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아, 겨울을 녹이는 달콤함과 쌉쌀함

정온진 글 쓰는 탐험가 / 기사승인 : 2021-12-07 00:00:36
  • -
  • +
  • 인쇄
차와 함께

문학에서 겨울은 종종 고난과 역경의 시기를 상징하고, 황폐하고 삭막하며 죽음의 시기로 묘사된다. 현실에서도 겨울은 버텨내야 할 고된 역경의 시기다. 추위가 정말 너무 싫지만 그럼에도 내심 겨울이 기다려진다. 추울수록 그 진가를 발휘하는 겨울 간식이 있기 때문이다. 


뺨과 귀가 베인듯하고 손끝과 발끝에 감각이 점점 사라져 얼얼한 둔한 통증만 남는다. 덜덜 떨다 보면 등줄기가 뻐근해지기까지 하는 혹한의 귀갓길. 종종걸음으로 발길을 재촉하다 길 귀퉁이에서 마주친 붕어빵 가게는 순식간에 마음을 녹인다. 추울수록 더 반갑고 더 따뜻하고 더 맛있다. 


꽁꽁 얼어붙은 채 따뜻한 집에 들어서면 내 신체의 모양대로 한기가 서서히 공간으로 퍼져나가고 온기가 조금씩 스미는 게 느껴진다. 한기는 내 몸에서 아주 천천히 천천히 빠져나간다. 그때 엄마가 내미는 따끈한 코코아 한잔은 겨울이 얼마나 달콤하고 얼마나 따스한지, 행복하다는 기분이 무언지 알게 한다. 


사람마다 겨울을 기다리게 하는 아이템은 다르겠지만 추우면 추울수록 반대로 따뜻함이 더 귀하고 반갑게 다가오기에 은근히 겨울을 기다리게 하는 겨울 필수템들이 있다. 겨울을 기다리고 버티며 즐기게 하는 겨울의 낭만.


나에게 겨울의 절정이자 낭만은 코코아다. 포근함, 안도감,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예전에는 초콜릿 음료는 코코아라는 이름이 더 대중적이었는데 지금은 핫초콜릿이라는 이름을 더 널리 쓰는 것 같다. 내 어린 시절 기억 속의 코코아는 좀 더 진한 초콜릿 향과 어쩐지 조금 밍밍한 맛이었다. 


핫초콜릿과 코코아는 지금은 거의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지만 조금 다르다. 초콜릿의 원재료인 카카오는 지방이 아주 풍부해서 열매를 갈면 지방이 녹으면서 액체상태가 되는데 이것이 바로 최초의 초콜릿이다. 기원전부터 그 역사가 있는 초콜릿은 19세기 산업혁명 이후가 돼서야 지금 우리가 아는 그 형태가 되었다. 카카오 열매에서 지방 성분인 카카오 버터를 분리해낼 수 있게 되면서 초콜릿 산업이 본격화됐는데 지방을 분리해낸 나머지를 분쇄한 것이 바로 코코아다. 그리고 액체상태의 카카오에 설탕과 향신료 그리고 분리해낸 카카오 버터를 추가해서 여러 고도의 공정을 거친 후 굳힌 것이 우리가 흔히 아는 판 초콜릿이다. 


그러니까 코코아는 카카오 열매에서 지방을 뺀 나머지 코코아 가루에 설탕과 향신료 식물성 유지를 물 또는 우유에 녹인 음료이고, 핫초콜릿은 초콜릿을 녹여 우유 또는 물과 섞은 음료다. 일반적으로 핫초콜릿이라는 이름으로 출시된 파우더형 상품은 기존 코코아와 같다. 이름이 달라지긴 했지만, 우리의 겨울을 따뜻하고 달콤하게 녹이는 초콜릿이다. 


코코아뿐만 아니라 초콜릿을 워낙 좋아하기도 하고 차나 커피를 접하다 보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탓에 자연스럽게 카카오에 관해서도 관심을 두게 된다. 그리고 달콤함의 그 이면에 몰랐던 사실을 들여다보고 놀라게 된다. 차나 커피도 마찬가지다. 


차, 커피, 초콜릿은 아주 오랫동안 지위가 낮은 이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특권층이 소비하는 사치품이었다. 이 사치품들이 소비자의 손에 들어가기까지 많은 과정 중에 특히 최초 생산자들의 희생은 2000년대 초반에 공론화됐다. 그중에서도 카카오는 역사에 드러난 그 순간부터 지배자들을 위한 땅에서 자라는 금이었고 이는 지금도 다르지 않다. 


아메리카 대륙의 정복자들은 초콜릿 음료를 유럽으로 가져갔고 이내 유럽 전역에 유행했다. 유럽에 조달할 물량을 위해 정복자들은 아프리카인들을 노예선에 태워 아메리카로 데려갔고, 카카오 농장은 번성했다. 그러나 무분별한 카카오 생산은 카카오나무가 병들어 카카오의 한 종을 멸종에 이르게 했다. 그러자 그들은 기후가 비슷한 다른 식민지에 카카오나무를 옮겨 심었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초콜릿은 오늘날과 같은 형태를 띠기 시작했고 귀족이나 특권층이 즐기던 음료에서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이 즐기는 과자로 대중화됐다. 노예제도는 사라졌지만 이제 그들은 더 많은 카카오가 필요했다. 


오늘날 전 세계 생산량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아프리카의 카카오는 비윤리적 아동 노동으로 얻어진다. 그리고 비윤리적이라는 의미 안에는 납치된 아동도 포함된다. 아프리카의 카카오를 사들이는 거대기업들은 이런 사실에 대해 말을 아낀다. 이미 오래전에 비윤리적 노동과 불공정 거래에 대한 협의와 개선이 있었고 그런 일이 일어날 리 없다고. 기반시설이 전혀 없다시피 하고 카카오 수출만이 거의 유일한 소득인 국가들. 이 국가들로부터 카카오를 전량을 구매하는 거대기업들은 과연 그 안의 노동환경에 대해 정말 모를까. 그들이 모르는 사실이어야만 하는 걸까.


나는 여전히 초콜릿을 좋아한다. 기쁘고 특별한 날의 추억과 우울한 날의 위로와 내 유년시절의 행복이 모두 녹아 있기 때문이다. 아마 앞으로도 겨울이면 코코아는 나를 따뜻하게 하고 겨울을 기다리게 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초콜릿에 쓴맛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초콜릿을 먹을 때마다 그 쓴맛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따뜻한 나라의 사람들이 겪는 고난과 시련이 나의 겨울을 달콤하고 따뜻하게 만든다는 것을.


초콜릿과 관련된 거대기업들은 최초 생산자 외에도 이미 많은 이들의 생계와도 맞닿아 있다. 다만 즐거움을 위해 소비하는 이 기호품들이 내 손에 오기까지 그 과정에 조금은 관심을 갖고 혹시 그것을 개선하려는 어떤 움직임이 있다면 그것에도 관심을 가져보고자 한다. 고난과 역경은 문학 속에서만 존재하기를.


정온진 글 쓰는 탐험가

 

[저작권자ⓒ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정온진 글 쓰는 탐험가 정온진 글 쓰는 탐험가
뉴스댓글 >

오늘의 울산 이슈

주요기사

+

많이 본 기사

정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