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가난, 열정, 고집, 고독 속에서 피어난 위대한 화가...<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읽고

이해규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회원 / 기사승인 : 2022-03-13 18:4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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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와 전태일

‘영혼의 화가’, ‘태양의 화가’라 불리는 네덜란드의 인상파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에 대해서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그가 그린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이라는 작품은 인테리어 소품으로 수많은 곳에 모사품이 걸려있듯이 고흐는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위대한 화가다. 그의 삶의 이력과 예술세계를 들여다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일인데 그의 생전에 가족, 지인들과 교유했던 800통에 가까운 편지글이 사후에도 잘 보관돼서 이것이 고흐의 생애를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한다. 편지가 한 개인의 내밀한 사생활과 고민을 담고 있다고 할 때 우리는 고흐의 편지를 읽으면서 그의 진실된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한때 <전태일 평전>을 읽고 그 처절한 배고픔과 부조리한 현실에 살아야 했던 청년 전태일의 삶에 분노하고 슬픔을 함께 느끼기도 했는데 고흐의 편지를 읽으면서 묘하게도 고흐와 전태일의 삶이 비슷하기도 하고 그 파국적 결말이 너무 가슴 아프기도 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이라면 그들의 생이 짧았다는 것과 배고픔과 가난에 너무도 상처를 받았다는 것, 젊은 날 쾌락을 맛보지 못했다는 것과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안타까움일 것이다.


<반고흐, 영혼의 편지>는 1999년에 출간해서 지금까지도 꾸준히 잘 팔리고 있는 스테디셀러다. 고흐의 편지 800통에서 주로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간추려서 시간순으로 모아 책으로 낸 것이다. 편지와 관련된 그림도 많이 삽입돼 있어서 책은 시각적으로도 즐거움을 선사한다. 내가 느낀 이 책의 키워드는 가난, 열정, 고집, 고독이다.

가난

고흐는 20대를 화랑 점원으로 전전했다. 목회자가 되고자 했으나 여의치 않아 20대 후반에 늦깎이로 화가의 길로 들어서면서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린다. 집세를 제때 못 내거나 그림을 그릴 캔버스와 팔레트가 다 떨어져서 동생 테오에게 늘 ‘돈 10프랑만 보내다오’, ‘물감과 캔버스를 구해다오’, ‘이른 시일 안에 돈을 부쳐다오’ 하면서 생활고를 토로하는 내용이 자주 보인다. 그 간절함이 통했을까. 동생 테오는 자신도 부족한 생활에서 형을 걱정하고 아낌없이 돕는다. 고흐는 여동생 윌레미나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테오가 없었다면 그림을 제대로 그릴 수 없었을 것이다. 친구 같은 테오가 있었기에 내 그림의 수준이 나아지고 모든 게 제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라면서 동생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테오의 절대적인 신뢰와 경제적 뒷받침 속에서 고흐는 수많은 그림을 그릴 수 있었고 그만의 독특한 화풍을 지켜나갈 수 있었다.

열정

모든 예술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열정’은 당연한 것이나 고흐에게는 유난히 이런 부분이 돋보인다. 그는 1888년 9월에 테호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두 가지 색을 결합해 연인의 사랑을 보여주는 일, 그 색을 혼합하거나 대조를 이뤄서 마음의 신비로운 떨림을 표현하는 일, 얼굴을 어두운 배경에 대비되는 밝은 톤의 광채로 빛나게 해서 어떤 사상을 표현하는 일, 별을 그려서 희망을 표현하는 일, 석양을 통해 어떤 사람의 열정을 표현하는 일, 이런 건 결코 눈속임이라 할 수 없다.”면서 ‘색’으로 상징하는 그림에의 끝없는 열정과 집착을 보여줬다.

고집

‘고집’. 이것은 고흐의 편지에서 자주 느껴지는 말이다. 편지 곳곳에서는 유행과 대중의 기호에 휩쓸리지 않는 그림을 일관되게 그리면 가난은 면치 못하겠지만 자신의 영혼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한 가치라는 것을 계속 강조한다. 실제로 고흐가 살아 있을 때 900여 점의 그림을 그렸지만 딱 한 점 팔렸다는 이야기는 능력이 없었다기보다는 그의 꺾이지 않는 예술가로서의 신념을 보여준다. 마주하는 자연의 순간순간에 감탄하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이웃들을 예사롭게 보지 않고 화폭에 담는 그의 독특한 그림 세계는 사후에야 제대로 평가를 받게 됐다.

고독

고흐의 고집과 유별난 성격은 부모, 이웃, 동료 화가들과 수없이 불화를 겪게 하는데 이때 그가 마주하는 감정이 ‘고독’이다. 사람들과의 단절된 상황은 역설적으로 오롯이 그림에 빠져드는 계기가 됐고 특히 그가 자살하기까지 몇 년 동안 수백 점을 그리는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한다. 어느 날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상적이고 우울한 것이 아니라 뿌리 깊은 고뇌다. 내 그림을 본 사람들이, 이 화가는 정말 격렬하게 고뇌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고 싶다…나의 모든 것을 바쳐서 그런 경지에 이르고 싶다.”면서 힘겨운 시간 속에서 그 마음을 그림에 담아서 승화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그가 말년에 이웃과의 고립된 삶 속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은 참으로 안타깝게 느껴진다. 동생 테오가 지켜보는 가운데 마지막으로 “La trist esse durera toujours(고통은 영원하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숨을 거뒀다.

삶이 힘들고 지칠 때

그림 한 점에는 화가의 삶과 철학과 눈물이 담겨있다. 모든 화가의 작품에서 우리는 그것을 발견하는데 고흐의 작품에서는 그의 가난과 이웃과의 불화, 그리고 정신적 고통을 그림으로 승화시켜내는 깊은 울림을 느끼게 된다. 삶이 힘들고 지칠 때 고흐가 그림을 통해 온전히 자신을 완성했듯이 나도 하고 싶은 일들을 찾아서 신명 나게 몰입해봐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내 인생의 서른 즈음에 유럽을 여행하면서 네덜란드에 들렀던 적이 있었다. 기차를 타고 가면서 보이는 풍차와 끝없이 펼쳐진 들녘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때 고풍스런 암스테르담에서 고흐 작품이 집대성돼 전시되고 있는 반 고흐 미술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때는 고흐를 잘 모르고 그림을 봐서인지 그냥 좋다고만 생각했는데 다시 간다면 마음으로 그의 그림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광부, 농부, 우체부, 노파, 직조공 등 평범하게 살아가는 이웃들을 그리면서 프랑스 혁명을 예찬하고 일상에서 마주치는 자연의 순간순간을 포착해서 독특한 화풍으로 표현한 화가 고흐는 사망한 지 130년이 흘러도 우리에게 많은 감동을 안겨준다. 이제는 고흐를 그림이 아니라 편지로 만나보자. 그러면 그의 그림이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해규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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