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주는 밥이 길고양이들에게는 마지막일 수 있어요"

정승현 기자 / 기사승인 : 2022-01-12 18:2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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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 2동 캣맘 김미지 씨의 하루
추운 겨울엔 생존에 필수인 물조차 얼어

사계절이 다 겨울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겨울을 좋아한다. 한데, 길고양이들에게 겨울은 너무나 가혹한 계절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는 겨울을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게 됐다. "오늘 하루는 잘 버텼을까." "생존에 필수인 물조차도 얼어서 먹지 못한 건 아닐까." "새끼 고양이들은 추위에 더 취약할 텐데 올겨울 무사히 잘 났으면 좋겠다." 이렇듯 겨울엔 자주 길고양이 생각이 난다. 난 생각만 하지만, 누군가는 직접 발로 뛴다. 그들이 바로 캣맘·캣대디들이다. 길고양이에겐 캣맘·캣대디들이 챙겨주는 사료와 물이 생명의 줄이다. 지난 11일 매섭게 강풍이 몰아치던 오후, 신정 2동 캣맘 김미지 씨와 동행하며 길고양이들이 어떻게 겨울을 버텨내고 있는지 볼 수 있었다.

 

▲ 길고양이들에게 줄 사료와 물 간식 등을 챙기는 김미지 씨. ⓒ정승현 기자

 

김미지 씨는 매일 오후 4시부터 신정 2동 주변 6개의 고양이 급식소를 돌며 사료와 물을 주고 있다. 겨울엔 따뜻한 물을 담은 보온병 2, 미온수를 담은 물 2, 핫팩, 사료, 습식 캔, 간식, 물티슈, 숟가락, 그릇, 쓰레기 봉지 등 준비물이 많아 가방을 한 손에 들고 끌 수 있는 장바구니를 하나 더 챙긴다. 차에는 위기에 처한 고양이를 바로 구조할 수 있도록 이동장이 늘 실려있다. 얇은 장갑을 끼고 김미지 씨는 집 주차장에 설치된 첫 번째 급식소에 따뜻한 물과 사료를 부어준다. 7년 동안 해온 일이라 그런지 손놀림이 매우 능숙하다. 애니, 투투, 꼬물, 러브. 이곳에 오는 아이들의 이름이다. 김미지 씨는 이름을 짓고 부르며 살뜰히 길고양이들을 보살핀다.

 

▲ 남구 신정 2동 행정복지센터에 있는 길고양이 급식소. 김미지 씨가 사료를 챙겨주고 있다. ⓒ정승현 기자

 

두 번째 장소는 신정2동 행정복지센터에 있는 남구 길고양이 급식소다. 찡이와 찡이 남자친구인 하트가 급식소 안에서 쉬고 있다가 나왔다. 찡이는 옆에서 가만히 밥을 기다리고 있고 하트는 놀란 나머지 도망가버렸다. 김미지 씨는 사료와 간식, 물뿐 아니라 핫팩도 따뜻하게 데워서 보금자리 이불 밑에 둔다. "원래 희야라는 고양이도 이곳에 자주 왔는데 요새 안 보이더라고요. 최근에 원룸 근처에서 고양이가 죽어있는 걸 발견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걔가 희야인 것 같아요. 이렇게 아이들은 소리 없이 죽어가고 있어요." 김미지 씨는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길고양이는 질병, 로드킬, 학대 등 여러 이유로 3년을 채 못 산다고 한다. 지금 캣맘이 주는 밥이 길고양이들에게는 마지막 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남구는 울산에서 유일하게 길고양이 급식소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4년 전인 2018년도에 처음 길고양이 급식소가 설치됐는데 여전히 다른 구는 감감무소식이다. 김미지 씨는 "남구뿐 아니라 다른 구에서도 길고양이 급식소를 설치해 울산 전체가 동물 복지를 실천하는 시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급식소 관리나 운영을 어르신이나 저소득층 일자리로 활용하면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구 길고양이 급식소는 자원봉사자들이 운영하고 있지만, 제대로 관리가 안 되는 곳도 있어서 일자리 사업으로 활용하자는 의견이다. 

 

▲ 아파트 화단에 자리 잡은 길고양이 급식소. 밥을 훔쳐가는 사람이 있어서 경고문이 붙어 있다. ⓒ정승현 기자

 

 

▲ 길고양이 사료와 물. 물그릇에 담긴 물이 추운 날씨 탓에 얼어 있다. ⓒ정승현 기자

 

세 번째 장소는 신정 2동 행정복지센터 근처 한 아파트 화단이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에 물이 얼어 있어서 김미지 씨는 얼른 보온병에 담긴 뜨거운 물과 미온수를 섞어 그릇에 부었다. 이곳의 터줏대감 고양이는 순돌이와 양파. 이곳은 잘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라 담배꽁초를 던지거나 사료 안에다 오물을 넣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또 고양이가 먹지 못하도록 사료를 몽땅 가져간 이른바 '밥도둑' 사건도 있어서 김미지 씨는 경고문까지 써야 했다. 그는 "고양이를 싫어할 수는 있다" "그런 호불호를 떠나서 한 생명에게 밥을 주는 건데 사료를 엎어버리거나 오물을 넣는 행위는 제발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카페 '오다트' 안에 있는 길고양이 급식소. ⓒ정승현 기자

 

네 번째 급식소는 카페 '오다트' 안에 있다. 카페 사장 부부는 유기묘 두 마리를 집에서 임시 보호하며 카페 안에는 길고양이 급식소도 설치해뒀다. 다른 장소와 달리 바람이 많이 들어오지 않는 곳에 있다 보니 고양이들이 덜 춥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미지 씨는 "오며 가며 길고양이를 본 카페 손님들이 종종 입양해간다" "이브, 짬부라는 고양이가 이미 좋은 가족에게 갔다"고 얘기했다. 오다트 급식소는 점점 고양이 입양의 성지가 되고 있다.

 

▲ 김미지 씨는 간식을 준비하고, 길고양이 감자는 옆에서 밥을 맛있게 먹고 있다. ⓒ정승현 기자

 

다섯 번째 장소는 신정 2동 한 빌라 근처 텐트 급식소다. 이곳은 사방이 트여있어 김미지 씨가 바람과 추위를 막을 수 있는 보온용 텐트를 설치해뒀다. 마침 폴리와 감자라는 길고양이가 안에 있어서 만날 수 있었다. 김미지 씨는 폴리와 감자가 좋아하는 간식을 섞어서 그릇에 담았고 고양이 둘은 한 그릇을 순식간에 비웠다. 김미지 씨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 이곳에 오는 다른 아이들이 안 보인다며 한 바퀴 돌고 오겠다고 했다. 밍이와 밍밍이라는 엄마와 딸 고양이들. 아쉽게도 우리가 떠날 때까지 밍이와 밍밍이는 보지 못했다. 김미지 씨는 전체 코스를 다 돌고 난 후에도 다시 돌아와 밍이와 밍밍이를 부르며 한 번 더 찾았다. 길고양이는 언제 어디에서 사라질지, 내일도 볼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애타게 부르는 것이리라.

 

▲ 여섯 번째 신정 2동 길고양이 급식소를 김미지 씨가 청소하고 있다. ⓒ정승현 기자
▲ 곧 재개발되는 주택가 급식소에 자리 잡은 길고양이 진주. 진주는 이곳에서 재개발 공사가 시작되면 다시 쫓겨나야 한다. ⓒ정승현 기자

 

마지막 여섯 번째 장소는 6월에 철거될 재개발 지역에 위치한 한 주택 안에 있었다. 이곳에 사는 진주라는 고양이는 원래는 주민센터 급식소에 있다가 주차장으로 밀려나고 다시 카페 오다트로, 결국 이곳 재개발 지역까지 오게 됐다. 그런데 곧 재개발 공사가 시작되면 이곳마저 떠나야 하는 신세다. 김미지 씨는 "길고양이의 삶이 참 팍팍하다" "캣맘·캣대디들이 힘을 모아 재개발 지역 길고양이들이 안전하게 이주할 수 있도록 동물보호 조례 일부 개정 조례안을 통과시켰는데 여전히 예전과 달라진 점이 없다"고 강조했다. 조례가 생겼지만, 이곳이 재개발되면 진주는 생매장될 위험에 처하거나 다른 곳으로 쫓겨나게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길고양이들에게 참 가혹하다. 그들의 삶은 참 팍팍하다. 우리는 진주가 밥 먹는 데 집중할 수 있게 멀찍이 떨어져서 지켜본 후 이동했다

 

김미지 씨는 신정 2동뿐 아니라 옥동에도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가서 길고양이 밥을 챙겨주고 있고 달달한 동물세상 사회적협동조합 길고양이 보호소에서도 고양이들을 돌보고 있다. 심지어 김미지 씨 남편도 회사 근처에서 캣대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김미지 씨는 "하루는 치약과 이만 원이 든 가방을 건네며 고생한다고 해주는 이웃을 만났는데 정말 감사했다"며 "주민들의 응원이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책임감을 갖고 소중한 생명을 지키고 돌보기 위해 힘쓸 것"이라며 "새해에는 재개발 지역 길고양이에 대한 안전한 이주 정책이 공론화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김미지 씨는 길고양이 밥을 챙겨줄 때 몰래 숨어서 주거나 사람이 없는 이른 새벽 시간에 밥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더 당당하게 길고양이 밥을 챙겨준다. 그래야 길고양이도 기죽지 않고 씩씩하게 밥을 먹으며 살아갈 수 있다고 믿어서다. 오늘도 길고양이 밥을 챙겨줄 그의 당당한 발걸음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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