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뽑기

오영애 울산환경과학교육연구소 대표 / 기사승인 : 2021-12-28 00: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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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오징어 게임과 비슷한 살인 축제를 다룬 <제비뽑기>가 수록된 셜리 잭슨의 단편집이다. 1948년 시사잡지 <뉴요커>에 발표됐는데, 문학성을 논할 수 없을 만큼 지나치게 선정적이어서, 호러장르물로 폄하하는 주장이 많았고, 셜리 잭슨은 살모사의 피를 찍어 빗자루로 글을 쓰는 마녀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이 책에는 25개의 이야기가 수록돼 있다. 작품마다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인물의 평범한 일상이 등장한다. 셜리 잭슨은 악의 평범성에 집중한다. 작중 인물들은 사기를 당하고, 집을 빼앗기고, 물건을 도둑맞지만 분노할 수가 없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니까. 작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던지는 말과 행동에서 악의 징후를 골라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모든 명작이 그렇듯 70년 전에 발표된 단편들이지만 시간 차이가 거의 느껴지지 않게 현대적이다. 자신이 평범하고 그다지 악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길 권한다. 


<마녀>. 기차간에서 어린애를 옆에 앉혀놓고, 할아버지는 동화를 읽어주는 것처럼 태연하게 토막살인과 존속살해를 묘사한다. 옆 좌석에 앉은 엄마만큼이나 독자들도 경악할 것이다. 


<어머니가 만드셨던 것처럼>. 데이비드는 마샤를 초대한다. 마샤는 해리스를 불러들이고 집주인처럼 행동한다. 데이비드는 마샤의 친구 해리스를 내보내고 싶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자신이 아끼는 은식기와 정성 들여 고른 가구로 꾸며 놓은 집을 마샤에게 내주고 밖으로 나온다. 독자들은 “데이비, 너 바보처럼 왜 한마디도 못 하고 나왔니?”라고 분통을 터트리겠지만, 현실에서 마샤 같은 인물을 만난다면 데이비드처럼 당황할지도 모른다. 


<유령신랑>. 나이 많고 가난한 여자가 결혼식에 입을 옷을 고르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사기 결혼 당한 이야기다. 


<이탈자>. 귀촌한 월풀 부인은 자신의 개가 닭을 물어 죽였다는 이웃의 전화를 받는다. 그리고 충고인지 농담인지 모호한 시골 사람들의 말에서 불안과 공포를 느낀다. 


“화이트 씨가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닭을 죽이는 습관을 없앨 수도 있을 거요. 죽은 닭을 개의 목에 매다는 거지. 아무리 흔들어도 빠지지 않게. 처음에 개는 흔들어서 죽은 닭을 떨쳐내려고 하겠지만 그러다 안 되면 죽은 닭을 갖고 놀 거요. 그러다 슬슬 귀찮아지겠지. 개가 데굴데굴 굴러다니면서 죽은 닭을 떼어내려고 해도 어림없어. 그러면 개가 죽은 닭을 물어뜯어 떼어내려고 하겠지만 역시나 소용없지. 죽은 닭을 떨쳐낼 수 없다는 걸 깨달으면 개는 평생 이걸 달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겁을 먹을 거요. 꼬리를 다리 사이에 넣고 낑낑대겠지. 목에 매달린 닭은 점점 더 끔찍해지고.” 


<꽃으로 꾸며진 정원>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단체로 암암리에 새로 이사 온 모자가정을 고립시킨다. 


소설에서 주목할 것은 도입부와 악이 등장할 때의 문체다. 평범한 사람의 일상으로 시작하거나, 평화로운 전원풍경과 생활, 행복한 가정에서 있을법한, 사소하지만, 양념 같은 갈등으로 시작하다가 물이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악을 등장시킨다. 내 안에 있던 것이 그냥 흘러나오는 것처럼. 독자들은 이 책을 읽고 나서 친구 혹은 동료의 악의를 경험한 순간이 떠오를 수도 있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악의를 품고 있었지만 그걸 숨기기 위해 무척 애를 썼다고 고백하게 될지도 모른다.


오영애 울산환경과학교육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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