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을 욕망하다, 리플리 신드롬 – <리플리>, <화차>

이민정 영화인 대경대 방송영상과 겸임조교수 / 기사승인 : 2022-01-25 00: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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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문학_[주제영화]

사전에서 ‘욕망(慾望)’의 뜻은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함. 또는 그런 마음’이고, ‘탐(貪)하다’는 ‘어떤 것을 가지거나 차지하고 싶어 지나치게 욕심을 내다’로 정의돼 있다. 욕망이란, 노력 없이 가지려 하거나 가진 척하려는 마음이다. 영화 <리플리>(1999, 안소니 밍겔라)의 톰 리플리와 <화차>(2012, 변영주)의 차경선은 가난함으로써 비인간적인 삶에서 벗어나는 방식으로 살인을 선택한다. 이들의 원초적 불행은 비루함에서 벗어날 방법을 스스로 찾을 수 없거나 그런 세상을 살았다는 점이다. 두 번째 불행은 우발적이든 악함이든 자신의 죄 앞에서 독해져야 할 만큼 탈출구가 없었고, 세 번째 불행은 타인의 훔친 인생을 살아가는 것에 만족했으며, 마지막 불행은 거짓과 욕망을 유지하기 위해 살인을 반복했거나 반복하려 시도한 것이다.

 

▲ 책 <재간둥이 리플리 씨>(1955, 패트리샤 하이스미스)

 

▲ MBC 드라마 <미스 리플리>(2011, 최이섭, 최원석)

 

‘리플리 증후군’이 연일 인구(人口)에 회자되고 있다.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고 욕망하는 세계가 진짜인 양 말하고 행동하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다. 심리학, 정신의학에서 병명을 소설이나 영화 등의 콘텐츠에서 차용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어원은 1955년 미국 작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책 <재간둥이 리플리 씨>에서 인용됐고, <태양은 가득히>(1960, 르네 클레망)로 영화화됐다. <리플리>는 재해석돼 제작된 작품으로, 러닝타임 112분의 <태양은 가득히>보다 27분 더 길다. 2011년 MBC 16부작 드라마 <미스 리플리>도 리플리 증후군을 소재로 했다. <미스 리플리>의 경우 <리플리>에서 톰이 살인을 계속할 것이라는 암시, <화차>의 차경선이 자살하는 비극적인 결말과 달리 남녀 간 사랑을 통해 이 인격 장애를 극복한다는 캐주얼한 결말로 마무리된다. TV 드라마는 영화나 책보다 선택의 문턱이 낮기 때문에 대체로 플롯의 구성과 연령 제한에서 보편성을 갖는다.


<리플리>에서 톰 리플리는 옷이 한 벌밖에 없어서 매일 빨아 입어야 하는 단벌신사이고, 대학의 피아노를 조율하며 피아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딕키 그린리프는 재벌 2세 독자(獨子)인데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는 데는 관심이 없고 재즈를 사랑하며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냉혹함과 다정함, 나태함과 열정적임을 오가는, 그야말로 제멋대로인 인물이다. 딕키는 톰에게 무한한 애정을 쏟음과 동시에 톰의 비루함을 조롱한다. 톰은 딕키가 가진 모든 것을 사랑한다. 그래서 바다 한가운데서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 뒤 그의 시체를 끌어안음으로써 그의 모든 것을 전수받는 일종의 의식을 치른다. 이후 자신을 의심하는 이들을 모두 난폭한 방식으로 살해한다. 톰은 딕키의 부친과 미국 최고의 사립탐정을 속일 수 있었지만 딕키의 연인인 마지는 톰을 살인마라고 힐난하고, 톰은 그를 사랑했던 동성의 피터에게 고해성사하며 목을 졸라 살해해버린다.

 

▲ 영화 <태양은 가득히>(1960, 르네 클레망)

 

▲ 영화 <리플리>(1999, 안소니 밍겔라)

<화차>에서 차경선은 가난과 부친의 폭력에 고통스러운 아동‧청소년기를 보냈다가 그를 사랑했던 남자와 행복한 삶을 시작한다. 그러나 부친의 도박 빚 때문에 이혼과 동시에 창녀의 삶과 마약중독의 나락까지 떨어졌다가 비슷한 처지의 사람을 살해한 뒤 그 사람의 신분으로 살아간다. 새로운 사랑이 시작될 무렵 신분이 들통나게 되자 신분 세탁을 할 수 있는 또 다른 희생자를 찾았지만, 약혼자와 경찰의 추적에 건물 옥상으로 내몰리면서 자살하고 만다.

 

▲ 영화 <화차>(2012, 변영주)

리플리는 자신이 선택했던 모델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방해가 되는 요소들을 제거했다. 차경선은 빙의할 수 있는 대상을 제거함으로써 자기 자신은 살아남는 방식을 선택했다. 리플리는 자신과 딕키 사이를 오가며 정체성 혼란으로 고통받았고, 차경선은 타자(他者)에 인식되는 모습이 누구든 자신의 정체성은 지킴으로써 살아남는 것에 지배됐다. 리플리의 욕망은 신분 상승이었고 차경선의 욕망은 생존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거짓말을 한다. 비겁함을 숨기거나 문제해결을 위해 선의의 거짓말과 악의적 거짓말로 구분한다. 자신과 타인에게 가장 위험한 경우는 자신이 만들어놓은 세상이 절대적인 진리라 믿고 그 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타인이 잘못됐다고 비난하거나 이기적 정당성을 강요하는 것이다. 흔히 인용되는 사례가 자존감과 자존심인데, 자존감이 내향적이고 개인적이라면 자존심은 외향적이고 이기적이다. 자존감은 토대가 단단한 반면 자존심은 허상인 경우가 많다. 지적이나 비평을 받았을 때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다름’을 생각하고, 자존심만 높은 이는 ‘나는 옳고 당신은 틀렸음’을 주장하는 경향이 강하다. 리플리와 차경선은 자존감이 낮았다. 극 중 그들이 지적받은 대로 열등감 때문에 결과적으로 자신을 부정하게 되는 것이다. 돋보이고 싶다면 가짜 껍데기를 쓸 일이 아니라 시간이 걸려도 속을 채울 일이다. 그렇다면 세상을 가늠하는 잣대도 ‘내로남불’이 아닌 공정함이 될 것이다.


이민정 영화인, 대경대 방송영상과 겸임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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