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유불급(過猶不及)

김상천 시인 / 기사승인 : 2021-10-13 00: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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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향만리

가을이 된 청허당(淸虛堂) 다향만실(茶香滿室)에는 여느 때보다 손님이 많아졌다. 다향만실이니 오는 사람마다 찻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다. 대부분 차를 좋아하지만 개중에는 차를 잘 모르는 사람도 있다. 세심한 배려 없이 평소에 내가 마시는 대로 보이차(普耳茶) 생차(生茶)를 진하게 우려 내어놓았더니 한 모금 마시고는 고개를 흔들며 쓴 약을 먹는 모습을 했다. 순간 ‘아차 내가 또 실수했구나’하면서 후회한다. 아무리 좋은 차라도 손님에 맞게 내놓지 않으면 대접 안 한만 못하다. 손님에 따라 어떤 차를 권해야 할지 차의 농도는 어느 정도로 해야 할지 가늠하고 차를 대접하는 세심함이 있어야 한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의미의 과유불급(過猶不及)인 것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은 논어(論語) 선진편(先進篇)에 나온다. 어느 날 공자(孔子)의 제자 자공이 묻기를 “자장과 자하는 어느 쪽이 어집니까”라고 하니 공자는 “자장은 매사에 지나친 면이 있고 자하는 부족한 점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자공이 “그렇다면 자장이 낫다는 말입니까”하고 묻자 공자는 “그렇지 않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過猶不及)”고 했다. 공자는 너무 지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즉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는 중용(中庸)을 말했던 것이다. 찻자리에서 팽주(烹主)가 지켜야 할 덕목 중에 그 첫째가 과유불급이다. 중정(中正)을 따르지 않는 찻자리의 어떤 것도 좋다 할 수 없는 것이다.


차(茶)의 체(體)라고 할 수 있는 물도 지나치면 미치지 못함과 같다. 물의 성질이 너무 강해도, 약해도 차의 맛과 향을 극대화할 수 없다. 물을 끓일 때도 완전히 끓인 다음 70도 정도로 식혀서 차호에 부어야 한다. 다산(茶山)은 “포법(泡法: 차를 넣는 법) 역시 중정(中正)을 취하는 것이 요령이라 하겠는데 이를테면 다관(茶罐)의 온도가 적당해야 하고 차를 넣고 탕수를 부은 다음 차와 물이 잘 어우러져야 하며 찻잔에 차를 따르는 것도 빠르면 차의 신기(神氣)가 나타나지 않고 늦으면 향기가 사라지는 것이니 이 역시 중정(中正)이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차를 따를 때 가끔 아내에게 핀잔을 듣는다. 작은 잔에 차를 따르다 보면 넘치거나 모자랄 때가 가끔 있다. 그때마다 아내는 좀 모자라는 것은 괜찮지만 넘치면 곤란하다고 하면서 천천히 따르라고 조언하는 것이다. 만사가 그렇지만 찻자리에서는 넘치면 안 된다. 물과 차, 다기, 포법 그 어느 것이라도 넘치는 순간 차의 정신을 잃어버리게 된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인 것이다.


차(茶)를 수액(水厄: 물고문)이라 부르는 경우도 있다. 유의경(劉義慶)이 쓴 <세설신어(世說新語)>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동진(東晉)의 관리인 왕몽(王蒙)은 차를 좋아해서 하루에 많은 차를 마셨는데 그를 찾는 손님에게도 차 마시기를 계속 권하므로 차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차 마시는 것이 고역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차를 수액(水厄)이라 불렀다고 한다. 아무리 효능이 좋은 차라도 억지로 많이 마시면 고역이 되는 것이다. 


때로는 찻자리 담론이 길어지고 격해지게 되는데 그 후유증으로 오랫동안 마음이 무겁다. 차라리 만나지 않은 것만 못한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찻자리에 앉으면 과유불급을 속으로 새기면서 차를 우려내고 대화한다. 차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차의 중정(中正)은 어느 정도 지키는데 찻자리의 대화는 중정을 지키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상대방이 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다. 찻자리에 함께 하는 지인들과 대화할 때 정치 이야기와 종교 이야기는 서로 절제(節制)하자고 말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절로 정치 이야기가 대화의 중심에 들어오고 격해지는 것이다. 입이 방정(方正)이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 비단 찻자리뿐만은 아닌 것 같다. 말이 많으면 실수가 많다. 말 때문에 곤욕을 치르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과유불급의 차를 우린다.


김상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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