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차(普耳茶)

김상천 시인 / 기사승인 : 2021-11-09 00: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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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향만리

보이차는 중국 운남성 보이시(普耳市)를 중심으로 생산되는 차로 대엽종 찻잎을 원료로 하여 만든 쇄청모차(晒靑母茶) 또는 모차(母茶)가 자연발효(후발효)나 인공발효를 통해 만들어져 2003년 운남성 품질 기술 감독국이 공포한 표준에 부합한 산차(散茶)와 긴압차(緊壓茶)의 총칭을 말한다. 이러한 보이차는 긴압(緊壓)하는 형태에 따라 원차(圓茶), 전차(塼茶), 타차(沱茶), 주차(柱茶) 등으로 분류되기도 하며 발효의 정도에 따라 생차(生茶)와 숙차(熟茶)로 나누어진다. 지금은 중국 전역에서 발효차가 생산되는 가운데 보이차도 다양한 산지에서 생산 판매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무분별한 보이차 생산으로 인해 전통적인 보이차의 진면목을 상실하고 있다는 지적에 의해 몇 가지 기준을 제시하고 그 진위를 분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 기준을 보면 “첫째 산지가 보이 지역이어야 하며, 둘째 가공 원료는 운남 대엽종 쇄청모차를 사용하여야 하고, 셋째 가공 공예는 독특한 후발효 공법(자연발효나 인공악퇴발효)을 거쳐야 하며, 넷째 보이차 운남성 지방 표준에 부합되어야 한다”이다.


보이차 산지 기행을 해보면 란창강(瀾凔江)을 따라 구릉지대의 따스하고 습기가 많은 곳에 주로 분포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곳은 북위 25도 이남 아열대 기후로 동백나무과에 속한 대엽종 차나무가 자라나는 데 최적의 환경인 것이다. 특수한 지질과 기후로 인해 여기서 생장하는 대엽종 차는 보이차를 만드는 데 적합하며 독특한 맛과 향뿐만 아니라 우수한 성분을 가지게 돼 차인들에게 인정을 받는다. 이처럼 보이차는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 그리고 사람이 만나 만들어 낸 살아있는 차(茶)다. 그리고 세월과 함께 성장하는 차인 것이다.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미숙한 차가 세월 속에 사람들의 정성과 수고를 통해 성숙해 간다는 뜻이다. 이는 발효차(醱酵茶)의 묘미인데 ‘먹는 유물이다’라는 명제를 낳게 된 것이다. 같은 차나무에서 딴 찻잎일지라도 어느 장소에서 누구와 함께 시간을 보냈느냐에 따라 천차만별로 숙성되어질 수 있다는 것이 어쩌면 인간사를 닮았다고 할 수 있겠다. 


내 집 다향만실(茶香滿室)을 찾는 지인 중에 차를 잘 모르는 분들은 대부분 보이차라는 차나무가 따로 있는 줄 안다. “한국에는 보이차 나무가 없습니까”라고 묻는다. 이 정도면 무엇부터 설명해야 옳을지 앞이 막막함을 느낀다. 이때마다 나는 간단한 말로 찻자리 입문으로 초대한다. “네. 보이차 나무는 없고, 알고 있는 녹차와 같은 나무에서 딴 찻잎으로 메주나 누룩처럼 뭉쳐서 몸에 좋게 발효시킨 차입니다”라고 하면 “아”하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청허당(淸虛堂) 다향만실(茶香滿室)의 입당식인 셈이다. 그리고 “보이차 한 잔을 마신다는 것은 하늘과 땅과 사람의 기운을 함께 마시는 것입니다”라고 하면 찻자리의 자세가 달라지는 것을 본다. 참으로 보이차 한 잔이 우리에게 오기까지 어떤 땅에서 어느 하늘을 만났는지 어느 햇빛과 바람이 지나갔으며 또 누구의 손을 거쳐 찻잎을 따고 비비고 건조했는지, 얼마나 오랜 세월을 견뎌왔는지를 생각하면 차를 우릴 때의 마음이 늘 숙연해짐을 느낀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에게만 있는 맛과 향이 있어 주변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하는 행동과 말을 들어보면 어떤 땅 어느 하늘을 만났는지 본다. 온실에 화초처럼 자랐는지 들풀처럼 자랐는지도 보인다. 미당(未堂)의 시 ‘자화상’을 보면 “스믈세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라고 했다. 그래서 미당의 생애를 접할 때마다 우리는 숭숭 뚫린 벽에서 부는 바람을 만나게 된다. 인고의 세월 속에 바람의 땅에서 외롭게 성숙한 미당을 좋아하는 이유도 ‘흰 바람벽’을 바라보는 백석(白石)을 그리워하는 심정도 내게는 보이차를 닮았기 때문이다. 좋은 보이차 한잔과 잘 익은 이야기를 가진 사람이 함께하는 찻자리가 있다면 이 황혼이 외롭지 않을 것 같다.


김상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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