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에 대처하는 방법 - 에릭 호퍼 <길 위의 철학자>(1)

최미선 시민인문학교 교장 / 기사승인 : 2021-06-30 00: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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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민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인문강사(왼쪽)과 최미선 인문숲사회적협동조합 시민인문학교 교장(오른쪽)

 

길 위의 철학자 에릭 호퍼

최미선 인문숲사회적협동조합 시민인문학교 교장=길 위의 철학자 에릭 호퍼를 읽어보려 합니다. 에릭 호퍼를 길 위의 철학자라고 부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이은민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인문강사=에릭 호퍼는 독서와 사색만으로 독자적인 사상체계를 구축한 철학자입니다. 그는 1920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로스앤젤레스 지역으로 이주해 오렌지 행상, 레스토랑 웨이터 보조와 농장의 품삯 일꾼, 사금 채취공 등을 전전하며 1941년까지 ‘길 위에서’ 살았습니다. 이후에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군대를 자원해 참여하고자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샌프란시스코에서 부두 노동자로 25년간 일했습니다.


에릭 호퍼는 평생 떠돌이 노동자로 살면서 정규교육은 받지 못했으나 보통 사람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책을 읽고, 깊이 사색해 독학으로 독자적인 사상을 수립했습니다. 그는 삶을 여행객처럼 살아온 떠돌이 철학자이자 길 위의 철학자입니다.


에릭 호퍼의 <길 위의 철학자>는 에릭 호퍼 사후 출간한 유일한 자서전이자 마지막 책입니다. 그가 떠돌이 노동자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40세 때 샌프란시스코의 부두 노동자로 정주할 때까지 자신의 반생을 만년에 회상하듯이 기록한 것이에요. 떠돌이 노동자, 웨이터 보조, 사금 채취공으로 전전하면서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모두 27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돼 있습니다.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단순한 옛날이야기에 머물지 않고 그의 삶, 사유, 사상의 세계까지 뿌리 깊게 연결돼 있습니다.

에릭 호퍼의 어린 시절

최미선=어린 시절 맹인이었다는 독특한 이력이 있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이 궁금하네요.


이은민=에릭 호퍼는 1902년 뉴욕 브롱크스에서 부유하지 않은 독일계 이민자 가정에 태어났습니다. 다섯 살 때 어머니와 함께 계단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사고의 후유증으로 일곱 살 때 시력과 어린 시절 기억을 잃었습니다. 그 일로 학교에 다니지 못하다가 열다섯 살에 기적적으로 다시 시력을 회복했습니다. 언젠가 다시 앞을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그는 닥치는 대로 독서에 몰두했습니다. 다음 해 아버지마저 잃고 길 위에서 살며 많은 책을 읽고 글을 써 11권의 저서를 남겼습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거의 잃어버렸지만 자서전에 따르면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있습니다. 체구가 작고 늘 불안해하던 분이었어요. 다섯 살이나 된 아들을 팔에 안고 다녔던 것을 보면 아들을 무척 사랑한 것으로 보여요. 한밤중에 잠깐 깨어났을 때 에릭의 등을 어루만져 주던 어머니의 손길을 느낄 때가 많았다고 합니다. 어린 에릭이 가만히 있지 않을 때 어머니와 유모 마르타가 벽장의 서가에 붙어있는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어요. 서가에는 영어와 독일어로 된 철학, 수학, 식물학, 화학, 음악, 여행 분야의 책이 100여 권 정도 있었는데 그 책들을 크기와 두께, 표지 색깔별로 분류하는 일에 흠뻑 빠졌어요. 그 덕분에 영어와 독일어를 익히게 됐어요. 어린 시절 내용에 따라 분류하는 일에 열중한 결과 사색하고 글쓰기를 시작했을 때 사실들과 인상들을 분류하고 대조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독학한 가구제조공이었는데 아홉 살 때 뉴욕 콘서트홀에서 베토벤 교향곡 제9번을 함께 들었던 일이 있었어요. 평소에 차분했던 아버지가 들떠 콧노래를 부르며 에릭의 팔을 움켜잡으며 행복해한 장면으로 보아 음악을 사랑하고 베토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에릭이 세상 밖으로 나와 버림받은 기분이 들 적마다 베토벤 교향곡 제9번 3악장을 콧노래를 부르곤 했어요.


최미선=그가 책을 많이 읽게 된 동기가 ‘다시는 책을 읽지 못할까 봐’라는 두려움이었습니다. 어쩌면 그를 독특한 철학자로 이름나게 한 것은 그의 두려움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두려움이 잘 승화된 예로 보이는데요. 혹시 이은미 선생님에게 그런 두려움이 있나요?


이은민=삶을 수놓는 많은 요소 중 불안과 두려움은 상당한 영향력이 있어요. 이 두려움은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불안하게 만들어 현재에 충실하지 못한 삶을 살게 만들어요. 에릭 호퍼의 삶은 말 그대로 시한부 인생이었어요. 어린 시절 찾아온 실명으로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고 갑작스런 시력의 회복을 영원히 누릴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죠. 부모님이 일찍 떠나고 유모인 마르타마저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삶이 주는 혜택을 오랫동안 누릴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없었어요. 


마르타는 농담처럼 “호퍼 집안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 자체가 기적이야. 에릭, 앞날에 대해 안달하지 마라. 넌 마흔 살밖에 살지 못할 거야”라고 했어요. 실제로 에릭 집안에서는 누구도 50세를 넘긴 이가 없었어요. 이런 말을 들으면 어떨 것 같으세요? 남은 생이 시한부라면 괴로워하며 방탕하게 살지, 아니면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살지 각자의 선택이에요. 에릭에게 이 말은 몇 년 동안 노동자로 철 따라 떠돌면서도 마음 편하게 살 수 있게 하는 데 바탕이 돼줬어요. 에릭은 삶을 여행객처럼 살았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원망하거나 비관하지 않고 주어진 삶을 최대한 살아냈어요. 


내가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부터 삶을 충실히 살 수 있었다는 말이 있어요. 다른 시각으로 삶과 사건을 바라볼 수 있도록 고전을 읽고 나누고 삶에 적용하고 그러면서 두려움과 맞장 뜰 용기도 생기는 것 같아요.


어떤 철학자로 평가받나

최미선=미국 철학의 독특한 측면이라고 볼 수 있는 실용적 철학의 면모를 에릭 호퍼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에릭 호퍼는 어떤 철학자로 평가받고 있나요?


이은민=에릭 호퍼는 미국에서 ‘독학한 부두 노동자 출신 철학자’, ‘사회철학자’, ‘프롤레타리아 철학자’ 등으로 일컬어져요. 그의 사상은 1960년대부터 30년간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어요. 한국에서는 자서전인 <에릭 호퍼, 길 위의 철학자>가 2003년 출간되면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어요. 


1951년에 부두 노동자로 일하면서 그의 대표작 <맹신자들(The True Believer)>이 출간되는데 이 책은 대중운동의 속성을 탐구한 책으로 2차 세계대전으로 황폐해진 유럽의 상황과 맞물리며 미국 사회에서 큰 관심을 받고 세계적인 명성도 얻게 됐어요.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과 사회에 대한 냉철한 현실 인식으로 세계적인 사상가의 반열에 오른 호퍼는 1983년 사망합니다. 그해 미국 대통령의 ‘자유훈장’이 수여됐고 2001년 호퍼의 이름을 딴 ‘에릭 호퍼 문학상’이 제정됐습니다.

1900년대 초반 미국 사회는?

최미선=에릭 호퍼가 살았던 당시 미국 사회 분위기를 전해주세요.


이은민=1900년경의 미국 사회는 이미 농업농촌사회에서 산업도시사회로 바뀌고 있었어요. 생활수준도 향상돼 20년 동안에 평균 수명이 49세에서 56세로 늘었습니다. 그렇지만 현대 미국인의 평균수명과 비교하면 매우 짧은 것이고 에릭 호퍼 집안도 50세를 넘는 사람이 없었어요. 아울러 팽창과 번영에는 가혹한 사회적 희생이 따랐는데 미국 사회의 근본 토대를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들이 나타났어요. 


첫째 문제는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이었어요. 국민의 1%밖에 안 되는 소수의 고소득층이 국가 전체 소득의 8분의 7을 차지하고 있었고, 빈민은 1000만 명에 이르렀어요. 노동자들의 근로 조건과 작업환경은 열악했고 산업재해율도 높아 작업장에서 많은 노동자가 죽어갔어요


둘째 문제는 국가 경제력의 대기업 집중이었어요. 이는 국민의 경제적 자유와 국민의 정치적 민주주의에 위협이 됐어요. 독점 기업의 출현으로 자유 경쟁의 원리가 무의미해졌고 기업가들은 의회 의원들을 매수하고 언론계에 막대한 돈을 뿌려 여론을 조성했어요. 


자연스럽게 빈곤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회정의운동이 일어났어요. 신문이나 잡지의 기자들이 사회의 어두운 면을 들춰내는 기사를 써서 대중에게 널리 알리게 되고 폭로성 기사들로 국민의 도덕적 분노를 일으켰어요. 


에릭 호퍼는 이런 대중운동의 맹점을 예리하게 분석했어요. 그는 <맹신자들>에서 ‘사람은 자신의 우월함을 뒷받침할 근거가 빈약할수록 자신의 국가, 자신의 종교, 자신의 인종, 자신이 지지하는 대의가 우월하다고 주장하기 쉽다’고 했어요. 아울러 대중운동의 맹신자는 죄의식, 실패, 자기혐오에 사로잡힌 좌절한 자로 자신의 무의미한 인생에 의미를 부여해 줄 것으로 여겨지는 운동에 열광적으로 투신한다고 했죠. 그 당시 이런 분석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어요.


1929년 주가가 대폭락해 대공황이 발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루즈벨트 대통령은 뉴딜정책을 추진해요. 뉴딜은 갑작스레 급조된 정책이었지만 미국인들이 대공황기에 잃었던 미국적 체제에 대한 신뢰감을 어느 정도 회복시켜 줬습니다. 뉴딜은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사회주의적인 요소를 끌어들이는 융통성을 갖고 있었죠. 미국인의 생활방식을 결정하는 중요한 이념으로 정부개입주의와 자유방임주의가 공존하게 돼요. 그러나 뉴딜로 대공황의 문제들이 모두 해결되지는 않아 1938년 실업자는 1200만(전체 노동인구의 1/5) 명에 달했습니다. 군수산업이 일어나게 되는 제2차 세계대전 때가 돼서야 실업은 완전 해소됐습니다.

인생책 <백치>

최미선=소설 <백치>와의 인연이 흥미로웠습니다. 이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이은민=에릭은 아버지가 앞을 보지도 못하고 기억까지 잃은 아들에게 “백치 자식, 백치 아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어요. 다섯 살이 되기 전에 읽는 법을 배운 에릭은 시력이 돌아오자 거침없이 읽을 수 있었어요. 시력 회복이 일시적인 것이라고 확신했기에 눈을 혹사시키는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눈이 멀기 전에 읽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읽고 싶었어요. 


집에서 멀지 않은 큰길 아래 있는 헌책방에 들어섰을 때 금박을 입힌 <백치>라는 글자의 책이 눈에 띄게 됩니다. 아버지의 말이 작용한 것 같아요. 그 책은 도스토옙스키의 <백치>였어요. 그에게 <백치> 첫 장의 스토리 전개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것으로 완전히 매혹됩니다. 그 후 해마다 그 책을 다시 읽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에릭 호퍼의 인생 책이었습니다.

굶주림 속에 자유를 얻다

최미선=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굶주림 속에서 자유를 얻은 장면이었습니다. 굶주림은 보통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데, 그는 오히려 자유를 얻었습니다. 나는 이 장면이 그가 살면서 고정된 자산을 형성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선생님은 굶주림 속에서 어떤 생각을 할 것 같은가요?


이은민=‘굶주려 죽은 사람이 제일 불쌍하다’고 할 정도로 굶주림은 극한의 고통입니다. 에릭의 굶주림 경험을 살펴보면, 굶은 지 사흘째 되던 날에는 마치 누가 손으로 위를 쥐어짜면서 가슴 쪽으로 밀어붙이는 것 같았다고 해요. 물을 마셨을 때 벌에 쏘인 것처럼 바깥쪽 머리가 따끔거렸고 머리카락이 빨리 자라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합니다. 몇 분 이상 앉아 있을 수가 없고 자신의 생각이 두려워 계속해서 걸었어요.
3일째 되던 저녁 메인 스트리트의 애완동물 가게 앞에서 비둘기가 담긴 새장을 보게 됩니다. 비둘기 두 마리가 서로 먹이를 건네주는 듯한 짝짓기에 앞선 행위와 짝짓기를 통해 끝을 모르는 열정으로 충만한 장면을 보고 모든 것을 망각한 황홀경을 느낍니다. 굶주림의 미스터리에 골몰한 나머지 자신의 일그러진 모습을 생각할 겨를이 없던 그가 비둘기를 지켜보면서 배고픈 것을 잊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배고픔은 단지 치통 정도의 감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면 잊을 수 있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며 몸의 가벼움과 자유로움을 느낍니다. 


생각은 감정을 동반하고 그 감정이 두려움으로 연결돼 하나의 환상을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철학자답게 극한의 경험도 객관적으로 관찰했어요. 


최미선 인문숲사회적협동조합 시민인문학교 교장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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