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전도비와 남한산성을 둘러보고

백태명 울산학음모임 성독반 / 기사승인 : 2022-01-03 00: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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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태명의 고전 성독

대기업 롯데의 월드타워라는 건물이 근래에 들어선 자리 곁에 예부터 치욕의 삼전도비가 있다.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버티다 못 견디고 나가 청나라 황제한테 항복한 자리다. 더 큰 살육과 수난과 모욕을 멈추기 위해 누군가는 비문을 써야 하고 누군가는 비문을 새겨야 했다.


모두 핑계 대고 거부하니 인조는 이경석을 불러 “오늘은 저들의 말대로 하세. 나라의 존망이 달려있네. 지금은 후일을 도모할 때네.”라고 설득했다. 이경석은 청나라의 협박에 안절부절못하는 인조를 보고서 “군주의 욕됨이 이렇게까지 되다니요. 이 한 몸 돌볼 수 없습니다. 꾹 참고 명을 받들겠나이다.”하고 승낙했다.


15년 뒤 연로한 이경석은 궤장을 하사받고 여러 대신들을 불러 자축연을 벌였다. 당시 유림의 영수였던 송시열은 이런 역사적 고충을 알면서도 칭송하는 글 말미에 ‘오래 살고 편안했다’라는 뜻의 ‘壽而康(수이강)’이라는 연고가 있는 문구를 넣어 넌지시 조롱했다. 이경석은 그냥 넘어갔다. 그 뒤 박세당이 이경석의 신도비문을 쓰면서 이경석은 봉황 같고, 송시열은 올빼미 같은 자라고 지탄했다. 박세당은 소신껏 말하고 정치적 박해를 심하게 받았다.


치욕을 홀로 감당하며, 이경석은 “아! 글 배운 것을 후회한다.”고 한탄했으니, 청 황제 칭송과 우리 군왕 모욕 사이를 줄타기하듯 쓴 기구한 글은 모두 열한 문단이다. 그 한 문단을 읽어보자.

*궤장(几杖): 임금이 70세 이상의 대신에게 하사하던 궤(几)와 지팡이.
*신도비(神道碑): 임금이나 종이품 이상의 벼슬아치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우던 비석.

東南諸道兵(동남제도병)이 : 동남쪽 여러 도의 군대가
相繼崩潰(상계붕궤)하고 : 연거푸 무너졌고, (崩潰무너질붕,무너질궤)
西北帥(서북수)는 : 서북방 장군들은
逗撓峽內(두요협내)하여 : 산골짜기에 숨어서 멀리 뒤로 물러나 (逗머무를두,撓굽힐요)
不能進一步(불능진일보)한데 : 한 걸음도 나오지 못하는데,
城中食且盡(성중식차진)이라 : 남한산성 안에 식량도 떨어졌다.
當此之時(당차지시)에 : 이때를 당하여
以大兵薄城如(이대병박성여)가 : 대군이 성에 다가서는 것이 (薄닥쳐올박)
霜風之卷秋籜(상풍지권추탁)하고 : 마치 서리 바람이 가을 풀을 휩쓸고, (籜풀이름탁)
爐火之燎鴻毛(노화지요홍모)라 : 화롯불에 깃털을 태우는 것처럼 사나웠다. (燎화톳불요)
而皇帝(이황제)는 : 그러나 황제께서는
以不殺爲武(이불살위무)하고 : 죽이지 않는 것을 무(武)로 삼고
惟布德是先(유포덕시선)하여 : 덕을 펼치는 것을 우선하시어,
乃降勅諭之曰(내강칙유지왈) : 이에 칙유를 내리시길, (勅諭:황제의 말씀)
來朕全爾(내짐전이)하고 : "내게 온다면 너를 온전히 해주고,
否屠之有(부도지유)라하다. : 그러지 않으면 모두 죽이겠다!" 하다. (屠잡을도)

백태명 울산학음모임 성독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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