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담론 6: 진짜 ‘죽는’ 게임-<오징어게임>

이민정 영화인 대경대 방송영상과 겸임조교수 / 기사승인 : 2021-12-07 00:00:56
  • -
  • +
  • 인쇄
영화 인문학

 

놀이를 할 때 합의된 규칙에서 탈락하면 ‘죽는다’는 표현을 쓴다. 카드놀이에서도 게임을 포기한다는 의미로 ‘다이(die)’라 한다. 공포영화나 범죄영화에서의 잔혹성은 가짜 피, 가짜 죽음이기 때문에 관객은 팝콘을 먹을 수 있다. 살인마 역이든 피해자 역이든, 극중 배우들이 해맑게 웃으며 무대에 서거나 다른 장르의 영화에 출연할 것을 알고 있다. 놀이에서 ‘죽더라도’ 한 판이 끝나면 다시 참여할 수 있다. 전자오락에서도 ‘죽으면’ 원위치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오징어게임>(2021, 황동혁)은 전통적인 게임과 영화의 관습을 깨버린다. 이 게임에서 ‘죽으면’ 진짜 죽는다. 관객은 스크린 밖에서 웃을 배우의 ‘가짜’ 모습에서 나를 발견한다. 이런 예외는 다른 영화에서도 많았다. <황산벌>(2003, 이준익)에서 인간 장기말이 실제 죽는 것으로 설정됐고, <스크림>(1996, 웨스 크레이븐)에서 살인마는 스크린 앞에서 관객을 도륙한다. 상당히 많은 영화 캐릭터에서 다수의 대중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이 드라마가 세계적인 것으로 위치할 수 있었던 요소는 ‘관습 깨기’뿐만 아니라 ‘익숙함’과 ‘쉬움’이 있다.


익숙함 면에서, 대다수의 콘텐츠 소비자들은 낯선 것보다 익숙한 변화를 선호하고, 어려운 것보다 쉬운 것을, 너무 쉬운 것보다 조금 어려운 것을 좋아한다. 영화인들 사이에서 박찬욱 감독과 봉준호 감독을 비교할 때 박찬욱의 영화는 한 계단 위에 있고, 봉준호는 반 계단만 올라간다는 말이 있다. 일반관객이 낯설고 어려운 것보다 적당히 익숙하고 적당히 새로운 것을 선호함을 비유한 말이다. 쉬움 면에서, 이야기의 구조와 수단, 등장인물 배역과 의상, 세트장의 디자인과 크고 작은 소품들 등은 이미 다른 매체들을 통해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미장센 요소들이다. 플롯을 관통하는 어린이들의 놀이와 규칙, 무엇보다도 단순하고 자극적인 음악은 쉽다. 그래서 전 세계의 누구나 밈(meme, 모방을 통해 습득하는 문화적 요소)이 가능하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 하에서 경쟁으로 관철된 인류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칸막이는 아동기에 삶의 표본이 될 모델링 과정을 소거했다. 청소년뿐만 아니라 일반대중의 모델은 가수, 배우, 스포츠 선수, 정치인 등 아이돌(idol, 우상)이다. 아이돌의 나이나 직업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유명하면 된다. 통신과 기기의 발달로 유명인의 범주가 확장됐다. 팟캐스트나 동영상 플랫폼을 통해 스스로가 우상이 될 수 있는 시대다. 대중은 밈을 통해 그들을 모델 삼아 흉내 내기를 한다. 복제의 경계가 허물어진 시대에서 밈을 통해 아이돌이 되기도 한다. BTS의 춤, 노래, 의상, 분장을 흉내 내는 이들이 아이돌처럼 인기가 있는 이유는 BTS보다 접근성이 쉽고 대리만족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짝퉁 아이돌들은 밈 행위를 통해 유명인과의 외적 동일시와 팬층을 거느리는 내적 동일시의 만족감을 동시에 느낀다. 개성의 평준화 시대에서 동조 현상은 밈의 확산 요인 중 하나이고, ‘관계’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밈을 통해 소속감과 유대감을 느낀다.


한국인에게는 새로울 것 없는 이 세계적인 안정감의 근거가 신파극(新派劇, 감정의 과잉 또는 권선징악)과 인간성이다. 최근 뉴스에서 자주 언급되는 5~10년 뒤 사라질 직업 순위를 보면, 매체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1위 점원에서 보험관련업, 텔레마케터, 농부, 건설업, 은행원, 제조업 순이다. ‘덤’이나 ‘단골 서비스’와 같은 감정을 소거하면 기계로 대체해도 이상하지 않을 직업군이다.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것은 생존의 위기로 직결되므로 기계의 발전을 충분히 향유하는 동시에 불안감을 느낀다. 수백 년 전에는 태어날 때 입었던 옷의 디자인이 죽을 때까지 지속됐지만 지금은 수시로 새로운 디자인의 차가 출시된다. 기계 발전 속도를 인간 생체 리듬과 인식이 따라가지 못해 문화지체현상이 누적되면서 사람들은 도리어 신파극과 인간성에 집착하게 됐다. 같이 살자고 뒤에서 밀어주고, 네가 살라고 대신 죽어주고, 내가 살기 위해 죽이면서도 죄책감을 느끼는 인간성의 신파적 소환은 21세기 지구인들이 갈구하는 감정의 집합체다.
플롯(plot, 서사적 구성) 면에서도 <오징어게임>은 한국인에게는 익숙하고 해외에선 신선하다. ‘미드’, ‘영드’, ‘중드’, ‘일드’ 등에서 한 시즌의 플롯을 각 회차로 쪼개는 것이라면 이 드라마는 매 회차가 독립적인 플롯을 가지면서 9개의 시즌묶음이 된다. 이 럭키박스는 과시욕으로 비싼 명품을 사면서도 가격비교를 하는 심리와 비슷하다. 한국 콘텐츠가 주는 위대한 충족감이다.

※ 게임 담론 시리즈를 마무리하며


연상호 감독의 <지옥>이 연일 <오징어게임>의 기록을 깨고 있다. 넷플릭스는 한국 콘텐츠라는 헤게모니를 당분간 이어갈 것이다.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제작비가 미국 등에 비해 낮기 때문이다. 과연 미국, 아니 어느 나라에서 12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해 200억 원으로 이런 ‘죽여주는’ 콘텐츠들을 만들어내겠는가. 물론 필름메이커스들이 충분한 보상을 받는 지점이 빠르게 도래해야겠지만 싸고 좋은 제품을 비싸도 스테디셀러로 이어가기 위해선 창작자들의 분발과 정책적 지원의 줄탁동시(啐啄同時)가 절실하다.


이민정 영화인, 대경대 방송영상과 겸임조교수

 

[저작권자ⓒ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

오늘의 울산 이슈

주요기사

+

많이 본 기사

정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