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기록> 선생님과 그저 먼저(先) 태어났을(生) 뿐인 사람

김유신 기억과기록 회원 / 기사승인 : 2022-05-09 00: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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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그런 날이 있다. 굳이 갈 필요 없는 장소에 가고 싶거나, 굳이 갈 이유가 없는 시간에 문득 어딘가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날 말이다. 얼마 전 굳이 커피를 마실 이유가 없는 시간에, 평소에는 잘 가지도 않을 장소에 있는 카페에 가고 싶어졌다. 카페에 들어서는 순간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고, 바로 알아봤다. 주문한 뒤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러자 상대방도 벌떡 일어나서 내 얼굴을 보며 “OO고 2학년 4반 유신이!”라고 외치듯이 말했다.


그곳에서 만난 분은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셨다. 그동안 수많은 학생이 있었을 텐데 이름은 물론이고 여러 가지를 구체적으로 기억하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 그 선생님은 무섭기로 유명했다. 2학년이 되던 날 운동장조회에서 본인이 4반 담임이라고 했을 때 다른 반 아이들이 보인 반응만으로도 우리는 공포에 떨었다. 하지만 막상 겪어보니 악명과는 달랐다(사고를 치고 학생부에 갔던 학생들이 퍼뜨린 악명이었다). 엄격한 모습을 보일 때도 많았지만 학생들을 위하는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에 2학기 말에는 다들 헤어짐을 아쉬워했다. 지금도 고등학교 친구들과 만나면 “그 선생님은 어떻게 지내실까?”, “진짜 좋은 분이셨는데”하며 궁금해하는 선생님이었다.

먼저 태어났을 뿐인 사람

그날 저녁 아내에게 낮에 있었던 일을 말해주자 “나는 고등학교 때는 기억도 하기 싫어. 우리 선생들은 뭐만 하면 때리고, 정신교육 한다고 1반부터 11반까지 다 때리고. 너무 맞아서 자퇴하는 애들이 10명이 넘었어”라고 했다. 선생들은 ‘사랑의 매’, ‘너희 잘되라고 때리는 거다’하는 식의 말을 붙였는데, 그게 아무 의미 없는 말이라는 것 정도는 어린 학생들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아내는 선생의 안부가 아니라 “어린 애들을 왜 그렇게 때렸을까”를 궁금해한다.


초등학교 때 ‘열린 교육’을 내세운 담임이 있었다. 첫날, 학생들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존중하고 열린 마음으로 학생들을 대할 거라고 했다. 다른 반 아이들은 우리 반을 부러워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담임이 만든 틀을 빈틈없이 지켜야 했고 그러지 않으면 반 아이들 앞에서 망신을 주거나 뺨을 사정없이 때렸다. 같이 하교하던 친구들은 “이게 무슨 열린 교육이냐 닫힌 교육이지”라며 불만을 표했다. 학년말 운동장조회 시간에 ‘열린 교육’에 대한 공로로 상을 받는 담임을 보며 일부 학생을 제외하고 진심으로 박수를 치는 아이들은 없었다.


오래전부터 언론에서는 교권 추락 문제를 우려했다. 하지만 그런 기사에 달린 댓글은 ‘누가 교권을 떨어뜨렸는데’, ‘자초한 일이다’는 의견과 자신이 학창 시절 경험한 선생으로부터의 폭력이 다수를 차지한다. 그것만이 절대적 이유는 아니겠지만 어린 나이의 학생들에게 어른의 행동이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며, 부모님의 학창 시절 이야기를 들어보면 특히 부정적인 경험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오래도록 남는다.


학생에게 몽니를 부리고, ‘왜 우리를 그렇게까지 때렸을까?’하는 궁금증을 남기는 사람보다 학생들이 진심을 느끼고 어른이 돼서도 안부를 궁금해하는 선생님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김유신 기억과기록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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