 자체가 워낙 아름답고 낭만적이라 시민이나 관광객이 전시도 보고 풍경도 즐기기에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만에 다 보기 힘들 정도로 작품이 많아 인상 깊었던 작품을 지극히 사적인 관점으로 얘기해보려 한다첫 번째는 단연 XR랩에서 열리는 알도 탐벨리니의 '블랙 앤드 라이트'를 꼽을 수 있겠다. 알도 탐벨리니는 백남준과 더불어 비디오와 TV를 예술 매체로 사용한 최초의 예술가 중 한 명이다. 가상현실, 증강현실, 혼합현실 등 최신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만든 실감 미디어아트 체험 전용관인 360도 가상 공간 XR랩에 들어서면 작품에 홀린 듯 빠져들게 된다. 벽면과 바닥 전체가 암흑인데 빛이 조금씩 들어오며 빼곡히 박힌 밤하늘의 별처럼 보이기도 하고, 중앙에 있는 블랙홀이 점점 커지기도 하고, 세포가 분열하는 것처럼 빛과 그림자가 혼란스럽게 생성되기도 한다. 음악도 절묘하게 작품과 어울려 마치 우주 안을 유영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작품에 흠뻑 빠져서 끝날 때까지 가만히 서 있었다.

 

▲ 알도 탐벨리니 작가의 <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원주민이다> 작품. ⓒ정승현 기자

 

탐벨리니 예술 세계의 핵심 개념이 바로 블랙(black)과 라이트(light)인데 모든 것의 시작을 블랙으로 에너지의 근원을 라이트로 간주한다. 탐벨리니는 전시를 통해 우주의 근원 혹은 생명의 근원에 대해 관람객들이 사유하길 원했는데 사실 그런 생각은 그다지 들지 않았다. 영화 생각이 많이 났다. 한창 영화를 공부할 때 빛과 어둠의 의미를 처음 느끼게 됐는데 그때는 그게 딱히 실감 나지 않았다. 한데 이 작품을 보니 아주 기본적인 빛과 어둠만으로도 깊은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고 더 나아가 흑인 문제, 소수민족의 소외 등 사회 이슈까지 다룰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아쉽게도 퍼포먼스 공연이 열리는 시간을 맞추지 못해 퍼포먼스는 보지 못했다. 퍼포먼스를 보고 싶은 사람은 화, , 토요일 오후 세 시에 맞춰 가면 된다. VR 체험도 매일 30분 간격으로 매회 2명까지 미술관 홈페이지에서 신청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소개할 전시는 1, 2 전시실에서 열리는 <포스트 네이처 : 친애하는 자연에게>다. 알렉산드라 피리치의 퍼포먼스와 설치형 작품인 <테라폼>이 기억에 남는다. 6명의 공연자가 퍼포먼스 시간이 되면 하나둘 작품이 전시된 공간으로 걸어와 새소리, 뱃고동 소리 등 여러 소리를 내며 관람객을 쳐다본다. 그러다 손과 몸으로 나비 흉내를 내기도 하고, 설치 작품인 미로 같이 생긴 구조물 속 안을 파고들기도 한다. 6명이 함께 모여 팔과 다리를 활용해 큰 나무를 만들기도 하고 한 명씩 자세를 바꿔가며 기차처럼 작품 구조물 안으로 이동하기도 한다.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자연 생태계와 인간이 연대해 끊임없이 변화해가는 게 우리의 세계라는 걸 인식할 수 있었다. 퍼포먼스가 끝난 후에는 공연자가 관람객에게 이미지를 신체로 표현하며 소통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영어 통역을 핸드폰 음성으로 들려주다 보니 뒤에 있는 사람은 잘 들을 수 없어 아쉬웠다. 관람객 편의를 위해서 통역하는 분이 옆에 마이크를 들고 설명해주면 더 좋을 것 같았다. 공연자들은 마지막으로 질문한다. "우리 신체 말고 무엇을 더 이미지에 투영할 수 있을까."

 

▲ 알렉산드라 피리치의 퍼포먼스와 설치형 작품인 <테라폼> ⓒ정승현 기자

 

세 번째는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르엉싹 아누왓위몬 작가의 <환생(호페아 창갈 나무와 신도라 와리키 나무)>이 인상적이었다. 작가는 현장 조사를 통해 멸종 위기에 처한 싱가포르 고유 수목인 '호페아 창갈''신도라 와리키' 나무의 주목할 만한 역사적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호페아 창갈 나무는 멸종된 종으로 알려졌다가 2002년 다시 발견되는데 한 부동산 관리 회사의 잘못된 판단으로 나무가 잘려 나간다. 신도라 와리키 나무 중 하나는 1950년대까지 76m까지 자라다가 영국군에 의해 공중 폭격이 쉬운 목표물로 간주돼 파괴됐다. 평소 환경 문제에 관심이 있다 보니 자본과 인간의 탐욕에 의해 무참히 잘리는 나무에 눈길이 갔다. 미술관에서 전시 작품으로 누워있는 멸종 위기 종 나무를 보니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참 소중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르엉싹 아누왓위몬 작가가 지속해서 멸종 위기인 생태계를 탐구하는 것처럼 나도 나만의 관점과 시각을 토대로 무언가를 탐구하고 싶어졌다.

 

▲ 르엉싹 아누왓위몬 작가의 <환생(호페아 창갈나무와 신도라 와리키 나무)> 작품. ⓒ정승현 기자

 

비슷한 맥락으로 왕 홍카이 작가의 <보롬>도 좋았다. 보롬은 제주도 방언으로 바람을 뜻한다. 전시 공간에서 관람객은 QR 코드를 활용해 우도검멜레해변 경안동굴, 알뜨르 비행장, 천주교 신창성당 용수공소, 4.3 학살 터인 북촌포구, 철새도래지인 하도 등 제주 4.3 항쟁에 참여했다가 일본으로 도피한 김시종 시인의 궤적을 따라 여러 공간의 바람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원하는 순서대로 듣고 <보롬> 감상 가이드를 읽고 이동하다 보니 단순히 그림만 보는 전시에서 느낄 수 없는 감각을 체험할 수 있었다. 김시중 시인과 바람, 4.3 항쟁, 기억 등을 엮어서 탐구한 작가처럼 나도 소리로 무언가를 기록하고 싶어졌다. 개인적으로 내가 생각하는 좋은 작품은 무언가를 하게 만드는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이 두 작품을 보면서 어느새 사라진 창작 욕구와 의욕이 생겨났다.

 

▲ 왕 홍카이 작가의 작품 <보롬>은 QR코드를 통해 다양한 공간의 바람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정승현 기자 

 

▲ 백남준 작가의 <케이지의 숲, 숲의 계시> 작품. ⓒ정승현 기자

 

이 밖에도 제3전시실에서는 어린이를 위한 기획 전시 <노래하는 고래, 잠수하는 별> 이, 전시실 밖에서는 백남준 작가의 <케이지의 숲, 숲의 계시>, 얀 레이 작가의 <레버리 리셋> 등을 볼 수 있다. 특히 <레버리 리셋>80개의 디지털 디스플레이가 원형으로 빙글빙글 도는데 이미지가 나오고 바로 그 이미지를 설명하는 문구가 나와 해석하는 재미가 있었다. 와이파이 네트워크를 통해 관람객의 휴대폰으로 연동된다고 하길래 해봤는데 연결이 잘 되진 않았다.

 

평일 오후 두 시에는 한 차례 도슨트의 전시 해설도 진행돼 두시에 맞춰서 신청 장소로 올라갔지만, 이미 도슨트는 떠나고 없었다. 두시 전에 미리 신청해야 한다는 공지도 없었기에 다소 허탈했다. 또 평일에는 한 차례, 주말에는 두 차례만 열리고 회차마다 선착순 10명까지만 들을 수 있어 너무 제한적인 게 아닌가 생각했다. 생소한 '미디어 아트' 전시인 만큼 앞으로는 관람객의 편의를 고려한 전시 해설 서비스가 제대로 구축됐으면 좋겠다.

 

▲ 대왕암 공원 내 옛 교육연수원에서 열리는 <찬란한 날들> 전시. ⓒ정승현 기자

 

둘째 날은 대왕암 공원으로 향했다. 신진작가 발굴 프로젝트 전시인 <대면_대면 2021>과 울산시립미술관 소장품전 <찬란한 날들>이 대왕암 공원 안에 있는 옛 교육연수원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가기 전에는 너무 멀어서 왜 성남동 시립미술관 근처에 장소를 구하지 않았나 의문이 들었는데 도착한 후 전시를 보기도 전에 바다 풍경에 매료됐다. 전시 공간 바로 앞에 바다가 있다니. 너무도 낭만적인 최고의 전시 공간 아닌가! 많은 분이 홀로 혹은 가족과 연인, 친구와 함께 대왕암 공원에서 열리는 전시도 보고 바다를 보며 산책도 했으면 좋겠다. 강력히 추천한다.

 

이곳이 특별한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울산시립미술관 1호 소장품인 백남준 작가의 <거북>이 있어서다. 소장품 전시가 열리는 공간 2층에 가보면 어둠 속에 166대의 텔레비전으로 만든 거북의 형상을 한 대형 미디어 조각품이 떡하니 위용을 드러내며 앉아 있다. 이 작품은 백남준의 대표작 중 하나로 건축적이고 조각적인 미디어 아트의 백미를 선보인다. 밑에서 봐도 훌륭하지만, 계단으로 올라가 한 층 더 위에서 보면 거대한 거북의 형상과 현란하고 환상적인 텔레비전 영상에 홀린 듯 취할 수 있다. 몇몇 관람객은 위에서 내려다본 거북을 노트에 쓱쓱 그리며 깊이 감상했다. <거북> 작품은 대왕암 바다와도 묘하게 어울렸다.

 

▲ 백남준 작가의 <거북>. 울산시립미술관 1호 소장품이다. ⓒ정승현 기자

 

▲ 함경아 작가의 작품 <체이싱 옐로우> ⓒ정승현 기자

 

두 번째로 기억에 남는 작품은 함경아 작가의 <체이싱 옐로우>. 노란색 옷을 입은 사람을 찾아다니며 인터뷰하고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상을 총 8개의 텔레비전으로 볼 수 있다. 노란 셔츠를 입은 사육사, 매일 명상 훈련을 하는 노란색 승복을 입은 스님, 노란색 유니폼을 입은 학생들, 노란 수건을 두른 어부 등 각양각색의 사람들의 일상을 엿보고 그들의 내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데 그게 참 흥미로웠다. 단순히 노란색에 끌려 사람들을 무작정 쫓아간 작업 과정도 신기했고 평범해 보이지만 전혀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의 세상을 보는 시선을 통해 많은 걸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

 

이 밖에도 세계적인 영화감독인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이 영화 <엉클 분미> 제작을 위해 만든 리서치 영상 작품인 <Fireworks>, 서로의 몸을 끈으로 묶은 채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츠바사 카토 작가의 <2679>, 10m 길이의 대형 비행선이 공중에 설치된 이불 작가의 <취약할 의향 - 메탈라이즈드 벌룬 V3> 작품 등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대면_대면 2021> 전시에서는 울산·부산·경남지역과 경주·포항 출신 또는 그곳에 거주하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인다제주를 떠나 울산에 정착한 해녀의 삶과 역사를 담은 신미정 작가의 다큐멘터리 <출향>이 인상 깊었다제주에 뿌리내리지도울산에 정착하지도 못한 해녀의 삶과 역사기억을 영상으로 보니 엄청 먹먹했고 이 기록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김재원 작가의 <오늘 날씨엔 춤을 추고 싶다> ⓒ정승현 기자

 

▲ 전시장에는 바다를 보며 쉴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정승현 기자

 

김재원 작가의 <오늘 날씨엔 춤을 추고 싶다>도 즉각적인 깨달음을 주는 작품이었다. 전시 공간 자체가 작품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목욕탕처럼 연출한 공간에서 한구석에는 작은 디스플레이 화면으로 빨래를 돌리고 청소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나머지 한 벽면에는 그림이 걸려 있다. 낙원장 이름이 적힌 그림과 그 이름이 점차 훼손되는 나머지 네 작품이 나란히 있고, 맞은 편 큰 디스플레이 화면에서는 모텔에서 청소하는 사람의 모습이 나온다. 이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위협받는 종로 3가 일대 퀴어들의 공간을 '청소'의 맥락과 연결한 작품인데 우리 사회에서 지워지고, 제거되는 퀴어들의 현실을 즉각적으로 알 수 있었다. 청소해야 할 대상은 퀴어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시선이라는 점도 다시 한번 더 되새길 수 있었다.

 

이 두 작품 외에도 총 24명의 작가가 공들여 만든 작품들이 더 있다. 다소 난해하기도 하지만, 낯선 감각을 불러일으키고 흥미로운 작품들이 바다를 마주한 채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다. 오는 410일까지 전시가 열리는 만큼 많은 분이 시간 내서 가보셨으면 좋겠다. 나에겐 고달픈 현실에 치여 사라진 창작 욕구가 되살아난 시간이었다. 노란색이든 바람 소리든 멸종 위기종 나무든 나만의 방식으로 탐구하고 해석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야겠다고 다짐했고 예술은 거창하거나 그리 멀리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또다시 하게 됐다.

 

울산시립미술관은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전 열 시부터 오후 여섯 시까지 문을 연다. , 월요일, 11, 명절은 휴관한다. 관람료는 성인 1000, 대학생, 군인 및 예술인은 700, 울산 시민은 5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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