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갔었어

김윤경 글 쓰는 엄마 / 기사승인 : 2021-10-06 00: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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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일기

신경숙 작가가 펴낸 책을 읽었다. 제목에 끌렸고 작가 이름을 보고 안심했다. 작가는 <엄마를 부탁해> 이후로 아버지 이야기로 찾아왔다. 예전에 <엄마를 부탁해> 보면서 코 푼 휴지가 쌓였던 기억이 난다. 그 때문인지 <아버지에게 갔었어> 제목부터가 슬프다. 아빠를 보낸 지 일 년이 다 돼간다. 나는 애도가 되고 있는지, 스윽 지나치고 있는지 궁금했다. 이 책을 보면 애도가 건들어질 것 같았다. 그럴 작정으로 책을 골랐다. 


나도 아버지에게 갔었다. 산소까지 집에서 두 시간 반이 걸린다. 아빠가 병상에서 먹고 싶어 했던 씨 없는 포도를 담아갔다. 아빠 보여주려고 졸업장도 챙겼다. 이번 졸업식에 아빠가 왔다면 좋아하셨을 텐데 아쉽다. 애들한테도 할아버지께 보여주고 싶은 거 챙기라고 했다. 큰애는 생애 첫 자격증을 챙겼다. 최근 주산 급수 자격을 딴 것이다. 작은애는 색종이를 챙겼다.


날씨가 좋았다. 가을이면서도 여름이 걸터앉은 듯했다. 큰애가 자동차 뒷자리에서 색종이로 하트를 접어서 보여줬다. 예뻐서 다른 색깔로도 접어보라고 했다. 애들이 언제 도착하냐고 열 번을 물었을 때쯤 도착했다. 아빠 산소 앞에 돗자리를 폈다. 큰애가 무덤 앞에 무지개처럼 하트 색종이를 깔았다. 나는 졸업장을 세우고 포도를 놓았다. 애들은 천진난만하게 “할아버지 안녕” 인사하고 무덤 주위를 뛰어다닌다. 남편이 애들을 데리고 자리를 비켜줬다. 


아빠에게 나도 잘 있고 엄마도 잘 지낸다고 말하자마자 눈물이 났다. 작년 이맘때 아빠가 위독하다는 걸 알았을 때도 사랑한다는 말은 못 했다. 아빠를 싫어했던 내 과거들이 사랑한다는 말을 막았다. 아빠의 투병이 길어질까 봐 내 걱정이 사랑한다는 말을 막았다. ‘그런 내가 어떻게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있겠어’ ‘아빠를 사랑한다고? 그런 마음으로?’ 임종을 지키면서도 시옷 자를 삼켰다. 나는 말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젠 듣지도 못하시는데 무덤 앞에서 말하고 왔다. 


“엄마 울었어?” 큰애가 다가와 나를 꼬옥 안아준다. “할아버지 살이 흙 속에 묻힌 거야?” “아니, 할아버지 뼛가루를 상자에 담아서 묻은 거야” “할아버지가 그렇게 해달라고 했어?” “할아버지는 자기 엄마 무덤 밑에 뿌려 달라고 했어.” “왜?” “무덤을 만드는 게 자식들한테 부담이 될 거 같으니까 그러지 않았을까?” “부담이 뭐야?” “부담은 내가 이만큼 해줄 수 있는데 상대방이 더 해달라고 하는 거? 그러면 마음이 불편하잖아.” “할아버지가 죽을 때까지 절약했네, 너무 심하다. 책에서 본 빈대 가족보다 더 한 것 같아. 나는 죽으면 살 그대로 묻히고 싶어.” 자식에게 부담 주지 않으려는 부모의 마음을 아홉 살은 몰라도 된다. 


기일이 다가와서 그런지 엄마 꿈에 아빠가 자주 나온다. 말없이 엄마 옆에 있다가 가는 게 다다. 아빠가 한 번도 생각나지 않은 하루가 없었다는 엄마 말을 듣고 내심 놀랐다. 엄마가 해방감을 표현했기에 그런 줄로만 알았다. 엄마는 밥 차려줘야 할 사람이 없어서 편하다, 김치 먹을 사람 없으니까 김장 안 해도 되겠다, 집안 살림도 마음대로 바꿀 수 있어서 좋다고 하셨다. 그러면서도 엄마가 걸쇠까지 걸어 잠그며 문단속을 하는 모습에 혼자 지내기가 좀 무서운가 싶었다. 엄마는 1인 가구가 되면서 밥벌이에 대한 스트레스가 신체 반응으로 나타나고 체력도 눈에 띄게 떨어지셨다. 


아빠에게는 다섯 명의 손주가 있다. 손주들은 잘 놀아주고 잘 사주는 할아버지로 떠올린다. 애들이 오래 기억해주면 좋겠다. 주말이면 애들 뭐 하냐, 놀러 와라, 어디 가보자, 밥 먹으러 와라 문자가 오곤 했는데 벌써 일 년이다. 아빠에게 잘 다녀왔다. 


김윤경 글 쓰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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