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떠나는 기억 여행

백성현 글 쓰는 아빠 / 기사승인 : 2021-10-13 00: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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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일기

아직 아이들이 홀로 나다니지 못하는 시기라면, 평소 엄마와 아빠는 일탈(?)의 시간을 갖기 어렵다. 엄마 아빠가 누릴 수 있는 일탈이라고 해봐야 고작 한 주간 못다 한 잠을 자거나 낚시 혹은 하이킹을 하거나 평소 보고 싶었던 친구들을 만나 썰을 푸는 것이 전부다. 하지만 이 시기엔 이마저도 꿈이렸다. 이런 자그마한 바람조차도 좀처럼 누릴 수 없다는 게 조금은 서글프다.


특히 주말이면, 마음으론 치열했던 일상에서 벗어나 ‘정말 쉬고 싶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고 싶다가도 그만 포기하고 만다. 아내나 나나 힘들긴 마찬가지니까. 더군다나 일주일 내도록 아이를 버려뒀다는 이유로 아빠인 난 주말에 아이랑 찰싹 붙어살아야 한다. 반면 엄마 아빠의 마음과는 달리 아이는 주말이 오기를 기다린다. 동시에 우리 아이는 일곱 살 남자 아동이라 함께 놀아줄 아빠를 찾는다. 아직은 말이다. 아이는 어김없이 “오늘은 뭐해”하며 물어온다. 아이의 이 질문이 섬뜩하게 다가올 줄이야. 아빠인 난 머뭇머뭇. 나 역시도 뭘 해야 하지, 뭘 하고 싶지 하는 생각을 잊은 지 오래다. 그런 날 아내는 한심하단 눈으로 본다. 못난 아빠다.


가끔 아이랑 뭘 할까 하는 고민을 누군가가 덜어주기도 한다. 감사하게도 톡으로 메시지로 울산 곳곳의 공연이나 행사일정을 알려준다. 아이랑 함께 참여하기에 좋은 행사라는 생각이 들면 우선 아내에게 넌지시 물어본다. 아내로부터 “좋다”는 말을 듣게 되면, 분명한 건 칭찬은 아닌데 왠지 칭찬을 들은 것처럼 우쭐해하며 어깨가 올라간다. ‘이번 주는 무사히 넘길 수 있겠다’는 안도감을 가지면서 나 역시 그날을 기다린다.


어느 날 톡으로 알려왔다. ‘기억 여행’이라는 제목으로 세월호 사건 유가족들이 직접 출연하는 연극이란다. 보통의 연극과는 달랐다. 세월호라는 실제 사건을 이해관계가 없는 배우나 대역이 아닌 이해 당사자들의 가족이 직접 출연한단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세월호 사건을 모를 리 없다. 정쟁으로 얼룩져 속 시원히 결론 내리지 못하고 여전히 표류하고 있다. 그동안 이 사건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들이 존재해 왔지만, 그로 인한 헤게모니와 이해득실만 따지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개인적으로 그저 아이를 잃은 그들의 입장을 먼저 고려했더라면 진즉에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마침 코로나로 대면이 어려워진 이때, 그들을 면전에서 볼 기회가 또 있을까. 마음이 야박하고 엄혹한 시대에 무엇보다 마음을 공유할 사람이 절실하다는 걸 몸소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이 사건이 가진 의미와 진중함을 우리 아이가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아직 일곱 살에 불과한 아이가 이해할 수 있을까 걱정도 들었다. 긴 설명이 필요한 사건이라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려다가 그만뒀다. 아이에겐 그저 실제 배에서 자녀를 잃은 엄마들이 나오는 연극이라고만 얘기했다. 하지만 기우였다. 아이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가끔 커다란 목소리와 동작으로 그들에게 화답하고 있었다.


연극은 시간을 되돌리고 있었다. 현재에서 과거로. 그들의 실제 이야기는 다소 묻힌 듯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만 가고 있다. 하지만 그 기억을 떠올려야만 할 이유가 존재한다. 우리는 부모이자 자녀이기 때문이다. 우울할 것만 같았던 연극은 가끔 우리를 웃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뭉클한 메시지를 전하며 오히려 눈물을 훔치는 관객들을 위로하는 것만 같았다. 마지막 장면이 생생히 떠오른다. 수학여행을 떠나는 아이들에게 엄마는 이것저것 챙기며 시시콜콜 재밌게 놀다 오라고 말했다. 그리고 떠나는 아이를 바라보며 “보고 싶다”는 말을 전하면서 연극의 막을 내렸다. 그 아이들은 그들의 기억,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히지 않을 것이다. 살다 보면 아프지만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그 기억은 켜켜이 쌓여 우리를 한 뼘 더 성장하게 만들 것이라 믿는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바로 뒤에 앉았던 분들이 밖을 나서며 아이더러 ‘최고의 관객’이었다며 엄지척을 보여주었다. 아빠로서 얼마나 뿌듯한지… 그리고 이번 주말은 행복했다.

 

 백성현 글쓰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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