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분 20초 전의 빛

이영두 울산대학교 전기공학부 연구교수 / 기사승인 : 2021-10-12 00: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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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자연과학

노을이 점차 하늘에서 산 위로 소록히 내려앉는 가을이다. 이 가을의 아름다운 빛깔을 우리 눈에 선사해 주는 것은 바로 빛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나는 이 빛은 8분 20초 전에 만들어진 ‘과거의’ 빛이다. 1983년 열린 17회 국제 도량형 총회에서 진공 속 빛의 속도는 29억979만2458m/s로(초속 약 30만km) 정의됐다. 지구와 태양 간의 거리는 약 1억5000만km. 빛의 속도로 8분 20초가 걸린다. 우리의 현재를 비춰주는 존재가 과거로부터 찾아와 줬다는 사실이 이채롭다. 빛의 속도를 흔히 사용하는 시속으로 환산하면 약 10억8000만km로 우리에게 있어 그 빠름의 느낌을 알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속도다. 이렇게 빠른 빛의 속도를 어떻게 측정할 수 있었을까?


빛의 속도에 대한 고찰 기록은 고대 그리스 시대로부터 시작된다. 기원전 2500년경에 살았던 시칠리아섬의 철학자이자 의사이며 시인이었던 엠페도클레스는 사람이 물체를 볼 수 있는 것은 눈에서 빛이 나와 물체에 닿기 때문이라는 이론을 제시했다. 눈에서 나온 빛이 물체에 닿아야 하므로 빛의 이동에 따른 시간이 필요함을 주장했다. 그리스의 수학자 유클리드는 엠페도클레스의 이론을 바탕으로 빛의 직진성을 수학적으로 도시했다. 그리고 알렉산드리아에서 활약했던 발명가이자 수학자였던 헤론은 밤하늘의 별처럼 현저하게 멀리 떨어진 물체도 눈을 뜸과 동시에 바로 볼 수 있으므로 빛의 속도는 무한하다고 주장했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빛의 속도에 대한 논쟁은 빛의 속도가 유한한지 무한한지 구분하는 데 초점이 있었으며, 이후 그리스 문명을 이어받은 이슬람과 그 다음을 잇는 중세를 거치면서도 논쟁은 계속됐다.


17세기에 이르러 빛의 속도를 측정하는 의미 있는 실험이 진행됐는데 바로 1676년에 진행된 덴마크의 천문학자 올레 뢰머의 이오식에 대한 관측실험이다. 이오는 목성의 위성 중 하나로 이오식은 이오가 목성을 돌다 목성의 그림자에 의해 가려지는 현상을 말한다. 관측실험의 결과로부터 그는 지구가 공전궤도를 따라 이동하며 목성과 가까워졌을 때의 이오식이 멀리 있을 때보다 22분 빨리 나타나는 것을 확인했다. 그는 이런 차이가 일어나는 것이 빛의 속도가 유한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천문학적 방법으로 빛의 속도 약 21.2만km를 산출했다. 이 결과는 현재의 값과 비교하면 약 26%의 오차를 가지지만 최초로 빛의 속도를 정밀하게 측정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 림1: 피조 장치 ⓒ위키피디아

19세기, 천문학적 방법이 아닌 톱니바퀴를 사용해 빛의 속도를 측정하는 실험이 프랑스의 물리학자 이폴리트 피조에 의해 진행됐다(그림1 참조). 광원으로부터 출발한 빛이 회전운동하는 톱니바퀴의 골을 통과해 거울에 반사되고 다시 톱니바퀴의 골을 지나 관측되는지 확인하는 실험이다. 톱니바퀴가 느리게 회전하는 경우 빛은 통과한 톱니바퀴의 골을 그대로 다시 통과해 돌아와 관측된다. 점점 톱니바퀴의 속도를 높이면 관측되지 않는 회전속도를 찾게 되는데 이 회전속도와 톱니의 수 그리고 톱니와 거울 사이의 거리를 이용해 피조는 약 31.3km, 4.5% 오차범위의 결과를 측정했다. 피조의 실험은 이후 푸코 진자로 유명한 푸코에 의해 보다 정밀하고 간소한 실험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푸코의 실험에서는 톱니바퀴 대신 회전거울이 사용됐다. 광원으로부터 빛이 나와 느리게 회전하는 거울에 반사되면 그 빛이 특정 위치에 있는 반사경을 통해 다시 회전하는 거울로 돌아오게 되는데 이때 회전하는 거울은 마치 고정된 상태로 있어 빛을 그대로 광원 쪽으로 다시 되돌려 주게 된다. 하지만 회전거울의 회전속도가 점점 빨라지면 빛이 반사돼 돌아왔을 때 더 이상 원래 위치를 유지하지 못하게 돼 빛은 광원 쪽으로 반사될 수 없게 된다. 이런 결과로부터 푸코는 빛의 속도 값으로 약 29.8만km를 측정했다.

 

1879년 미국의 물리학자 마이컬슨은 빛의 속도를 정밀하게 측정한 실험을 수행했고 이것으로 노벨물리학상을 받게 됐다. 마이컬슨의 실험은 푸코의 실험을 보다 정밀하게 확장한 것으로 기존 회전거울을 정팔각, 정십이각, 정십육각의 형태로 사용했다. 이 실험에서 그는 윌슨산과 샌안토니오산 사이를 왕복하는 빛을 200회 측정했고, 바람의 속력과 방향까지 고려해 측정값을 보정한 아주 정밀한 측정 실험을 수행했다. 이로부터 마이컬슨은 29만9796±4km라는 정밀한 값을 측정했다. 이후 20세기에 이르러서는 레이저의 간섭 등을 이용한 기술들을 바탕으로 보다 정밀하게 빛의 속도를 측정함으로써 현재의 빛의 속도 값을 얻게 됐다. 


만약 지금 누군가 우리에게 빛의 속도를 어떻게 측정할 수 있겠냐고 물어본다면, 그리고 빛의 속도를 측정했던 과학사를 들어본 적이 없다면 우리는 아주 막막한 기분이 들 것이다. 빛의 속도 측정은 한 사람의 노력으로 이뤄진 결과가 아니라 함께 고민한 많은 사람의 노력과 그 노력의 축적으로 얻은 결과다. 사람을 알아가는 것은 어떨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는지 어떤 묘한 값들을 갖고 있는지 우리는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우리가 만나는 빛은 8분 20초 전의 빛이지만, 우리가 만나는 사람은 00년 전의 사람이다. 


이영두 울산대학교 전기공학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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