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가장 아끼는 걸 없앨 거야” - 처절한 피의 복수 <메데이아>(2)

최미선 시민인문학교 교장 / 기사승인 : 2021-11-17 00: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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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TV 지상중계

인문숲 시즌3-그리스 비극
▲ 이은민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대표.

 

신화 ‘메데이아’와 비극 <메데이아>

최미선 인문숲사회적협동조합 대표=신화에서 그려지는 메데이아는 복수를 감행하고 다른 나라에 가서 환영받는다. 심지어 아들이 왕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의심이 든다. 과연 에우리피데스가 묘사한 메데이아의 모습이 악녀를 만들기 위한 왜곡된 시선의 산물이 아닌가 하고. 혹시 이렇게 접근한 시선이 있나? 있다면 소개해 달라.


이은민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대표=작품 <메데이아>는 여러 작가의 다양한 버전이 있다. 신화 ‘메데이아’와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를 비교하면, 메데이아의 아이들을 죽인 것은 코린토스인의 복수라는 설과 메데이아가 아이들에게 불멸의 생명을 주기 위해 죽여 헤라 신전에 바쳤는데 실패했다는 설이 있다. 이아손의 성격도 신화에서는 영웅적인 면이 부각되지만, 비극에서는 탐욕스러운 야심가로 그려지고 코린토스 왕가 인물들의 문제점을 부각시킨다.


아들 살해 이야기는 에우리피데스의 각색일 듯하며 이 작품으로 경연대회에서 우승하지는 못했다. 사랑의 격정이 인간을 어떻게 파국으로 몰고 가는지 보여준다. 여성은 남성에 의해 절망적 슬픔에 빠져 여성성은 측량할 수 없는 어둠의 충동으로 나타나며 출구 없는 처절함과 광기로 비극을 만든다. 주인공의 독백으로 극명한 내면 갈등을 보여준다. 


에우리피데스는 타자인 이방인 여성을 극의 전면에 내세우고 남성의 배신을 탄핵하도록 하는데, 이는 당대에 그리 흔치 않은 양상이고 작가의 진보적인 면모를 돋보이게 하는 부분이다. 메데이아를 자기 자식을 희생시키면서까지 복수하려는 잔인한 인물로 그리면서도, 그 복수 동기를 인정하고 치밀하고도 사실적으로 재현한다. 


작가는 작품 전반부에 이아손을 이익에 눈이 먼 비열한 인간으로 드러내지만 종반부부터 경멸은 연민으로 변한다. 메데이아 경우에도 전반부는 동정적인 인물로 표현되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그녀의 격정과 격렬한 분노는 도를 넘어 너무나 지나친 면모를 드러내고 그녀의 폭력성은 극대화한다. 신은 예상치 못한 많은 일로 우리 인간을 놀라게 해 우주의 질서가 깨어지고 인간의 불화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막을 내린다.

배신의 아이콘, 이아손

최미선=이아손은 황금 모피를 가져오면 왕위를 물려주겠다는 삼촌의 말을 듣고 갖은 고생을 하며 황금 모피를 가져온다. 이번에는 공주와 결혼하라는 왕의 명령에 기혼에 아이까지 있음에도 결혼을 감행하려 한다. 이런 이아손의 캐릭터를 어떻게 보나?


이은민=배신의 아이콘이다. 야심가이자 탐욕가이며 언변이 좋은 소피스트의 모습이다. 그는 말한다. 메데이아의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녀가 야만족의 나라에 사는 대신 헬라스 땅에서 살게 했고 폭력을 멀리하고 법을 사용하는 것을 알려 주었다고 한다. 그녀의 영리함을 모든 헬라스인이 알게 돼 명성을 얻는 데 일조했고, 코린토스의 공주와 결혼해서 아이들에게 왕족의 형제를 만들어주고 집안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이 기회를 메데이아가 배신이라고 하는데 슬기로운 여인이라면 이해할 것이라고 한다. 그녀는 잘못된 언행으로 추방되게 됐어도 마지막까지 금전적인 도움이나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 어리석은 여인이 분개하고 있다고 탄식한다.


최미선=이아손이 적극적으로 한 행위는 황금 모피를 찾으러 간 여행 이외에는 보이지 않는다. 황금 모피도 본인의 노력보다는 메데이아의 도움으로 쟁취한 것이고 또다시 공주와 결혼해 권력의 중심으로 다가가려 한다. 여인들의 도움으로 권력을 유지하려는 어찌 보면 찌질한 캐릭터로 보인다. 결국 여인의 힘으로 제압당하고 마는 캐릭터다. 이런 이아손이 영웅으로 추앙받은 걸 보면, 메데이아가 악녀로 평가 절하되는 것에는 상당한 의도가 있어 보인다. 이를 어떻게 생각하나?


이은민=메데이아는 이아손이 자신에게 싫증이 났고 야만족 여자를 아내로 두고 있으면 명예가 실추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새 장가를 들었다고 주장한다. 메데이아는 그리스 남성 중심 사회에서 타자로 존재하는 이방인 여성이다. 이방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메데이아는 그리 편하게 살아오질 못했다. 남편인 이아손은 코린토스에 온 후부터 그녀에게 점점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마침내 그 나라의 공주와 결혼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녀의 폭력은 피압박자에게서 나오는 무도한 폭력, 억눌림으로 인한 더욱 억제될 수 없는 폭력이 되어 버렸다. 작가가 창작한 자식 살해는 극단으로 치달은 인간의 실존이 낳은 결과다.

나에게 닥친 메데이아적 사건

최미선=그리스 비극은 인간사에 발생할 수 있는 사건의 극단을 보여준다. 그래서 우리에게 이런 면은 없는지 우리 삶에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는지 점검하게 만든다. 혹시 선생님에게 메데이아적 사건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일어나는가? 


이은민=여성상과 남성상의 오류로 인간관계가 힘든 시기가 있었다. 현대를 살면서 봉건주의적인 사고방식에 갇혀 내 삶을 가두고 살던 시기였다. 의무보다는 권리를 내세우고 상황에 따라 이기적이며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생각했다. 여성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와 혜택이 우선이었고 남성으로부터 받아야 할 것만 생각이 앞섰다. 


내 왜곡된 남성상은 아버지, 남편, 아들로 이어지면서 그들에 대한 원망과 내 삶을 구속시키는 결과로 정말 숨이 막히기도 했다. 그런 삶에 운명은 친절하지도 호의적이지도 않게 딱, 견딜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갔다. 인생과 삶을 배워야만 살 수 있는 상황이요,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라고 느꼈다. 작은 복수와 큰 복수는 큰 범주에서는 같은 복수로 보이면서 작은 복수에 소홀하지 않고 감정을 살펴봐야 할 이유를 알게 됐다. 타자의 불행이 내 불행인 것을 알게 해 주었다.

행복하게 사는 게 진정한 복수

최미선=잔인한 복수는 상대가 가장 아끼는 것을 희생시키는 것이라는 논리가 메데이아의 복수에 작동한다. 그러나 결국 상대가 가장 아끼는 것을 희생시키는 것은 자신이 가장 아끼는 것을 희생시켜야만 한다는 이야기로 보인다. 이 복수극이 사실이라면 결국 이아손도 고통 속에서 살았겠지만 메데이아도 결코 행복한 삶을 살아내지는 못했을 것 같다. 선생님은 이 복수극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이은민=치명적인 공격은 내면 깊은 곳에 상처를 만든다. 그 상처는 복수의 원인이 된다. 배신으로 짓밟힌 명예와 상처는 자존심에 치명적이었고 상할 대로 상한 자존심은 자식의 사랑, 생명에 대한 존중을 넘어섰다. 내가 메데이아라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 파국으로 치닫기 전에 삶의 방향을 어디로 돌려야 할까?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자존감이 낮을 수 있다. 여성의 자존심과 명예를 버리고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은 어떨까? 남편의 이기적인 결정에 좌지우지되는 여성의 삶이 아닌 여성 주체의 긍정적인 삶을 선택하면 좋겠다. 배신한 남편에게 진정한 복수는 행복하게 삶을 살아내는 것이 아닐까? 태풍처럼 왔다 간 사랑의 폭풍이 배신의 기운으로 다가온다 해도 아이들과 고향으로 돌아가 진정한 자신의 삶을 사는 메데이아를 꿈꿔 본다. 


최미선=메데이아의 자식 살해는 잔혹하다. 메데이아가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이은민=이아손에게 자식 잃은 슬픔으로 처절한 복수를 하려 한 것과 새 신부가 독살당하게 되면 선물을 들고 간 아이들이 코린토스의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그들의 복수욕을 충족시켜주느니 어미 손에 죽는 편이 낫다고 여긴 것이다. 아이들의 명예를 지켜주려는 생각이었다.


메데이아에게는 영웅의 아우라가 보인다. 자부심과 자존심이 높은 인물로 자기 이름을 부르며 용기를 북돋는 장면이나 적의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면 호메로스의 영웅적 가치관이 반영된 캐릭터로 드러난다. 


정리=최미선 인문숲사회적협동조합 대표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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