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가장 아끼는 걸 없앨 거야”

최미선 시민인문학교 교장 / 기사승인 : 2021-11-10 00:00:45
  • -
  • +
  • 인쇄
밥TV 지상중계

인문숲 시즌3-그리스 비극
처절한 피의 복수 <메데이아>(1)
▲ 이은민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대표(왼쪽)와 최미선 인문숲사회적협동조합 대표(오른쪽)

 

소피스트와 에우리피데스

최미선 인문숲사회적협동조합 대표=작가가 에우리피데스다. 그리스 3대 비극 작가로 알고 있는데, 다른 작가와 구별되는 큰 특징이 무엇인가?


이은민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대표=에우리피데스는 기원전 484년에 그리스 아테네에서 므네사르코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유한 지주계급 출신으로 좋은 교육을 받고 전성기의 그리스 문화를 누렸지만 아테네의 제국주의 정책과 전통적인 가치에 대해 비판적이고 성격 또한 비사교적이고 무뚝뚝해서 당대에는 3대 비극작가 중에 상대적으로 덜 유명하고 인기도 없었다.


그의 작품 속 전개는 확실한 답변보다는 문제제기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할 때가 많아 현대적이고 실존적이란 평을 받는다. 그래서 후세에 많은 작가와 연설가에게 회자되고 영감을 주는 작가다.


최미선=에우리피데스 비극의 특징은 무엇인가?


이은민=시대 상황을 살펴보면, 아테네의 대변자로 소피스트가 등장한다. 유명한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라고 했는데 이 말은 당대 계몽주의를 상징하는 말이다. 이러한 소피스트 사상은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우선, 인간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다. 신의 섭리와 운명 같은 신적인 지평이 거의 사라지고, 주인공은 오로지 인간이 되고 그 인간 행위 자체가 주체가 돼 극을 이끌어간다. 신적인 영웅이 아닌 인간적인 영웅이나, 평범하고 미천한 인물을 등장시켜 인간의 감정을 드러냈다. 비극적 상황이 조성되는 지평은 인간의 삶이고 갈등이 발생하는 장소는 인간의 내면세계이며 갈등으로 인한 불행은 인간의 심리적 어리석음에서 비롯된다. 그는 펠레폰네소스 전쟁 이후 새로운 사조의 영향을 받아 다면적이고 유연한 사고로 비극의 범위를 넓히고 새로운 인물과 새로운 기법을 도입했다. 


그리스 비극의 플롯은 개연성, 필연성, 인과성을 보여주는 사건과 행위들로 구성된다.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에서 주인공의 깨달음과 뒤바뀜이 생겨난다. 선의의 행동이 정반대의 결과를 낳는 경우를 보여주는 ‘뒤바뀜’과 무지에서 앎으로의 변화인 ‘깨달음’의 결합이 관객들에게 연민과 두려움, 그리고 놀라움을 불러일으킨다.

‘비극을 죽인 자’ 에우리피데스

최미선=니체는 에우리피데스야말로 비극을 죽인 살해자라고 하고 있다. 이는 에우리피데스의 특징인 신화적인 요소보다 인간사의 갈등에 초점을 맞춰서 그렇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이은민=니체는 에우리피데스를 비극의 살해자, 신성을 모독하는 자라고 했다. 에우리피데스는 무대에 사티로스의 합창단이 부르는 노래 대신에 논리적인 언어로 상대를 설득할 때 쓰는 변론술, 소피스트적인 변론술을 올려 비극을 죽게 했다고 한다.


그리스 비극은 두 가지 원리의 조화를 통해 나온 예술이다. 아폴론적인 것(꿈, 개별화, 빛, 이성 등)과 디오니소스적인 것(도취, 합일, 창조, 충동, 합창 등). 에우리피데스는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배제한 아폴론적인 변론술만을 비극의 무대에 올려 비극을 논리적인 도식주의로 변모시켰다. 현대인들이 예술작품을 접할 때도 깊은 내적인 공명작용을 일으키기보다는 이론적인 설명을 요구하는 경우를 봐도 알 수 있다.
그의 비극에는 서사적인 긴장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확실성은 사라지고 서막 앞에 배우로 하여금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낭독하게 하는 연극의 형태가 돼버린다. 관객은 극이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하느라 불안한 상태에 놓일 필요가 없게 됐다. 니체는 비극이 우리를 삶의 깊은 근원을 보게 하는 기제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을 피상적으로 반영하는 지극히 아폴론적인 것으로만 이뤄지고 있는 점을 우려했다.

비극이 주는 효과

최미선=비극이 주는 효과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이은민=고전이란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할 때 돌아보게 되는 과거의 본보기다. 고전에는 사람들이 꼭 배워야 할 무언가가 담겨있기 때문에 고전은 역사를 통해 검증된 대단한 스승이다. 그리스 비극은 인간 본성 안에 잠재된 격정의 본질을 극단적인 사건 속에서 숨김없이 드러냄으로 인간의 정체를 성찰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나는 무엇인가? 비극은 우리에게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를 도덕적인 측면에서 규범적으로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실존적으로 깨닫게 해준다. 숨겨진 나를 새롭게 발견하게 해주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은 두려움과 연민의 정을 불러일으켜 감정의 정화를 도모하는 것”이라고 했다. 새로운 가치와 상상력을 길어 올려 현대의 수많은 예술작품에 소재와 주제를 제공하고 있다.

황금 양털, 아르고호의 모험

최미선=메데이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남편 이아손의 황금 양털 신화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이아손은 어떤 인물인가?


이은민=이아손은 이올코스왕 펠리아스에게 빼앗긴 왕위를 찾기 위해 황금 양털을 찾으러 아르고호의 모험을 떠난다. 황금 양털을 콜키스의 공주 메데이아의 도움으로 무사히 얻고 그녀와 결혼까지 한다. 그 과정에 메데이아는 아버지를 배신하고 형제를 죽이면서까지 이아손에게 헌신한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펠리아스를 메데이아가 속임수를 써 죽이고 코린토스로 망명한다. 코린토스 왕 크레온은 이아손이 마음에 들어 딸과 결혼시키려 하고 메데이아와 두 아들에게 추방령을 내린다. 야심가 이아손은 공주와의 새 장가로 권력을 얻으려 하며 메데이아를 어리석고 무지하다고 탓한다. 분노한 메데이아는 아테네 왕 아이게우스의 자식 문제를 해결해주고 피난처를 확보한 후 아이들 편에 새 신부에게 독이 묻은 선물을 전달해 죽게 한다. 두 아들까지 죽여 이아손에게 복수하고 아테네로 떠난다.


최미선=황금 양털은 무엇을 상징하나?


이은민=심리학에서 납이나 동과 같이 가치가 떨어지는 금속이 가장 가치 있는 금속인 황금으로 변화되는 것은 인간의 무의식을 의식화한 것이라고 한다. 이아손이 찾아 나선 황금 양털은 심리적인 인간의 완전성을 상징한다.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 간에 균형을 이루고 의식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서 궁극적으로 인격의 최고 상태에 이른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아손은 어린 시절 숙부 펠리아스의 위협으로 부모와 떨어져 현명한 스승에게 맡겨진다. 그 덕분에 남자들과의 유대관계는 좋으나 어머니의 보살핌이 없었기에 여자와의 관계가 서투르고 표면적이며 지속적인 관계 맺음을 배우지 못했다.


이아손의 여성성을 메데이아로 본다면 결혼맹세를 어겨 여성성을 홀대함으로써 죽음을 맞이한다고 볼 수 있다. 도전과 성취의 상징인 아르고호의 파편에 맞아 죽는데 성공만을 추구하다 추락한 것이다.

배신과 복수, 우리 마음속 메데이아

최미선=메데이아가 주인공이다. 상상할 수 없는 복수의 끝판왕을 보여준다. 우리 일상은 메데이아처럼 극단적인 복수를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복수가 없는 건 아니다. 원한에 사무친 스토리들은 티브이만 틀어도 얼마든지 나온다. 혹시 은민 선생님은 치 떨리는 배신을 당한 경험이 있는가? 복수를 꿈꾸어본 적이 있는가?


이은민=누구에게나 배신을 당한 경험은 무척 아프다. 일상적인 복수심은 친구처럼 항상 있다. 나는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운명에 깊은 배신감을 느꼈다. 스피노자는 타인에게 우리 슬픔의 책임을 전가시키는 것은 ‘복수심’이 담당하고 자신에게 전가시킬 때는 ‘양심의 가책’이라고 했다. 이는 난처함을 쉽게 극복하려는 방어기제이며 치명적인 감정이라고 했다. 심연의 바닥에 흐르는 감정은 억울함을 품은 피해의식이었다.
‘진정, 배신이란 존재할까?’라는 의문도 든다. 배신이 믿음을 전제로 한다면 얼마나 마음을 열고 자신의 방식대로 타자에게 믿음을 주었느냐를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대인관계가 좁고 깊은 나는 믿음을 주고받을 때까지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고 조심스럽게 인간관계를 갖는다. 가벼운 관계일 경우는 믿음이 약해 배신감도 약한데 깊은 관계일 경우는 배신감보다는 내 믿음이 깊어 사건과 현실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이해하려 한다. 


최미선=복수를 꿈꾸고 작은 복수들을 감행한다는 점에서 우리에겐 모두 메데이아적인 면이 있다. 은민 선생님은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이은민=우리에겐 마음속 메데이아가 있다는 생각에 동의한다. 내 마음속 분노로 감정이 휘몰아칠 때 우선 작은 행동이라도 멈춘다. 멈추고 감정이 진정될 때까지 기다린다. 널뛰고 있는 감정을 살펴보면 거기에 삶의 강한 에너지가 보이기도 하고 내 욕구가 가감 없이 드러난다. 


작은 숨의 여유가 생기면 천천히 곰곰이 생각한다. 이 사건에서 나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화가 났는가? 어떤 욕구가 채워지지 않아 혼란스러운가? 내가 원하는 것은 뭘까? 마음이 정리될 때까지는 짧은 몇 분에서 며칠이 걸릴 때도 있다. 


함께 잘 살고 싶고 함께 마음을 열고 소통하고 싶어하는 나를 발견하는 일이 많았다. 내 마음을 먼저 알고 읽어준 다음 타인의 입장과 마음을 이해하는 작업으로 이어진다. 정리된 분노는 문제 해결에 꼭 필요한 부분이며 나를 대변하는 상황에서도 큰 역할을 한다. 성찰하는 삶으로 가는 길이다.


정리=최미선 인문숲사회적협동조합 대표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저작권자ⓒ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최미선 시민인문학교 교장 최미선 시민인문학교 교장

기자의 인기기사

뉴스댓글 >

오늘의 울산 이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