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담론 2: 반칙의 규칙, 숙주와 기생의 관계 <게임의 규칙>

이민정 영화인 대경대 방송영상과 겸임조교수 / 기사승인 : 2021-11-09 00: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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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문학

 

영화는 시간과 공간을 통해 인간만사를 다룬다는 점에서 조형예술이다. 영화가 탄생한 프랑스에서는 영화를 회화의 연장(延長)으로 인식했고, 상품으로서의 할리우드 영화와 달리 예술 매체로서 기능했다. 프랑스 영화감독인 장 르누아르는 인상주의 화가였던 아버지를 따르다가 영화에 입문했다. 영화를 발명한 뤼미에르 형제는 화가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사진 발명 이후 선대가 사진으로 전환했고, 이들 형제는 움직이는 사진인 영화를 발명했다. 이 무렵 태어났던 르누아르는 그림, 사진, 영화가 공존하는 시대에서 현대시각예술의 합집합인 영화를 선택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던 1939년에 완성된 르누아르의 <게임의 규칙>은 영화가 일반대중의 사기를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상영금지됐다가 영화이론의 선구자인 앙드레 바쟁에 의해 재조명됐다.


<게임의 규칙>에서 <기생충>(2019, 봉준호)이 보인다. 하인들이 지하식당에서 한바탕 푸닥거리를 한 뒤 지상으로 연결되는 계단을 통해 쪽문으로 나오는 장면과 주인공인 앙드레의 친구 옥타브(장 르누아르 분)가 스스로를 ‘기생충’이라고 하는 등의 장면들에서 건축물의 층위로 은유되는 계급제도, 상층의 숙주와 하층의 기생 관계가 보이는 것이다. 영화가 끝나는 지점의 뒤죽박죽은 언제든 반복될 수 있는 일종의 규칙으로 재인식된다. 제목 그대로 계급제도는 공인된 게임의 규칙인 것이다. 리얼리즘을 중시했던 앙드레 바쟁은 바로 이 지점을 발굴(?)해낸 것이다.

 


영화는 게임의 중요한 두 가지 법칙을 준수한다. 실력자 사이에서 초보자는 잡아먹히는 약육강식과, 게임에서 ‘이겨야 하는’ 승부보다 ‘지켜야 하는’ 규칙을 강조한다. 규칙이란 구전동화에 담아온 인류애적 감성이 아니라 비정한 약육강식의 인과론이다. 그 결과 숙주인 앙드레는 기생충인 옥타브를 대신해 희생된다. 기생충은 회충약을 때맞춰 챙겨 먹는 영악한 인간보다 무방비의 영양가 높은 숙주를 잘 찾는다. 규칙보다 인간성을 선택했던 앙드레가 죽었을 때 옥타브만이 진심으로 슬퍼한다. 또 다른 숙주를 찾기 위한 비루한 품을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게임의 ‘규칙’은 지키기만 하면, 또는 정당한 방법으로 지킬 수 없다면 어떠한 편법을 사용해도 됨을 주요 플롯으로 제시한다. 남편(로베르)이 부인(크리스틴) 몰래 바람을 피우면서 표면상의 부부관계 규칙을 지키는데, 크리스틴이 로베르의 외도 사실을 알아챈 뒤 반대급부로 앙드레에게 구애하지만 앙드레는 로베르에게 허락을 받고자 한다. 거절당한 크리스틴은 앙드레의 오랜 친구이자 남매처럼 지내왔던 옥타브에게 구애하고, 옥타브는 앙드레와 로베르를 속인 채 크리스턴과 밀애를 즐긴다. 결국 ‘반칙’이라는 규칙을 지키지 못한 순수한 자는 앙드레뿐이고, 따라서 게임판에서 제거되는 것이다. 크리스틴이 로베르의 외도를 알아차리고 한탄할 때 옥타브가 말한다. “거짓말 안 하고 사는 사람이 어딨어? 광고와 정부, 라디오, 연극, 신문, 전부 다 그래. 그런데 개인이라고 그렇지 않겠어?” 반칙이 규칙이 된 세상에 대한 강력한 시사다.

 


화면미학(미장센)에서 중요한 것이 구도인데, 기본 중의 하나가 이미지라인(180도 규칙)이다. 카메라 위치가 바뀌더라도 인물의 좌우가 뒤바뀌지 않도록 설정한 가상의 선이다. 할리우드 영화는 관객이 자연스럽게 영화에 몰입할 수 있도록 그 규칙을 반드시 지키지만 미장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프랑스 영화는 이 규칙에 매몰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서 사용된 180도 규칙의 파괴는 앙드레와 반대편에 선 반칙자들을 구분하는 전환으로서 작동한다.

 


사냥터에서 귀족들은 동물들을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유희하기 위해 총알을 난사한다. 온몸을 부르르 떨며 숨을 거두는 날 것 그대로 토끼의 죽음을 제시하며 냉혹한 게임에 대한 테제가 정의된다. 심지어 이들은 사냥하던 친구가 총에 맞아 허벅지가 날아가고, 고통에 몸부림치다 20분 만에 죽었다는 사실을 회상하며 즐거워한다. 게임에서는 낙오자의 죽음도 유희의 대상이 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 귀족들은 기생충으로 여기는 하인들 없이는 사냥도 파티도 일상생활도 영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규칙의 시점을 전환하면 기생충과 숙주의 위치가 뒤바뀌게 되는 것이다.


이민정 영화인, 대경대 방송영상과 겸임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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