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자연과학> 과학으로 본 “팔자 고치기”, 후성유전학 이야기

권춘봉 이학박사 / 기사승인 : 2022-05-09 00: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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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전자의 기능을 발현하거나 억제시키는 스위치인 DNA와 히스톤에서 메틸화가 일어나는 모식도. 출처: 청해지기 블로그(https://url.kr/l6av7i)

 

나와 내 자매는 키가 비슷하다. 이는 키에 관한 우리 두 사람의 유전자가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가진 유전자는 내가 만들어졌을 때와 지금이 다르지 않고, 죽을 때까지 바뀌지도 않는다. 유전을 통해서 개인의 특성은 다 정해져 있다는 것, 이것이 유전학의 법칙이다.


그러나, 유전자는 정해져 있지만 유전자가 발현되는 것은 환경요소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것이 후성유전학(epigenetics)이다. 타고난 유전자가 여러 가지의 전등이라면, 그 전등에 불이 들어오게 하는 것이 유전자가 발현되는 것이다. 전등은 스위치를 켜면 불이 들어오고, 스위치를 끄면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스위치를 켜고 끄는 작용은 섭취하는 음식, 운동, 환경, 감정과 사고방식들이 연관돼 있다고 알려진다.


그 스위치에 해당하는 것이 무엇일까? 막연하게만 보였던 기전들이 과학적으로 밝혀졌다. 일단, 진핵생물 염색질의 뉴클레오솜은 DNA와 히스톤 단백질로 이뤄져 있다(그림). DNA와 히스톤 단백질의 변형을 통해 염색질 구조의 변화를 일으키고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첫째는 DNA 메틸화 효소(DNA methyltransferase)에 의해 시토신 5번 탄소 위치에 메틸기가 전달돼 5-메틸시토신이 만들어질 때 일어난다. 정상적인 DNA 메틸화가 유지되지 않을 경우 노화와 질병, 암 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두 번째는 히스톤에서 메틸그룹이 히스톤에 붙는 경우인 히스톤 메틸화다. 또, 아세틸 그룹이 히스톤에 붙어 히스톤의 양성전하를 중화시키면, 음성전하를 띄는 DNA와 결합이 느슨하게 돼, 유전자가 더 활발하게 발현되도록 촉진하는 히스톤 아세틸화, 인산화 기작 등이 있다. 셋째는 전사 RNA가닥에 마이크로 RNA가 결합하는 기작이다. 이 모든 스위치는 유전정보를 지닌 DNA가 RNA로 전사돼서 단백질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후성유전학에서 말하는 예를 들어보자. 꿀벌사회는 한 마리의 여왕벌을 위해 다수의 일벌이 존재하는 사회다. 여기서 일벌의 성별은 무엇일까? 일벌과 여왕벌의 성별은 같다. 바로 “암컷”이다. 더욱이 모든 유전적 형질은 같다. 그러나, 유충으로 깨어난 후, 3~4일 안에 “로얄제리”라는 특정한 음식을 먹은 벌은 여왕벌이 된다. 여왕벌은 알을 낳을 수 있고 수명이 평균 4~5년인 반면, 일벌은 불임이 되며, 수명이 6주 정도다. 이는 매일 먹는 것이 수명과 생리적인 기능을 달라지게 할 수 있다는 예다.


식물에서 예도 있다. 농업에서 주요 작물의 후성유전학적 형질 발현의 기작을 이해하고 이를 개량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토마토 유전자에는 숙기(熟期)에 관여하는 LeSPLCNR 유전자가 있다. 이 유전자에 과도한 DNA 메틸레이션이 발생하면 LeSPLCNR 유전자 발현이 억제돼 토마토의 착색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Manning 등, 2006).


인간의 경우는 어떨까? 인간 게놈에 있는 유전자 수는 약 2만~2만5000개라고 알려져 있다. 이중 약 1000만 개 정도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변이 개수다. 일란성쌍생아의 경우, 이 변이마저도 같다. 일란성 쌍둥이가 오랜 시간 각각 다른 환경에서 살다가 수년이 흐른 후 만났을 경우, 이들의 생김새와 생활 방식은 매우 차이가 나는 것을 후성유전학의 한 예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 일란성쌍생아의 약 15%는 최대 100개의 유전적 차이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연구된 사례가 있다. 연구결과에 따라 저자는 “본성과 양육(nature and nurture)을 구분하는데 일란성쌍생아를 모델로 이용하는 데 매우 신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논평했다(동아사이언스. 2021). 그럼에도 같은 유전자를 지녔으나 외부요인에 의해 유전자 발현이 영향을 받는 것은 여전히 지지되고 있다.


인체에는 종양억제 유전자가 있는데 그 억제하는 스위치가 꺼지면 암이 발생한다. 종양억제 유전자가 꺼지지 않고 활성화되도록 돕는 성분들이 있는데, 그 성분들을 포함하는 음식이 알려져 있다. 노란색 강황에 들어있는 폴리페놀 성분인 커큐민, 오메가-3 지방산, 보스웰리아, 녹차에 들어있는 카테킨 등 흔히 항산화 및 항염증 효과가 있는 음식들이다.


발생환경이 유전적인 운명을 벗어나게 한다. 위와 장 속에 유익한 박테리아를 지니게 노력할 수 있고, 주요한 비타민과 무기질을 잘 섭취하는 것, 운동, 종교 활동과 같은 정서적인 건강함, 감정과 사고방식들이 유전자 발현을 일으키는 스위치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생긴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외부 환경과의 개방적인 상호작용을 통해서 개인의 삶이 이뤄진다는 뜻이다.
 

※ 참고문헌

샤론 모알렘, 2015. 유전자, 당신이 결정한다. 김영사, p. 1-330.
허진회, 후성유전현상의 농업적 활용과 전망. 분자세포생물학 뉴스레터, p. 1-7.
동아사이언스, 2021. “일란성쌍둥이, 유전자 100% 같지 않다”(https://url.kr/reh8pm)

권춘봉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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