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문학>_[주제영화] 대한민국이 역행하기 시작했다, <벤저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이민정 영화인 대경대 방송영상과 겸임교수 / 기사승인 : 2022-05-10 00: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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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1925)가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돈방석에 앉은 미국의 흥청망청 가운데 인간성의 부재라면 <벤저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1922)는 전쟁으로 인한 상실감, 평화로운 과거로의 회귀 갈구를 판타지로 그려낸 작품이다. 두 작품 모두 영화화됐고, 영화가 원작을 더욱 빛나게 했다. 2009년에 개봉한 이 영화의 감독 데이빗 핀처는 주연인 브래드 피트와 <세븐>(1995), <파이트 클럽>(1999)에서 서스펜스와 강렬한 액션으로 만났다. 두 영화에 비하면 이 영화의 정서는 무척 서정적이다. 그러나 면밀히 들여다보면 노인으로 태어나 아이의 모습으로 늙어간다는 내러티브는 파격적이고, <타이타닉>(1997, 제임스 캐머런)의 죽음으로 인한 부재(不在)의 절절함보다 더욱 강렬하다. 여자는 주름이 늘어 가는데 남자는 점점 젊어지다 못해 어려지는 현실은 눈앞에 두고도 만지거나 가질 수 없는 신기루다. 배가 고파 죽겠는데 영양가 높고 맛있는 음식을 먹지 못하는 고통보다 더 지독하고 자고 싶어도 누울 수 없는 형벌만큼 극악무도하다.

 

▲ 포스터

영화에서 벤저민은 양(量)은 아이의 몸이지만 질(質)은 노인의 것으로 태어난다. 어머니는 출산 직후 남편에게 아이를 꼭 잘 키워달라는 유언과 함께 사망한다. 남편은 아이의 모습을 보자마자 지네가 버글버글한 바구니를 내다 버리듯 아이를 요양원 계단에 놓고 도망친다. 흑인인 요양원장은 주님의 은총이라며 아이를 정성스럽게 키우고, 아이는 자랄수록 젊어진다.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던 선장(船長)은 전쟁 중에 사망하고, 스파이인 첫 번째 연인은 예고 없이 홀연히 자취를 감춘다. 어릴 때부터 벤저민에게 호의적이었던 데이지는 여성으로서 가장 아름다운 때에 남성으로서 가장 아름다워진 벤저민과 재회하며 결혼한다. 벤저민은 전쟁으로 거부가 된 단추공장 사장인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받는다. 벤저민은 아버지의 모든 흔적을 현금으로 바꿔버린다. 영화에서 아버지는 유일하게 벤저민에게 고통을 준 존재다. 남자는 점점 젊어지지만 여자는 점점 늙어가고, 벤저민은 사랑하는 부인과 딸의 미래를 위해 유산을 남기고 떠난다. 온몸에 주름살이 가득하고 허리가 굽은 여자가 요양원에 들어가 아이에서 아기가 된 채 치매에 걸려버린 벤저민의 최후를 지킨다.

 

▲ 늙어서 치매에 걸린 벤자민

일본 영화 <비밀>(1999, 타키타 요지로)에서는 사고로 부인의 영혼이 딸의 몸에 빙의된다. 남편은 딸의 모습을 한 부인과 섹스하려 하지만 차마 시도할 수 없다. 얼굴을 베개로 가려도 도저히 할 수 없는 짓이다. 영혼만은 열렬히 사랑했던 부부였지만 현실은 액면상의 근친상간을 허용하지 않는다. 딸의 몸을 한 부인은 딸의 영혼이 돌아온 것처럼 연기하고는 남편을 자유롭게 놓아준다. <비밀>에서 부인의 선택이 <벤저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벤저민과 같다.


벤저민에게는 두 명의 남자와 네 명의 여자가 있다. 한 남자는 자신을 버린 친부(親父)고 다른 남자는 벤저민이 생(生)을 모델링하는 아버지 같은 존재인 선장이다. 첫 번째 여자는 괴물 같은 자신을 낳다가 죽어버린 친부의 사랑하는 부인이자 벤저민의 생모(生母)고, 두 번째 여자는 자신을 정성으로 키워준 흑인 여성이다. 세 번째 여자는 처음 사랑한 여자고, 네 번째 여자는 마지막으로 사랑한 여자다.

 

▲ 어린 벤자민

생뚱맞을지도 모르지만, 벤저민에 한국의 민주주의를 대입하면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된다. 해방 직후 민주주의는 이름뿐인 괴물이었다. 독재를 거치면서 민중은 민주주의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학습했다. 민주주의를 위해 수많은 이들이 희생됐고, 의지를 잇는 자들에 따라 민주주의가 배양돼왔다. 벤저민의 삶 전체를 보면 민주주의가 요청될 땐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벤저민이 백조가 됐을 때처럼 민주주의가 꽃을 피웠고, 더는 이 이념을 생각하지 않아도 될 만큼 일상이 됐다.


벤저민의 물리적 전제와 일반적 시간개념을 놓고 보면 작금의 대한민국 민주주의 현실은 역행하고 있다. 선진적 만끽은 새 정부를 맞이하면서 어리둥절해 하거나 분노로 바뀌고 있다. 당연하고 보편적이었던 민주적 절차들이 수난을 받았던 때로 회귀하고 있는 것이다.

 

▲ 청년 벤자민

다행이랄까, 놀랍다고 할까. 민주 시민들은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을 때 품위 있게 화내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마침 IT 강국이라는 현실이 매우 시의적절하다. 비민주적임을 확인하고 또 그것이 ‘YUJI’될 것이라고 확신한 시민들은 온라인을 통해 분노의 화염을 활자로 내던지고 있다.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우악스럽게 때로는 영리하게, 주거니 받거니 반민주, 검찰권력, 언론권력을 상대로 강력한 스크럼을 짜서 넓고 깊은 의지를 확산시켜나간다. 벤저민이 치매에 걸려 고통에 몸부림칠 때 그를 깊이 안아준 마지막 사랑이 있었다. 부디 시민들의 용기와 결기가 최대한 빨리 안도함에 안착할 수 있길,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더는 위협하는 것이 없는 때가 빨리 올 수 있길 기원한다. 이 분노의 끝에 있을 진정한 민주주의가 만족할 만큼 실현될 수 있는 때가 어서 오길 간절하게 소망한다.


이민정 영화인, 대경대 방송영상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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