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도시

이은민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인문강사 / 기사승인 : 2021-10-13 00:00:02
  • -
  • +
  • 인쇄
서평

 

갑작스럽게 눈이 먼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도 세상 사람 모두가 눈이 멀어 나를 도와줄 수도, 지켜줄 수도 없다면? <눈먼 자들의 도시>는 1995년 출간된 주제 사라마구의 충격적인 디스토피아 이야기다. 1922년 포르투갈에서 태어난 그는 공산주의 정당에서 활동하다 국외로 강제 추방돼 번역가, 언론인 등으로 생활했다. 1998년 <수도원의 비망록>으로 노벨상을 받는 등 늦은 나이에 창작의 열정을 불태운 작가다. 


눈이 멀게 되는 전염병, 모든 것이 하얗게 보여 우유의 바다에 들어간 것 같은 두려운 ‘백색 질병’이 발생한다. 눈이 안 보이는 원인은 밝혀지지 않는다. 초기에 실명을 전염병으로 인식한 정부와 정치인들은 전염병을 통제하기 위해 정신병원에 실명 환자들과 보균자들을 강제로 격리한다. 적절한 보호와 체계적인 관리 없이 소량의 음식만 제공된 채 방치돼 격리된 모든 이들이 실명자가 된다. 외부에서 실명된 자들까지 들어와서 몇백 명이 열악한 상황에서 살아야만 한다. 실명된 자들이 모여 있는 공간은 인간이 생존할 수 없는 생지옥이 된다. 우선, 제대로 된 화장실과 샤워 시설이 없었기에 악취가 진동하고 위생 상태는 위태로울 지경이다. 처참한 상황에서 인간 존엄은 사라지고 자신도 몰랐던 나약함을 발견하게 된다. 눈을 멀었지만 눈이 먼 세상 속에서 다른 차원의 눈을 뜨게 된 것이다. ‘두려움은 실명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스토리의 중심인물은 안과의사와 그의 아내다. 의사 아내는 실명한 남편이 걱정돼 함께 격리소에 들어오며 자신이 앞이 보인다는 사실을 주위에 숨긴다. 혼자만 볼 수 있다면 다행일까? 실명 후 폭도로 변한 사람들 속에서 그 참상을 생생히 볼 수 있다는 건 형벌에 가까웠을 것이다. 의사 아내는 차라리 자신도 눈이 멀기를 바랄 뿐이다.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성은 상실되고 인간의 본성 중 동물적인 측면이 부각돼 폭력, 협박, 집단강간, 살인 등 온갖 범죄와 죄악이 자행된다. 눈먼 자들 안에서 총을 가진 거친 무리가 생겨나 식량을, 귀중품을, 여자들을 차례로 요구하며 폭력을 행사한다. 혼돈 속에서 유일하게 실명하지 않은 의사 아내는 여자들과 자신이 당한 처절한 고통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치로 인해 폭도 대장을 처참히 죽이게 된다. 사악한 인간무리가 나약한 인간을 유린하는 이 대목은 읽는 내내 숨이 막히고 공포에 몸서리가 쳐졌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인간의 야만성과 잔혹성을 보게 돼 괴로웠다. 소수의 용기 있는 남자들이 싸워 보지만 눈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 폭도들이 무차별적으로 총을 쏘아대 이길 수가 없다. 결국에 의사 아내가 그 방에 불을 지르고 점차 모든 건물이 불타 버린다. 


탈출로 자유를 얻게 된 한 무리의 실명인이 밖으로 나오니 이미 온 세상은 눈먼 자들로 가득하다. 의사 아내는 무리의 리더가 돼 그들을 이끌고 음식을 찾아 위험한 여행을 감행한다. 길에 쓰러진 시체가 새의 먹잇감이 되는 모습을 혼자 봐야 하는 고독과 홀로 음식을 구하기 위해 다른 이들과 사투를 벌이는 처참함에도 무리를 지키려 눈물을 삼키는 그녀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결국 그들의 아파트를 찾게 되고 자그마한 안식을 누리게 된다. 원인을 알 수 없던 전염병은 갑자기 최초 눈먼 남자가 눈이 보인다며 소리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실명의 전염병은 코로나 팬데믹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 실감 나게 다가온다. 눈이 멀지 않은 사람들이 눈먼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코로나 확진자와 밀접접촉자를 낙인찍으며 피하려는 행태와 유사한 것 같다. 작품은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주어지지 않는 비위생적이고 비윤리적인 상황에 던져진 인물들의 깊은 내면을 철저히 파헤친다. 가치와 윤리가 상실된 인간의 본성을 잘 드러낸다.


“문제는 이 여자를 여기에 내버려 둘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거야. 물론 여기에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의사가 말했다. “그럼 힘을 내야죠.” 그들은 일을 시작했다. -<눈먼 자들의 도시> 중에서


의사 아내와 실명인 몇몇이 군인들에 의해 사살됐던 사람들을 닦아주고 묻어 주는 대목은 깊은 울림을 준다. “우리가 이루어낼 수 있는 기적은 계속 살아가는 거예요.” 의사 아내는 지켜야 할 눈먼 사람들이 있고 눈먼 사람들은 눈이 보이는 유일한 사람이 있기에 서로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인간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연대하는 것만이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고통을 나누고 서로 의지하고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 인간다움인 것 같다. 


이은민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인문강사

 

[저작권자ⓒ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이은민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인문강사 이은민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인문강사

기자의 인기기사

뉴스댓글 >

오늘의 울산 이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