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나

신미옥 울산고운중학교 교장 / 기사승인 : 2021-12-29 00: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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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톺아보기

올해의 꼬리 그 깃털을 다듬으며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 긴 장마에 잠시 잠깐 비치는 햇빛처럼, 그 볕도 오래가지 못하고 하루가 여전히 코로나에 갇혀있다. 그 어느 하루도 허투루 보낸 적 없으나, 이렇게 돌아보면 그 길이 텅 비었다. 지나왔기 때문이겠지. 이맘때 바람은 그래, 쓸쓸한가. 노랫소리 들려오는 듯하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이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 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새


기숙 학교에 오며 챙겨 온 여행 가방 속에는 수많은 ‘내 안의 나’들이 있었다. 우리는 겨우 스물도 안 되는데. 겪은 일에 견주면 이백 명도 더 되는 사람들과 지낸 듯하다. 원하지 않은 상처로부터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근 두 달 넘게 씨루고 있다. 어떻게 평화롭게 어울려 살 것인지 ‘고운 공동체 세우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모두가 주인인 동그라미 속에서 손 맞잡았다. ‘행복한 “나, 너, 우리”가 되기 위한 약속’, ‘“배움”을 배우기 위한 약속’, ‘“빌려 쓰는 학교”를 소중하게 지키기 위한 약속’. 다듬고 다듬어 열여섯 가지로 모았다. 그 약속을 지키지 않을 때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를 두고 실천 행동도 정했다. 살아온 버릇의 힘이 내뿜는 관성에서 벗어나 약속의 울타리 안에 살려고 지금까지 애쓰고 있다.


화요일 오후 운동장에 1학년이 전부 모였다. 둘이 체험학습 중이라 모두 다 모여도 열일곱이다. 작년 우리 반 아이들 서른셋에 견주면 정말 한 줌도 안 돼 보인다. 노랗게 익은 운동장 잔디가 포근하다. 청팀과 백팀으로 나눴다. 한 세 시간쯤 마음껏 놀아야지. 목요일 학교 뒤편 사시는 아주머니 한 분이 귤 한 상자를 들고 오셨다. 지난주 성장주간 나눔 행사 때 학교 텃밭에서 기른 배추로 김장하고 이웃에 조금씩 나눴는데. 그 김치 먹고 그냥 있을 수 없어 이렇게 걸음 하셨다고. 마침 오늘 오후 교육과정 평가회로 축제 날이고 막 갖가지 발표를 시작하려던 참인데 잘 되었다, 오신 김에 괜찮으시면 구경하다 가시라 했다. “지난주 우리 집까지 아이들이 와, 준 김치가 정말 맛있어서, 진작에 고맙다고 전하고 싶었는데. 오늘에야 찾아왔네요. 고맙습니다.” 축제 마당을 열며 사회자 예준이가 뒷집 할머니를 아이들 앞에 소개하고. 선생님이 귤을 번쩍 들어 올리니 환호와 박수가 터진다. 집집에서 한두 사람 구경 오셔서 객석 자리도 다 찼다. 한 해 동안 걸어온 걸음걸음을 불러 모아 무대에 올린다. 아이들이 온전히 꾸린 축제 공간이 기꺼움으로 꽉 찬다. 다채롭게 펼쳐지는 무대로 하여 그동안 고달팠던 몸과 마음이 즐거움으로 일렁인다.


구경 온 사람들 다 떠나고, 산책이나 할까 나섰다. 햇살을 등지고 천전 마을 길을 걷는다. 서산으로 기울고 있다. 마음이 노을을 닮아 고요하다. 어둠이 내리면 가지가지에 새는 돌아와 종일 하늘을 날았던 그 피곤한 날개를 접고 편히 쉬기를.


신미옥 울산고운중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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