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북육진

배성동 시민/소설가 / 기사승인 : 2021-07-19 00: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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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범 망명 보고서(14)

▲ ©문정훈 화가


회령 보을하진(甫乙下鎭)

정찰 나갔던 두 토착포수가 돌아왔다. 오던 중에 역마포수와 벼락틀포수, 매사냥꾼 응방을 만났으나 서로 못 본 체했다. 별동대는 두 토착포수 안내를 받으며 잠행에 돌입했다. 20리 떨어진 고령진(高嶺鎭), 30리 방원진(防垣鎭)을 지나 50리 밖에 있는 볼하진(乶下鎭) 기슭에 들어섰다. 볼하진은 조선병대 회령부 행영 아래 위치해 보을하진(甫乙下鎭)으로도 불렸다. 보을하진은 무관급제한 권취문이 신흥 장교로 첫 부임한 병영이었다. 이후 종성, 온성, 경원, 경흥, 부령 등 관북육진을 두루 복무했던 권취문은 두만강 일대를 비교적 잘 아는 남방 장교였다. 후방 출신의 무관이 장교로 부임하게 되면 두만강 최북단 복무는 필수였다. 무과에 급제한 그해, 조선 남방 끝자락에 있는 언양 고을을 출발해 회령에 이른 부방 길은 총 60일이 걸렸다. 경북 의성에서 점고를 받은 다음, 청송, 진보를 거쳐 동해안 육로를 따라 북상, 함흥에 도착해 함흥관찰사로부터 1차 점고를 받았고, 함경도 회령부 행영 북병사로부터 최종 점고를 받아 이곳 보을하진 병마절도사병영에서 부방생활을 시작했다. 


회령(回嶺)은 이름 그대로 두만강 물굽이가 휘도는 하곡령이다. 강 하나를 두고 이쪽은 조선이요 강 건너는 대청제국 땅이다. 


“두만강 너머는 청나라 봉금 땅입니다. 그쪽으로 이주하는 조선 동포들은 주로 회령이나 종성을 건너다녔지요.”


권취문과 단짝이 된 윤장수가 누군가 놓은 연기 불을 보고 말했다. 굽이도는 두만강 물길 따라 형성된 언덕 평원과 산하는 생각보다 황량했다. 조선 대안은 화전을 일군 다랑이밭인 반면에 청나라 대안 대부분은 황량한 갈대밭이다. 


“보시다시피 지금은 철통같은 일본군 국경수비대가 막고 있소. 내 생각으로는 조선 뗏꾼을 사서 몰래 야밤 월경 시도하면 어떨까 하오.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고생스럽더라도 경원으로 치고 올라가야 하오.” 


무산이나 회령, 종성 대안에서 월경하면 곧장 장백산이나 길림성으로 숨어들 수 있었지만, 그게 만만치 않았다. 만약 일본군 수비대에 발각돼 교전이 벌어지면 죽음을 각오해야 했다. 더구나 곳곳에 잠복한 일본군 척후병과 도처에 깔린 끄나풀들의 눈을 피하기란 쉽지 않았다. 설령 무사히 월경한다고 해도 첩첩산중이다. 늑대를 피하고 나니 범을 만난다는 말이 있다. 조선에 상주하는 일본군 국경수비대를 피해 월경을 하더라도 또 다시 청나라 국경수비대와 로씨아 국경수비대를 따돌려야 한다. 


권취문은 바위틈에 몸을 숨겨 두만강 대안을 유심히 살폈다. 강폭 너비가 약 50~60미터 남짓, 생각보다 강폭이 좁아 도강은 그다지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거기다 청나라 변경은 경계도 허술한 편이었다. 이 정도면 야밤을 틈탄 월경도 시도해볼 만했다. 우선 회령 역마촌 동정부터 살피기로 했다. 북지의 지형과 기후 조건, 일본군 수비대의 위치를 잘 아는 윤장수가 역마촌으로 내려갔다. 회령 역마촌에는 월강 신청을 받는 일본군 순사지소가 있었다. 월강할 사람들을 잠재워 주는 역마촌 주막마다 강을 건너려는 도부꾼들이 모여 있었다. 이들은 조만국경을 넘나드는 도부꾼이거나 무역일꾼들이다. 두만강 회령 무산 주민들 1천 호 절반은 화전을 일구는 농사꾼이었고, 나머지는 도부꾼, 무역일꾼, 산판꾼, 사냥꾼, 금전꾼들이다. 가재도구 보퉁이를 이고 진 조선인들도 눈에 띄었다. 머리엔 짐을, 등엔 이불 보따리를, 허리엔 냄비를 차고 나타난 가족 단위였다. 


“가만히 앉아 굶어 죽느니 고되더라도 너른 봉금 땅 개척일이 나을 것 같아서 월경합니다.”


“고국 땅에서 살다 살다 못 살아서 만주 땅으로 넘어갑니다.”


조선 민초들의 하소연은 한결같았다. 나라 기강이 무너지고 세월 또한 어수선하니 지방 토호의 착취를 견디지 못한 백성 중에는 굶어 죽는 자가 속출했고, 어디에도 기댈 데 없는 민초들은 정처를 잃었다. 


“민초들이야 바람에 날리는 홀씨가 아니오. 가고 싶은 데로 가야죠. 홀씨로 흩어져 각처로 떠돌다 보면 산 입에 풀칠이야 하지 않겠소.”


입 발린 말을 하면서도 속내는 유리걸식이라도 면하길 바라는 심정이었다. 


윤장수는 순사지소 동정을 살핀 후 나루로 갔다. 나루터에는 뗏목꾼들이 몰고 내려온 통나무들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뗏목꾼들은 통나무 서른 개를 물에 띄워 내려오면서 뗏목 위에서 밥을 해 먹곤 한다. 윤장수는 뱃전으로 갔다. 평소 터놓고 지내던 뱃사공 영감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코빼기도 볼 수 없었다. 크고 작은 배가 열댓 척 있었고, 뗏목꾼인지 사공인지 알 수 없는 장정 몇이가 뱃전에서 노닥거렸다. 두만강 대안을 어슬렁거리는 자들은 월경자를 감시하던 첩자들일 수도 있다. 마침 뱃전에서 걸어 나오는 장정이 있었다. 


“오늘 물때는 어떻소?”


땡볕에 그을린 얼굴에 흉터가 있는 사내였다. 사내는 두런두런 곧잘 맞장구를 놓았다. 오늘 밤은 물때가 좋고, 마침 순사지소 군경들도 훈련 나가 홀가분하다는 것이었다. 월경법을 어겨가며 재미 보는 밀대꾼 같아 보였다. 밀대꾼이라면 엽전 다섯 냥에 물속 십 리를 마다 않는 악바리들이다. 윤장수는 놓친 조선범을 쫓아야 한다며 조심스럽게 월경 뱃삯을 흥정했다. 


“몇이요?”


“여럿 되오.”


윤장수는 딱히 밝히지 않고 두루뭉수리 말했다.


“이크, 불칼들이군.”


눈치 빠른 밀대꾼이 낌새를 채곤 윤장수를 훑어보았다. 


“위험수당만 톡톡히 준다면야 배 띄울 수 있지…….”


이수에 밝은 밀대꾼이 치고 나왔다.


“기회가 왔을 때 건너시오. 마침 왜놈 순사들도 훈련 나가고 경비가 허술하오.”


“얼마면 되겠소?”


“몰래 월강하려면 우리도 모가지 내놓고 하는 일이니 위험수당 포함해서 한 번 배 띄우는 데 4원씩 내.”
흥정 끝에 3원씩 하기로 하고, 도강 시각은 자정을 전후한 야삼경으로 정했다.

 

▲ ©문정훈 화가

 


끝 모를 층층따비길


별동대가 은신해 있는 비밀 요새로 돌아온 윤장수가 동정보고를 했다. 


“밀대꾼이라 못 믿었어.”


수차례 청나라를 드나들었던 강두래가 밀대꾼 사공을 의심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강두래의 촉대로 밀대꾼은 일본군 순사가 쳐놓은 첩자였다. 


아니나 다를까 첩보를 입수한 일본군 경비대에 비상이 걸렸다. 별동대는 즉시 함북지맥 산자락을 타고 피신했다. 설상가상으로 별동대를 목격한 첩자가 일본군 종성경비대에도 알렸다. 회령경비대와 종성경비대가 추적하는 줄 모른 채 이동하던 별동대가 좁혀오는 척후병 포위망을 알아차렸다. 그러자 윤장수와 녹야포수를 이중첩자로 의심하는 대원도 있었다. 쫓기는 별동대들의 분조가 불가피했다. 이럴 땐 마늘쪽 산봉우리를 비호처럼 파고들어 치고 빠지는 게릴라전술이 최적이었다. 별동대 대원들 죄다 내로라하는 무쇠다리들이었다. 별동대는 헤어졌다. 천리마 소리를 듣는 김문술이 이끄는 북청산포수들은 노령과 마주한 두만강 하구 조산리 방향으로 길을 잡고, 길라잡이 윤장수가 이끄는 반구대포수들은 함북 경원 신아산으로 이동했다. 일본군 수비대의 경계만 뚫는다면 도문 화룡봉을 거쳐 곧장 노령 땅에 감쪽같이 숨어들 수 있었다. 


산길은 갈수록 험해져 반나절 행군에 겨우 10리를 갔다. 큰비로 물이 불어 건널 수 없는 데가 많아 무척 더뎠다. 끝 모를 층층따비길에 들어선 대원들은 녹초가 됐다. 중간에 있었던 척후병과 교전으로 눈에는 핏발이 섰다. 몇 날 며칠을 이슬 피해 걸어온 별동대 대원들은 이끼가 듬성듬성한 바위 지대에서 잠시 쉬었다. 쉬는 중에도 산포수들은 주변 파수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발을 다친 사금부리가 곰 털가죽으로 감싼 발을 자주 만지작거렸다. 부상자는 장도영이 치다꺼리했다. 장도영은 포수라기보단 한의에 가까운 심마니였는데, 이번 별동대에서 군의 역할을 해냈다. 그는 밀양 얼음골 동의굴에 들어가 동의보감을 통달했고, 본초강목에도 밝았다. 


이끼바위에 기댄 권취문은 빼곡한 삼나무 사이로 알머리를 드러낸 마늘쪽 봉우리들을 굽어보았다. 자신이 나고 자란 가지산 산군이 높다지만 함북줄기에 비긴다면 호랑이 뼈대 저리가라였다. 대낮에도 어두컴컴한 원시림에는 삼나무, 가문비나무, 잣나무, 자작나무, 아름드리 소나무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뻗었고, 발걸음 놓는 데마다 새들이 따라다니며 지저귀었다. 파수를 서던 별동대원이 숲속 진흙에서 줄범 발자국을 발견했다. 조선포수들뿐만 아니라 만주족 포수도 겁을 내는 백두산 줄범이었다. 


권취문이 백수의 제왕 범을 처음 포획한 것은 경흥 녹야 산중이었다. 경흥부 병마절도사병영에서 정교(正校)로 부방생활할 당시 병졸들과 변경을 수색하던 중에 산중 대호를 만났다. 종성 70리, 경원 40리쯤 떨어진 곳이었으니 아마 지금 있는 인근이지 싶었다. 청국, 노국과 이웃한 경원 녹야는 만주범과 시베리아범이 드나드는 길목이다. 비호처럼 달려드는 대호에게 말 한 필이 희생되고, 병졸 한 명이 팔에 부상을 당했다. 그때 녹야 토착포수들이 아니었다면 희생이 더 있을 뻔했다. 말의 목을 문 대호가 눈에 불을 철철 흘리며 쏘아보았다. 가까이 오면 너희들 목도 아작 내겠다. 그때 나타난 녹야포수는 말의 목을 물고 있는 대호를 향해 “불 받아라!” 고래고함을 치며 화승총을 쏘았다. 노련한 녹야포수는 말이 맞을까 싶어 정조준은 하지 않아 빗나갔지만 다행히 놀란 대호는 만주로 달아났다.  

 

▲ 백두산지역지도

배성동 시민기자 / 소설가

 

※ 이 글과 삽화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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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성동 시민/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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