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일기] 삭발

김윤경 글 쓰는 엄마 / 기사승인 : 2022-06-09 00: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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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1일부터 아이의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방사선치료 30회 중에 11회를 받고 난 다음날이었다. 머리카락이 빠질 거라는 안내는 들었지만 실제로 보니 또 달랐다. 아이 앞면에 거미줄이 쳐진 것처럼 머리카락이 엉켜 있어서 떼 주고 뒷면도 떼고 나면 바로 앞면에 다시 원상복귀가 돼 있었다. 아이가 자고 난 자리에도 머리카락 뭉치가 여기저기 묻어 있다. 두피가 훤히 보일 만큼 머리카락이 속절없이 빠졌다. 아이한테도 미리 머리카락이 빠질 거라고 말을 해놓긴 했다. 아이는 진짜 그 일이 벌어졌다며 신기해했다.


그렇게 주말을 보내고 5월 23일 삭발했다. 병원 지하에 있는 이발소로 데려갔다. 아이는 머리카락이 다 빠질 때까지 두고 싶어 했다. 나도 집이라면 놔뒀을 거다. 숙소 생활인데다가 우리는 거실에서 지내기 때문에 내가 아이에게 삭발을 권했다. 위생과 청결이 중요한 숙소에서 아이 머리카락이 다 빠질 때까지 기다리긴 어려웠다. 아이는 마지못해 이발소로 들어갔다.


아이 앞통수와 뒤통수에 수술 자국이 있어서 일부러 병원 이발소를 택했다. 아이가 의자에 앉고 흰 천을 둘렀다. 이발사가 의식을 치르듯 “이제 머리 자릅니다” 말하고 나서 시작했다. 아이 머리카락이 바닥에 후두둑 떨어졌다. 머리에 고속도로가 한 줄 두 줄 날 때 눈물을 참았다. 내가 울면 아이 마음은 오죽하겠나 싶어서 옆에서 연신 예쁘다고 말해줬다. 아이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숙소와 병원에서 삭발한 환자들을 봐와서 그런지 아이가 받는 충격이 덜했다. 경험자는 아직 덜 빠진 머리카락도 테이프로 떼어주라고 했다. 어차피 다 빠질 건데 놔두면 짧은 머리카락이라 찔려서 따갑고 가렵다는 이유에서다. 아이의 머리가 반들반들해지고 있다.


아이는 삭발한 첫날 숙소에 돌아왔을 때 모자를 벗지 않았다. 아빠와 언니 말고는 비밀이라고 했다. 하루 이틀 지나고 아이 마음도 느슨해졌다. 우리는 금요일에 치료받고 울산에 왔다가 월요일 아침에 다시 서울로 올라간다. 아이가 언니를 만나자마자 자기 머리를 보여줬다. 학원 차에서 내린 언니는 동생이 삭발한 모습을 보고 당황해서 “더러워”, “창피해”, “부끄러워”, “빨리 모자 써” 말부터 나왔다. 동생한테 사과하긴 했지만 언니가 자기를 부끄러워한다는 걸 알게 됐다.


짜장면 먹으러 간 식당에서 아이가 답답하다며 모자를 벗었다. 그러자 큰아이가 다른 사람 시선이 신경 쓰인다며 옆 테이블로 옮겨가서 먹었다. 그러다 큰아이 친구가 식당으로 들어왔다. 큰아이는 동생한테 모자 쓰면 안 되냐고 안절부절했다. 언니 부탁에 아이는 모자를 썼다. 큰아이는 학교에 동생 대머리라고 소문나서 친구들이 자기를 왕따 시키면 어떡하냐고 걱정했다. 큰아이 마음도 이해는 된다. 그래도 큰아이에게 동생을 좀 더 배려하자는 뜻으로 말을 하게 된다. 듣고 있던 큰아이가 “동생 뭐시기 하는 말에 나는 이제 대답 안 할거야” 토라졌다. 이럴 때마다 아차 싶다. 좀 더 공감하고 수용해야 했는데 내 마음이 앞섰다.
자려고 누웠을 때 아이들과 대화를 오래 하는 편이다. 큰아이가 동생에게 “너 때문에 내가 아빠랑 지내는 신세가 됐잖아” 쏘아붙였다. 그러자 아이도 “나도 내가 아프고 싶어서 아픈 거 아니거든” 억울해 한다. 중간에서 나는 어떡해야 하나. 둘 다 맞고 이해가 된다. 안 아픈 큰아이도 아픈 작은아이도 애가 쓰인다. 어렵다.


김윤경 글 쓰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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