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쏭쏭샘의 심리로 마음 들여다보기> 가족의 습격

송영주 심리상담사/미술치료사 / 기사승인 : 2022-05-09 00: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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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TV 프로그램에서 다섯 살 난 아들이 엄마에게 패악을 지르며 소리를 지르고, 자기 뜻대로 되지 않자 엄마를 때리기까지 한다. 엄마는 속수무책으로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고 아이의 행동은 지속된다. 전문가가 직접 상황에 투입돼 아이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사람을 때리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야”라고 분명하고 단호한 어조로 말한다. 그때 전문가에게는 어떤 감정적 눈빛도 반응도 없다. 그런 사람에게 아이는 폭언과 폭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하지만 엄마에 대한 폭언과 폭력은 지속된다. 엄마의 눈빛은 무기력과 슬픔, 자책으로 물든다. 전문가는 엄마에게 마음 아파하지 말라는 눈빛을 보낸다. 아이에게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의 행동에는 원인이 있었다. 아이 아빠의 행동이 아이와 똑같다는 것이었다. 아이 아빠의 폭언과 폭행이 있었고 그것 때문에 가정이 해체됐던 것이다. 남편의 폭행과 폭언에 대해 아내는 현재 아이 앞에서처럼 무기력과 슬픔, 자책, 무너짐으로 반응했다.


아이는 그런 아빠의 모습을 왜 자기도 모르게 따라 하게 됐을까? 자신이 강자이고 싶기 때문이다. 자신이 강자일 때, 힘이 있을 때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왜 그 방법이 폭언과 폭력이었을까? 가장 처음 본 것이, 처음 배운 것이 아빠의 폭언과 폭력이었기 때문이다. 또 그것이 통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 아빠는 왜 폭언과 폭력을 사용했을까? 아이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강자일 때, 힘이 있을 때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왜 그 방법이 폭언과 폭력이었을까? 그건 그 아빠의 삶의 과정을 알아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엄마의 반응은 왜 무기력과 슬픔, 자책이었을까? 엄마의 삶의 과정은 잘 모르지만, 그 엄마는 자신과 다른 사람의 감정을 수용하고 알아주는 것에서 관계에서의 해답을 찾았을 것 같다. 감정적 수용에만 익숙한 그 엄마는 감정을 수용하거나 표출하거나 하는 식의 감정적인 훈육만 했지, 관계에서의 존중과 책임을 지는 이성적인 훈육은 하지 못했을 것으로 보였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가정은 해체됐고, 아이는 자신이 강자인 위치에서 지속적으로 자신의 욕구만 채우려고 했다. 엄마는 감정적인 대처만 하면서 아이에게 온탕과 냉탕의 온도 차만 보여주었지, 아이의 감정을 존중하면서 아이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지게 하는 행동은 지금껏 놓쳐왔던 것이다.


또 한 가족을 보았다. 이번에는 아이의 나이가 15세였다. 소위 사춘기라고 하는 나이다. 보통 사춘기라 하면 질풍노도의 시기, 반항의 시기라고 하는데 혹자는 ‘생각의 봄’이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이 생각의 봄의 표현방식은 여러 가지다.


이 아이의 ‘생각의 봄’을 표현하는 방식은 엄마에게만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엄마에게라도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엄마 입장에서는 참으로 곤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리라. 하지만 이 아이에게도 고충이 있었다.


이 아이 아빠의 목표는 건물주가 돼 파이어족이 되는 것이다. 아이의 아빠는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밤낮으로 일했으며 자신의 꿈을 향해 점차 나아갔다. 하지만 슬픈 일은 자신의 목표 말고는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아내에게도 아이에게도 나누어줄 여유, 정신적인 에너지가 이 아빠에게는 없었다. 여기에 더 심각한 것이 있다면 자신의 스트레스를 스스로 감당하지만, 가족의 어떤 요구가 들어오면 전부 다 가족 탓이 돼버리는 것이었다. 아빠가 주로 하는 말은 “나는 옆에서 건들지만 않으면 괜찮다” “너만 가만히 있으면 만사가 편하다” “네가 한 것이 뭐가 있느냐”는 것이다.


아이의 엄마는 너무나도 정서적인 사람이었다. 정신적인 나눔과 애정을 원하는 감성적이고 감정적인 사람이었다. 의도치 않았지만 아이 아빠의 성향은 아이 엄마에게 심한 결핍을 선사하고 말았다. 아이 엄마에게 아이는 동반자이자 벗이자 위안이자 안식처였다. 하지만 엄마의 그런 감정이 아이에게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으리라. 거기에 사춘기를 맞이해 만나게 되는 자신의 모습과 자기 과업의 처리, 또 장차 세상을 향해 나아갈 준비를 위한 에너지를 비축하고 준비해야 하는데 엄마의 감정을 받아줘야 할 에너지까지 공존케 하는 것은 아이에게 적잖은 부담이 됐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아이는 자신의 ‘생각의 봄’을 편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숨기며 살아왔다. 그래서 자신의 본래 성향을 부모에게서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편하게 드러내지 못했다. 자신을 드러내기가 조심스러웠을 것이다. 또한 자신을 향한 엄마의 마음을 알기에 부담과 불편함을 느꼈다. 아이의 ‘생각의 봄’은 간헐적인 폭발을 통해 안정감을 갈구하는 모습으로 드러났다.


우리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상대의 방식을 모방하기도 하고, 자신의 목표로 자신을 드러내기도 하고, 자신의 기질이나 성향을 드러내기도 하고, 자신의 역할 이행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런 각자의 모습이 어떻게, 무엇 때문에 드러나는지를 내가 모를 때 그것은 바로 ‘가족의 습격’이 된다. 하지만 이럴 때 되짚어 생각해보면 가족의 습격 안에는 내가 그 사람에게 한 내 행동이 들어있다. 내가 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 내가 그 사람에게 했던 행동이 들어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결국 가족의 습격은 자신이 과연 어떤 영향을 끼치며 살고 있는지, 가족에게 어떤 빛이 되고 싶은지 고찰하게 하는 과정이 되는 것이다. 그 습격에 미리 대비했다면 덜 놀라고 덜 아프고 덜 괴로웠겠지만 말이다.


송영주 심리상담사/미술치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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