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눈동자 –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

최영실 포토 에세이스트 / 기사승인 : 2022-01-24 00: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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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에세이 ‘훌훌 훨훨’
▲ 올해는 아직 눈이 많이 오지 않은 인제의 자작나무. 사진: 김학성

 

저녁에 숙소에 도착하자 그녀가 가만가만 방에 앉아 여행 가방과 옷을 정리하고 있다. 벌써 삼십 분째다. 옷을 하나하나 벗어 반듯하게 개고 아침에 잘 입을 수 있도록 차곡차곡 쌓는다. 보이지 않는 눈을 대신해 손으로 꼼꼼하게 만져서 잘 정리되고 있는지 수시로 확인한다. 흐트러지거나 쌓은 순서를 기억에서 놓치면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야 해서인지, 아니면 그저 오래된 습관인지는 묻지 않았지만 낯선 곳이라 신경이 더 쓰일 수 있겠다는 짐작이 들었다. 아침이 오고 민서가 다시 가만가만 앉아 화장을 한다. 화장품 종류도 이것저것 열댓 가지가 넘는다. 어찌나 꼼꼼하게 바르고 그리는지 밖에 잠시 나가 기다리는데 나를 부른다. “영실아. 나 화장품 하나가 없는데 네가 혹시 네 가방에 넣었는지 챙겨봐.” 그녀의 말은 적중했다. 나는 눈에 보이는 것들을 눈여겨보지 않고 설렁설렁 챙긴 것이다. 이쯤 되면 눈이 있어도 볼 수 없다는 말보다 입이 있어도 다물어야 하지 않나. 민망해 웃음으로 넘겼다.


벗 민서와 짧은 여정을 꾸렸다. 서른 살에 망막색소변성증을 앓아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민서는 여행을 좋아한다. 혹여 그녀가 1박 2일 일정에 힘들지 않을까 걱정도 했지만 얼마 전 있었던 일을 상기하며 괜찮을 것이라 확신했다. 늦은 저녁이었다. 그녀는 잘 알지만 내가 초행길인 장소를 함께 가게 된 것인데, 길을 안내하는 민서가 훤히 보이듯이 말한다. “영실아, 저기 파리바케트 빵집 보이지? 거기서 바로 우회전해 봐. 그리고 첫 번째 골목에서 다시 우회전해.” 그녀가 빵집이 보이냐고 내게 물었을 때 무척 당황했다. 볼 수 있는 사람은 나고 볼 수 없는 사람은 그녀가 아닌가. 그녀는 어디까지 볼 수 있고 나는 얼마나 못 보고 길을 자주 헤매는 걸까.

 

▲ 자작나무 숲 전경

그녀에게 여행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민서의 입장에서는 동반자에게 미안하고 조심스러운 마음이 들 것이다. 충분히 서로가 편안하고 믿을 수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여러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여정이어서 우리 둘은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민서는 오랜 시간 동안 시각을 제외한 다른 감각으로 생활해왔기 때문에 활동 범위 안에서는 익숙하게 행동한다. 그녀를 처음 만난 이들에게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소개하지 않으면 잘 모른다. 움직일 일이 있을 때 팔을 잡아주고 느릿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하면 그제야 말을 해주곤 한다. 심지어 두 번째 만나는 이들도 전혀 그녀가 보지 못하는 사람인지 알지 못했다고 해서 함께 웃었던 일이 있다. 말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그녀가 시선을 맞추니 당연히 눈이 마주친다. 눈빛을 맞추는 일은 사람을 만나는 일에서 중요한 시작이다. 눈동자를 맞추지 못하는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도 많지 않은가.


돌아오는 버스 안에 민서의 단아하고 맑은 목소리가 차 안에 흐른다.

함께 있는 우리를 보고 싶다/ 도종환// 우리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싶다/ 함께 잡은 손으로 따스하게 번져오는/ 온기를 주고받으며/ 겉옷을 벗어 그대에게 가는 찬바람 막아주고/ 얼어붙은 내 볼을 그대의 볼로 감싸며/ 겨울을 이겨내는/ 그렇게 함께 있는 우리를 보고 싶다// 겨울숲 같은 우리 삶의 벌판에/ 언제나 새순으로 돋는 그대/ 이 세상 모든 길이/ 겨울강처럼 꽁꽁 얼어붙어 있을 때/ 그 밑을 흐르는 물소리 되어/ 내게 오곤 하던 그대여// ​세상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무엇을 하기에도/ 너무 늦은 나이라고 말할 때/ 아직도 늦지 않았다고/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조그맣게 속삭여오는 그대/ 그대와 함께 있는 우리를 보고 싶다// ​너무 큰 것은 아니고/ 그저 소박한 나날의 삶을 함께하며/ 땀흘려 일하는 기쁨의 사이사이에/ 함께 있음을 확인하고// ​이것이 비록 고통일지라도/ 그래서 다시 보람임을 믿을 수 있는/ 맑은 웃음소리로 여러 밤의/ 눈물을 잊을 수 있게 하는 그대여 희망이여/ 그대와 우리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싶다

낭송을 들으며 힘겹게 버티고 있는 모두에게 서로서로 기댈 수 있는 위안이 되었다. 겨울 인제의 자작 숲은 아마도 핑계였지 싶다. 모두가 ‘악’ 소리를 틀어막고 견디는 지난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사람과 사람 사이, 길 위의 시간이 더 간절했는지도 모르겠다. 인제는 내가 알고 있는 가장 먼 곳이다. 그 먼 곳에는 나무와 나무가 더불어 숲을 이루었고, 절뚝이는 사람들이 서로를 부축해 숲으로 숲으로 향하고 있다. 하얀 세상이었다.


짧은 여정이었지만 서로의 눈빛을 나누고 팔을 내어주고 동화처럼 풍경을 설명했던 시간, 말하지 못하는, 볼 수 없는, 들을 수 없는, 느낄 수 없는 모든 결핍은 누구에게나 있다. 다만 유정한 마음으로 곁을 내어 곁에 서 있을 뿐.


민서에게 이번 여정을 기고에 함께 싣고 싶다고 제의했다. 다녀온 며칠 후, 지독한 한파를 잠시 피해 봄날 같았던 인제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산길을 오르던 그녀의 뒷모습을 보느라 놓쳤던 풍경이 이메일로 도착했다.
 

 

▲ 보이지 않는 민서를 위해 함께 해준 여러 다정한 사람들의 뒷모습

 

“우리가 잘못 배운 것들 중에 색을 표현하는 말들이 있어요. 살색, 하늘색, 나무색… 그것들이 한가지일 리가 없는데 말이죠. 으레 나무를 그리면 짙은 브라운으로 줄기를 칠하던 제 부족한 상상력은 그런 탓이었다고 괜히 혐의를 씌워 봅니다. 그런데 하얀 나무라니, 러시아나 북유럽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자작나무 숲으로의 여행. 추위도 잘 타고 평소 걸을 일도 많이 없는 제가 산행, 그것도 겨울 산행, 그것도 강원도. 하지만 좋은 분들의 초대에 응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습니다.

언제나 이국적이고 환상적인 풍경을 선사하지만 자작나무가 주인공이 되는 가장 근사한 배경은 눈 덮인 산이거나 들판일 것이에요. 겨울 내내 녹지 않고 켜켜이 쌓여 사람들의 발길에 다져진 눈길 위를 새벽에 내렸다는 싸락눈이 폭신하게 덮고 있었지요. 질척이지 않고 포슬포슬한 눈길을 발끝에 신경을 집중하여 뽀드득 소리를 내며 걷는 일은 눈 보기 힘든 아랫동네 사는 사람이 누릴 수 있는 몹시도 호사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완만하게 이어진 경사라고는 해도 중간에 몇 번은 숨을 골라야 했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여를 올라 만나게 되는 자작나무들. 아, 그런데 20미터가 넘는다는 높이를 감당하기엔 위태로워 보이는 굵기가 아닌가요. 그 뿌리는 도대체 얼마만큼의 안간힘으로 대지를 부여잡고 있는 것일까요. 나무를 가만 쓰다듬었어요. 수피에 눈동자 같은 옹이들이 있다고 해요. 자라기 위해 스스로 가지를 떨구어 낸 자국이라 하지요. 어떤 발원을 가졌기에 제 가지를 쳐내고 상처를 새기면서까지 하늘로, 하늘로 키를 키우는 것일까요. 그저 매끄럽게 희기만 하지 않아서, 눈동자 같은 상처가 있어서 눈을 맞추고 말을 걸어보고 싶게 하는 나무였습니다.

 

▲ 나무의 눈동자

더 아름다운 건 사람의 풍경이었습니다. 이 행복한 여행의 시작과 끝에는 배려와 친절과 다정으로 기꺼이 발을 맞춰 주신 분들이 계셨습니다. 팔을 내어주시고 풍경을 설명해 주시고 풀린 신발 끈도 고쳐 매어 주시고 열린 점퍼 지퍼를 여며주시던 따듯한 손길들, 잊지 못할 거예요. 일기장을 가득 메우고도 남은 뒷이야기들은 또 추억으로 남아서 오래오래 꺼내 보게 될 테지요.”

최영실 포토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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