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불안의 메타포 <버닝>

이민정 영화인 대경대 방송영상과 겸임조교수 / 기사승인 : 2021-10-13 00: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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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문학

이창동의 극단으로 치닫는 내러티브

<초록물고기>(1997), <박하사탕>(2000), <오아시스>(2002), <밀양>(2007), <시>(2010), <버닝>(2018). 이창동 감독의 대표작이 아니라 연출 전작(全作)이다. 그의 작품은 늘 이슈를 몰고 다니며 매번 많은 영화제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됐다. 한석규, 설경구, 문소리는 영화를 통해 훌륭한 배우로 한 계단 올라서는 계기가 됐고, 전도연이었기에 그의 작품은 ‘예술’이 되었다.

 

 


이창동 감독은 고등학교 국어교사를 하다가 <그 섬에 가고 싶다>(1993, 박광수)의 각본으로 참여하면서 영화계에 입문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내는 동안 넥타이를 풀어헤친 일화가 유명하다. 2019년 전주국제영화제 위원장 자리를 놓고 지역민과 프로그래머 간 갈등이 있었는데, 동생인 나우필름 대표 이준동이 들어가면서 사태가 일단락된 바 있다.

 


이창동 감독은 이면(裏面)의 비루함과 희생자의 절대상실에 관심이 큰 것으로 보인다. 주인공은 공히 ‘가지지 못한 자’들인데다 영악함도 없이 너무나도 구질구질해서 희생당하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초록물고기>의 막둥이(한석규 분)는 살던 논밭에 고층건물이 우후죽순 들어섰어도 짚고 헤엄칠 땅 한 조각 없고, 조폭 심부름꾼이나 하다가 처참하게 살해당한다. <박하사탕>에서 퇴행적 삶만 살아온 영호(설경구 분)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생채기에서 평생 피고름 흘리며 살아오다 기찻길에서 추하게 악다구니를 질러대며 달려오는 기차와 마주하고, <오아시스>의 중증장애인(문소리 분)은 자신을 성폭행한 전과자와 사랑에 빠진다. <밀양>에서 신애(전도연 분)는 산 입의 거미줄을 걷어내랴 바쁘면서도 허세를 부리다 유일한 삶의 이유인 아들을 납치로 잃는다. 그녀가 기껏 할 수 있는 것은 목사를 불륜으로 이끌며 하늘을 향해 엿을 먹이는 것밖에 없다. <시>에서는 복잡한 가정사를 배경으로 요양사 일을 하며 치매로 향하는 미자(윤정희 분)가 손자가 저지른 윤간(輪姦)의 죄를 ‘황혼성폭행’으로 돌려받으면서 아름다운 시(詩)를 써보겠다고 애쓴다. 감독의 가장 최근작인 <버닝>은 보기만 해도 숨통이 터질 것 같은 종수(유아인 역)가 ‘찢어진 비닐하우스’ 취급받는 여성을 사랑하더니, 그녀가 살해당하자 그녀와 자신을 유린한 자에게 처절한 복수를 한다. 그러나 한파에 벌거벗고 온몸에 피칠갑을 한 채 오들오들 떠는 모습은 텅 빈 그녀의 방에서 한없이 자위하던 찌질찌질한 모습에 다름없다.


<밀양>에서 감독은 용서에 대해 민감하게 다루고 있지만 사실 그는 고매한 감상(感賞)에는 전혀 무관심한 것 같다. 용서를 받을 자와 할 자의 괴리감만 확인할 뿐이다. 그나마 해피엔딩처럼 보이는 <오아시스>도 성폭행범을 사랑하는 장애인 여성 주인공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힐난으로 들끓었던 것은 작품들의 맥락상 이 또한 감독이 의도했던 바가 아니었을까 싶다.


<버닝>은 액면으로는 물질적으로 ‘많이’ 가진 자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자를 ‘찢어진 비닐하우스’ 취급하며 태워버리는(살인하는) 취미를 가진 일종의 사이코패스 영화처럼 보이지만 이창동의 이 영화는 아주 많은 숨은 그림으로 메타포한 작품이다. 어리숙함과는 대조적으로 사랑하는 그녀의 흔적만으로도 자위행위를 반복하는 종수의 모습은 ‘늦바람 든 발정 난 수캐’가 아니라 정신적 성장은 아직 미성숙하지만 신체적 성장은 완성에 가까운 청년의 모습을 은유한다. 부유한 자들이 물려받은 부(富) 덕분에 좋은 음식, 안락한 장소, 아름다운 음악, 쾌적한 공기를 맡을 때 빈곤으로 허덕이는 자들은 질 나쁜 음식, 불편한 장소, 북한의 대남방송 소음, 소똥 냄새를 맡으며 지친 몸을 제대로 뉘지도 못한다. 그들이 공유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떨(대마초)’을 통한 환각상태 뿐이다. 그마저도 가진 자는 환각 속에서 익숙하게 여유를 부리는 반면 빈자(貧者)는 미처 볼 여유도 없던 일상의 한 조각에 감격해 눈물을 터뜨리고 행복해한다.


산업혁명과 함께 만들어진 청년이란 단어가 그들에게 익숙한 기계에 밀리면서 불안해한다. 극중 종수가 환각에서나 감동할 수 있었던 일상을 청년들에게 되돌려 줄 방법을 ‘꼰대’들이 신중하게 고민하고 찾아내야 한다. 그 시절을 살아낸 어른들이 해야 할, 배려가 아닌 책무다. 


이민정 영화인, 대경대 방송영상과 겸임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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