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리

김상천 시인 / 기사승인 : 2021-06-22 00: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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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향만리
▲ 빈자리

청라(靑羅)마을에 스며들어 산 지가 어언 4년이 되었다. 작은 집을 짓고 당호(堂號)를 청허당(淸虛堂)이라 지었다. 이곳에 들어오는 자는 맑게 비우고 가라는 뜻이다. 그러니 청허당은 빈자리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빈자리라는 말을 쓰려고 했지만 당호라고 할 때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서 청허당으로 한 것이다. 오래전 어느 카페의 정원을 거닐 때 작은 벤치가 있었는데 그 옆에 빈자리라는 알림판이 있었다. 빈자리에 앉아서 왜 이 의자에 굳이 빈자리라는 이름표를 달아두었을까 생각해보았다. 이름표가 없어도 그냥 빈자리인데 말이다. 이는 의자가 아니라 앉는 사람에게 주는 말이었다. 누구든지 앉아 쉬면서 번뇌 덩어리를 맑게 비우고 가라는 뜻일 것이다. 


청허당 차실(茶室)은 빈자리다. 대문도 울타리도 없는 언제나 열려있는 공간이다. 많은 지인이 오고 간다. 부담 없이 오고 갈 수 있도록 나름대로 노력했고 지난 4년 동안 수많은 사람을 맞이한 빈자리였다. 봄이면 뜰에 핀 수많은 꽃들이 반갑게 맞이하고 여름이면 텃밭에 푸성귀들이 부담 없고 편안한 손님 식탁을 채운다. 가을이 오면 마당에 널린 붉은 고추가 정겹게 맞이하고 겨울에는 온돌 황토방이 인기를 독차지한다.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울도 담도 없고 대문도 없는 집이라면 쉽게 찾는다. 


아무리 종가(宗家)의 종부(宗婦) 역할이 봉제사(奉祭祀) 접빈객(接賓客)이라 하지만 환갑을 넘긴 아내의 수고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내도 접빈객에 익숙해져 편안하다고 한다. 접빈객으로 인해 힘든 것보다 얻는 행복이 더 크다는 것이다. 나이 들어 원로가 된 뒤에 찾아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기쁨인 것이다. 그래서 일찍이 공자도 “유붕이 자원방래면 불역락호아”(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라 했다. 다행인 것은 평생을 벗들과 마셔도 남을 만큼의 좋은 차(茶)들이 준비되어 있음이다. 나는 원로에게 필요한 것은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 대단했던 선배가 원로가 되어 찾아 주는 사람 없어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모습이 안타깝게 보인다. 현역 시절에는 비서실에 한 달 전 예약을 하지 않으면 만날 수가 없었던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얼마 전 한 후배가 찾아왔다. 차를 몇 잔 마신 후에 어렵게 말문을 열었는데 새롭게 설립하는 시민사회 단체에 고문을 맡아 주고 창립일에 축사를 해 달라는 것이다. 은퇴한 사람이 무엇을 하겠는가라고 했더니 후배는 한 마디로 나를 꼼짝 못하게 하고 수락하지 않을 수 없도록 했다. “선생님 은퇴 후 낙향한 원로를 후배가 찾아와 이름 석 자 사용하게 해달라는 것은 잘사신 것입니다. 사양하지 말아 주십시오. 아무에게나 부탁하지 않습니다”라는 것이다. 청허당(빈자리에) 참으로 귀한 손님이 아닐 수 없었다. 떠나가면서 가끔 차 마시러 오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빈자리는 누군가를 위해 예비해둔 곳이다. 서성이는 사람들 오면 달려 나가 맞이하여 찻자리 곱게 펴고 밤새워 이야기하고 싶다. 욕심 없이 내려놓는 빈공간이며 주인이 없어 누구나 앉을 수 있는 빈자리인 것이다. 복잡하고 어지러운 시대 쉼이 있고 나눔이 있는 사랑의 영토이기도 하다. 내려놓는다고 하면서도 돌아보면 손에 가득한 것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생각하나 내려놓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맑게 비우고 가라면서도 진즉 내 손에 가득한 것을 보면서 자책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님을 고백한다. 이제 청허당 차실의 문턱을 좀 더 낮춰야겠다. 그리고 앉을 자리 없어 서성이는 사람들을 조용히 맞이할 준비를 해야겠다.


김상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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