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튼의 글로리아나

황은혜 기억과 기록 회원 / 기사승인 : 2021-12-27 00: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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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기록

 

20세기 영국 최고의 작곡가였던 벤자민 브리튼은 1953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 축하 오페라의 작곡을 의뢰받아 <글로리아나>의 음악들을 작곡했다. 일찍이 오페라로 명성을 날린 그였지만, 이 작품만은 대중의 외면을 받게 된다. 물론 당사자인 여왕의 반응도 매우 시큰둥했다. 그러나 60년 후, 이 작품은 그 가치가 재조명돼 브리튼 탄생 100주년과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 60주년을 기념해서 다시 무대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많은 오페라 팬들로부터 찬사를 받는다. 그동안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글로리아나>의 주인공인 엘리자베스 1세의 아버지는 자신의 이혼을 위해 로마 가톨릭과 결별하고 영국 국교 성공회를 설립한 헨리 8세다. 그는 여섯 번 결혼하고 두 명의 부인을 죽인 왕으로 더 유명하다. 어머니는 헨리 8세의 두 번째 부인으로 결혼 2년 만에 처형당한 앤 불린이다. 


엘리자베스 1세는 70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기 때문에 ‘처녀 여왕(The Virgin Queen)’으로도 불렸고, “짐(朕)은 국가와 결혼했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녔다고 한다. 그녀가 통치하는 45년 동안 잉글랜드는 유럽의 극빈국에서 세계 최대의 제국으로 발전했다. 문화적으로도 황금기였는데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문학과 프랜시스 베이컨의 경험론 철학이 그 대표적인 성과다. 제목인 <글로리아나>도 1588년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퇴한 영국군이 여왕을 향해 외쳤던 찬사에서 연유한 별칭으로, 영국 최고의 전성기를 열었던 여왕에 대한 경의의 표시였다. 이쯤에서 짐작하겠지만, 새로운 여왕에 엘리자베스 2세라고 호칭을 붙이게 된 것도 엘리자베스 1세와 같은 훌륭한 군주가 되라는 의미에서였다고 한다. 이토록 훌륭한 여왕이 주인공으로 나오는데, 왜 인기를 얻지 못했을까?


1953년 엘리자베스의 즉위식에서 초연됐던 <글로리아나>의 가장 큰 문제는 엘리자베스 1세의 업적과 냉철하고 이성적인 군주의 모습만 보여준 게 아니라는 것에 있었다. 여기에 등장하는 여왕은 즉흥적이고 충동적이다. 자신보다 무려 30살도 넘게 어린 백작에 대한 사랑과 질투에 사로잡혀 백작 부인의 아름다운 옷을 훔쳐 입기도 한다. 새 왕의 즉위식에는 어울리지 않는 스토리인 것이다. 이 이야기를 왜 즉위식에서 선보였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런데, 지난 60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대중들에게 외면받던 오페라가 어떻게 다시 무대에 설 수 있었을까? 작품의 줄거리도, 여왕도 바뀌지 않았는데 말이다. 


누군가는 즉위식에 어울리지 않았을 뿐 음악적으로 대단한 작품이기 때문이라고 하고, 또 누군가는 인간에 대한 대중의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분명한 건 사람들의 생각이 변한다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 것보다는 변하는 게 더 반가운 일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절대로 허용되지 않던 일을 허용하게 되고, 그동안 관심 갖지 않았던 것에 관심 갖게 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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