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만강아, 두만강아

배성동 시민/소설가 / 기사승인 : 2021-07-13 00: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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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범 망명 보고서

조선범 망명 보고서(13)

두만강 샛강

두만강이 가까워질수록 산협은 깊고 길은 비탈졌다. 그나마 지형이 평탄한 수림지대에 들어선 광산과 채벌장은 왜인들이 독차지했다. 을사늑약 이후 외교권을 박탈당한 조선은 이들을 통제하기엔 속수무책이었고, 변방을 관리하는 관북 조선병대는 벌채권 허가를 받은 산림 광산업자들 앞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였다. 주먹구구식 산림법 외에는 벌채와 수렵을 금지하는 법 자체가 없는 백두산 수림전구는 무법천지다. 아름드리 산림은 먼저 벤 업자들의 몫이었고, 산에 사는 짐승은 먼저 잡은 사람이 임자였다. 


반구대포수들은 무산 광산이 들어선 산지를 피해 마늘쪽 산봉우리로 우회했다. 보일 듯 말 듯하던 두만강은 차츰 멀어졌다. 아슬아슬한 층층벼랑길은 매우 험했지만 산세 만큼은 장관이다. 이녁들이 어렵사리 무산 늑대촌에 도착하기론 해가 중천에 머물 무렵이었다. 먼저 와있던 북청산포수들은 백 가지 고초를 겪고서야 들어서는 반구대포수들을 열렬히 반겼다. 눈을 감아도 잊지 못할 동지들, 얼굴만 떠올려도 반가운 별동대 동무들이다. 분조됐던 이녁들은 다시 하나의 별동대로 뭉쳐졌다. 그러나 아무리 첩첩산중이기로 많은 인원이 한 자리에 있다간 심마니나 화전민들의 눈에 띌 수가 있다. 별동대 대원들은 곧장 회령으로 이동했다. 


무산에서 회령으로 연결되는 협곡 지천은 암석과 모래자갈의 연속이다. 안간힘을 쓰며 도착한 곳은 두만강이 내려다보이는 비탈산등성이었다. 억새 잡목 사이로 드러나 두만강 샛강은 노을 물결로 아른거렸다. 만고풍상을 겪어 온 반구대포수들은 밀려오는 벅찬 가슴을 가누질 못했다. 정든 땅, 정든 사람들을 두고 북방으로 떠나온 지 어언 두 달여.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세월 동안 겪은 외로움이 사무쳤다. 두만강을 내려다보던 소리꾼 장도영이 구슬피 읊었다. 

 

▲ ⓒ문정훈 화가

“두만강아, 내가 왔다. 두만강 모래알아, 내가 왔다. 백두 금강 태백은 슬픔으로 섰고, 두만강 물결에 뿌린 눈물 서럽기도 하구나. 가련한 조선도 저와 같이 정령 저문단 말이냐.” 


긴 한숨은 샛강의 메아리로 퍼졌다. 반구대포수들은 이젠 돌아가지 못할 강을 건너는구나하고 속으로 뇌었다. 


무산과 회령 사이의 두만강 국경 접경지는 경계가 삼엄했다. 권취문은 몸에 지닌 지도를 폈다. 무산에서 두만강 월경 통로는 두 곳이었다. 무산읍에서 대청제국 남평진으로 가는 세관 통로와 숭선(古城里島)으로 가는 협곡 지천이다. 그러나 왜제병군 수비대 국경초소가 지키고 있었다. 아무래도 겹겹이 에워싼 왜제병군의 경계망을 뚫기란 무리였다. 회령은 교통의 요지였다. 회령읍성에서는 두만강 최북단에 있는 온성, 경흥으로 연결되는 길 그리고 회령 외곽 오산덕에서 영산, 청진읍을 거쳐 경성과 원산으로 가는 길이 있었다. 좀 더 북진해 경계가 허술한 접경지를 노리기로 했다. 별동대들은 회령 내륙을 향해 북진했다. 두만강 대안 길은 적에게 노출될 수 있어 다시 첩첩산중을 택했다. 그동안 권취문은 이동하는 내내 지도에 이동로를 표기해 왔다. 우마도로나 보행길, 왜병수비대가 지키는 길도 낱낱이 표기했다. 후일 무기수송과 국내진공작전에 쓰일 귀중한 지도가 한 치 오차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만약 왜병에게 생포된다면 독극물과 함께 이 지도를 입안에 삼켜 자결할 생각이었다. 


무인지경 삼나무골에 들어섰다. 언덕바지에 자리 잡은 외딴 포수막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회령 토착포수들이 이용하는 포수막이었다. 남이 보기에는 토착포수로 위장했지만 사실은 내통한 월경자를 두만강 너머로 은밀히 안내하는 의병포수들이었다. 그들과 친분이 있는 강두래가 포수막으로 내려갔다. 산막살이에 외로움을 탄 개가 짖어댔다. 남녘 진돗개보다는 덩치가 큰 편인 풍산개였다. 숲속에 몸을 숨긴 권취문과 별동대 대원들이 개울을 건너는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포수막 사내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강두래가 숲속에 숨어 있는 권취문에게 손짓을 했다. 무장한 권취문 혼자 포수막으로 내려갔다. 산속에서 내려오는 권취문을 본 포수막 사내가 다가왔다. 긴 수염에 육척 거구 윤장수였다.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았다. 박장수는 패잔병이나 다름없는 권취문을 보곤 놀라 했다. 피골상접한 얼굴은 당당한 대한제국 무관장교의 모습이 아닌 상거지였다. 윤장수 역시 예전의 조선무관 취재관이 아니긴 매한가지였다. 그러나 날카로운 눈빛만은 여전했다. 


“무사했군.”


“산에 숨어 투쟁하는 나야 파리 목숨 아닌가.” 


윤장수가 동료 포수를 인사시켰다. 햇볕에 그린 얼굴은 최북단 경원 녹야 출신의 직업포수 유가였다. 강두래가 신호를 보내자 이곳저곳에 몸을 숨기고 있던 대원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조선병대 함북육진 취재관(取才官)이었던 윤장수가 의병포수가 된 것은 1905년 의병장 유인석이 이끄는 을미의병에 뛰어들면서부터였다. 어릴 때부터 백두산을 드나들었던 그는 을사늑약 때 간도와 연해주를 출입했다. 국경을 넘나들면서 무기를 반납받으러 출동한 왜제병군들과 항전이 벌어지면서 쫓기던 윤장수는 이곳으로 숨어들었다.
 

▲ ⓒ문정훈 화가

삼나무골 포수막

포수막은 혹독한 겨울에도 견디도록 반쯤 땅에 묻혀 있었다. 통나무 흙으로 얼기설기 엮은 처마 밑에는 토막 낸 장작들이 쌓였다. 내부는 서너 명이 겨우 들어갈 협소한 공간이었다. 두 개의 나무침대와 식탁 너머로 봉창이 나 있었고, 통나무 벽에는 짐승 뿔 장식이 걸렸다. 난방 겸 취사용 부뚜막에서는 훈기가 느껴졌고, 검은담비 사냥에 쓸 올무가 바닥에 놓였다. 별동대 대원들은 숲속에 은신처를 마련했다. 윤장수가 땅속 저장고에 넣어둔 말사슴 고기를 내왔다. 녹야포수는 산지에서 켜놓은 산나물과 귀한 산삼을 내놓았다. 


“백두산이 키운 밥상이군.” 


“산삼, 옹담, 녹용은 백두산 3대 명약이지. 여기 흐르는 개울물도 산삼 썩은 약수 물이요. 먹음직스러운 고기에 백두산 산삼으로 우려낸 뜨끈한 육수 실컷 드시오.” 


허기진 대원들은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배를 채운 대원들은 모처럼 두 다리를 뻗었다. 대원들은 돌아가며 파수경계를 섰다. 


무인지경의 산협에 어둠이 찾아왔다. 북지의 고산지대 밤 기온은 차가웠다. 우거진 삼나무들은 둥근 보름달을 오르는 긴 사다리처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뻗었다. 포수막에서 나온 권취문이 고고한 달빛 아래서 곰방대를 물고 있는 윤장수를 보곤 다가갔다. 권취문의 허리춤에 찬 금속 빛 권총과 군용 칼이 번쩍거렸다. 권취문은 윤장수에게 두만강 월경 안내를 청했다.


“나야 뭐, 딸린 피붙이라곤 없는 홀몸 신세니 내일이라도 나서면 그만이네.”


폭도로 낙인찍힌 그의 식솔들은 왜병수비대에게 처참한 죽임을 당했고, 살아남은 아들은 노령으로 피신해 있었다. 동료 녹야포수 역시 비슷한 처지였다. 


“탈출로는 어디가 좋겠는가?”


“두만강 오백 리 죄다 목숨 걸어야 하네.”


“경흥 회룡봉은 어떤가? 가을 수확 때 자네와 가 본 적이 있었지.” 


“워낙 왜병수비대 경계가 엄한 데라 장담 못 하네……. 거기다 밤낮없이 설치는 맹수들도 복병이고.” 


윤장수의 말을 듣고 있던 권취문 표정이 삼나무 껍질처럼 굳어졌다. 오던 중에 곰에게 희생당한 동무가 떠올랐던 것이다. 


“나도 알지. 인간이 근접할 수 없는 험지 중 험지에다,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이번 자네 일이 목숨을 걸 만큼 중한가?”


주변을 살핀 권취문이 윤장수 가까이로 바짝 다가갔다.


“한시가 급하네. 북청 홍범도가 봉기했네.”


“모병한다는 소문은 들었네만.”


“산골 산포수들 혈기만으론 안 되는 건 자네도 알지 않는가. 총 없이 무슨 전투를 하겠나. 총기 보급이 최우선이지. 연추에서 무기공급을 해준다면 막강한 군대가 될 것이네.” 


“홍범도와 연합전략을 짜려는 건가?” 


눈치 빠른 윤포수의 눈빛에 서릿발이 섰다. 


“그렇다네. 홍범도 막강한 의병은 의병 중에서 최강이라네. 조국독립을 위해서는 홍대장과 합세해 먼저 관북지역부터 접수해야 한다는 생각이네. 우린 홍범도 의병들을 무장시켜 국내진공연합작전을 펼칠 계획이네.”


만사에 완벽을 기울이는 권취문이 국내진공작전을 입에 올렸다. 윤장수는 쌈지에든 연초를 말았다. 권취문이 물고 있던 곤방대의 연초 불씨를 건넸다. 연초를 빨아 당기자 불씨가 살아났다.


“무기 공급처는?”


권취문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 연추에서 활약하는 연추동의군 지휘부에는 조선무관 동기인 전준인의 친형이 도의장으로 있었다. 지휘부와 무기공급을 도모한다면 가능한 일이었다. 노일전쟁 당시에 사용하던 노국 퇴역군의 폐총이나 마적(馬賊)들이 쓰던 총기 불하(拂下)나 매입을 교섭해볼 만했다. 노국군 총기의 주종인 노국제 5연발, 14연발총은 홍범도 의병에 비해 전력이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었다. 연해주에서는 마적 떼 습격에 대비해 총기의 민간인 소유를 공인하고 있었다. 총기·탄약의 매매도 원래 허가제였으나 연추에서는 사실상 자유로이 매매됐다. 따라서 연추동의군과 결집하면 패전 노국 퇴역군인들로부터 저가로 무기와 장비를 구입하거나 그곳 조선인 사회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 ⓒ문정훈 화가

배성동 시민기자, 소설가

※ 이 글과 삽화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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