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 철학] 먹을거리의 맛과 영양 - 악몽 같은 텃밭 낙원으로 바꾸기(7)

이근우 시민, 농부 / 기사승인 : 2022-05-16 00: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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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을 여러 해 일구고 있는 분이 제게 묻더군요. “마트에서 산 곱슬겨자는 왜 특유의 매운맛이 전혀 없죠? 내 밭에 기른 건 코를 쏠 정도로 매운데요.” 저는 간단히 생산량의 차이라고 답했습니다. 사실은 간단치 않은 주제이지만, 재배환경에서 비롯되는 결과여서 과정은 생략하였습니다. “농민들도 그런 걸 잘 알 텐데요?” 그분의 덧붙이는 의문에 저는 그저 웃고 말았습니다. 농산물의 맛과 영양, 다시 말해 농산물의 품질은 우리나라 농업의 총체적 과정에서 결정된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니거니와 높은 품질의 농산물 생산조건을 명쾌하게 말하기도 어려워 그랬습니다.


아내와 제가 여러 해 농사를 지으며 내걸고 있는 구호는 ‘고유의 특성이 최대한 살아있는 작물 생산’입니다. 자연스럽게 그에 걸맞은 생산방식을 정립하려고 애쓰고 있는데요. 농사 초기는 물론 지금까지도 믿음과 사실의 모호한 경계에서 방황할 때가 많습니다. 작물의 ‘고유한 특성’의 발현의 기초는 친환경 농법입니다.(워낙 갈래가 많습니다만, 환경친화적 방법론을 포괄적으로 친환경이라고 지칭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친환경적 생산방식의 밑바탕에는 ‘생산’이라는 반환경적 전제가 깔려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반환경적이라는 표현은 환경 훼손이라기보다는 식물의 의지에 반하는 활동이라는 뜻입니다. 농업의 역사는 ‘식물의 의지에 반하는 활동’을 계속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는 노력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 노력의 결정판이 이른바 녹색혁명입니다.

 

품종개량, 화학비료, 살충제와 제초제 등 과학적 방법론이 농업에 적용됨으로써 식량 생산량이 이전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증대된 결과를 녹색혁명이라고 일컫습니다. ‘식물의 의지에 반하는 활동’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거스를 수 없는 식량 생산의 기반이 되었음을 부정할 수도 없는 현실입니다. 어쩌면 친환경 농업의 미래를 꿈꾸는 이들조차도 이 기반이 없고서야 미래의 먹을거리 확보를 장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부부는 물론 많은 농업인이 친환경을 외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고랑에 심은 보리가 고추밭 환경을 좋게 해줍니다.

텃밭 작물의 건강한 생장 조건

‘식물의 의지에 반하는 활동’이 농사라고 말씀드렸는데, 조금 더 설명하겠습니다. 농사는 ‘의지’에는 반하지만, ‘식물’의 특성에는 집중해야만 합니다. 식물의 생존 조건과 방식에 기초하여 그 ‘의지’에 반해 유용한 것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 식물로부터 더 많은 양과 맛, 그리고 영양을 획득하려는 것입니다. 빤한 말씀입니다만, 녹색혁명 과정에서 ‘식물의 특성’을 이해하는 데에 소홀했던 점이 바로 이 점입니다. 식물의 생존 조건과 방식을 기술에 종속시킴으로써 작물의 전반적인 변용을 가져온 것입니다. 양에 집착하다가 맛과 영양이라는 핵심을 놓친 셈입니다.


그런데 농업 기술에 대한 과학적 발전의 또 다른 측면은 진단입니다. 식물의 고유한 속성에 대한 연구결과로 우리는 많은 것을 알아냈습니다. 생장과 영양의 관계뿐 아니라 병해충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확보한 것이죠. 이러한 진단을 토대로 이뤄낸 해결책이 다소 단선적이라는 점은 있으나 진단 자체의 중요성을 훼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를 기초로 맛과 영양, 그리고 생산성, 경제성마저 확보하는 텃밭경영을 살펴보겠습니다.

온, 습도, 그리고 햇볕

식물은 온도와 습도 유지에 사활을 걸며 진화했습니다. 종류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겠으나 적정 온도와 습도는 생존의 절대 조건입니다. 우리 밭에 심은 작물들이 가장 좋아하는 온도는 15~25도 정도이고, 습도는 70~90%입니다. 더불어 이 조건을 만족한다 해도 이 범위가 급격하게 변하는 것은 싫어합니다. 이 적정성을 벗어나 격변한다면 생존 자체가 위협받게 됩니다.


날씨를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는 노릇이니 다른 방편으로 이 조건을 최대한 충족시켜 주어야 농사가 잘 될 것입니다. 자연생태계는 이를 스스로 해결합니다. 나무는 낙엽으로, 풀은 맨땅이 안 드러나게 촘촘하게 자라며 그리 합니다. 덮개입니다. 그리고 스스로가 그늘막이 되어 직사광선으로부터 온, 습도가 변하는 것을 막습니다. 농업에서는 이를 많은 단점이 있음에도 비닐을 통해 해결했습니다.


덮개는 온, 습도 유지와 강렬한 햇볕 차단의 최선책입니다. 특히 작물을 심은 초기에는 무조건 맨땅을 피해야 합니다. 맨땅은 작물에 사막이나 다름없습니다. 유기물을 활용하거나 아예 덮개용 작물을 함께 기르는 것도 훌륭한 방법입니다.
 

▲ 토마토밭의 낙엽 덮개



만약 성공적인 덮개를 확보했다면 물 공급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그 정도에 따라 물 공급을 하지 않아도 되는 행복한 환경을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자연과 다르게 농사에서 물 공급은 필수입니다. 작물의 생존이 아니라 생산이 목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밭이 맨땅인 상태에서 물 주기는 최악입니다. 작물의 갈증을 해소하기는커녕 토양을 단단하게 굳게 만들어 상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입니다. 덮개가 비닐일 때에는 작물에 직접 주기보다는 옆에 구멍을 내서 주는 것이 좋습니다. 덮개가 유기물이면 어떻게 주어도 상관없습니다. 새벽이나 초저녁에 주는 것이 좋고, 토양을 몇 군데 파보아 상태를 확인한 다음 물 주기를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습관적으로 주는 것은 나쁜 습관입니다.

영양

화학비료와 천연비료는 양과 질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화학비료는 특정 영양에 대해 강력합니다. 천연비료는 대개 여러 영양에 대해 덜 강력합니다. 더 큰 차이는 작물의 흡수력인데 화학비료는 즉각적으로 흡수됩니다. 예를 들어 요소 비료의 효과는 이삼일이면 효과가 나타납니다. 질소 함량이 높은 오줌이나 깻묵액비는 그보다 훨씬 더딥니다. 그래서 화학비료가 더 좋을까요? 아닙니다. 작물이 필요량 이상의 영양을 흡수하게 되어 기대하지 않던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천연비료는 대체로 작물의 흡수 속도가 더디기에 이상 현상이 일어나는 경우가 드뭅니다. 이에 착안하여 친환경 농사가 아니면서도 부분적으로 천연비료를 채택하는 농가가 최근 많이 늘고 있습니다. 천연비료가 작물의 건강과 맛에 이바지하기 때문입니다. 또 화학비료도 서서히 녹아 작물의 과식을 막아주는 형태로 나오고 있습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작물에 영양을 급하게 많이 주는 것은 이롭지 않습니다. 밑거름은 퇴비로 하고 필요한 양분은 작물의 성장을 보아가며 조금씩 자주 주는 것이 좋습니다.


주의할 점은 고온 건조기에는 작물이 생장을 거의 멈추게 되는데 이때 조급하게 영양을 계속 공급하면 나중에 영양 과잉으로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영양을 함께 섞어 물 공급을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 액비에 피어난 미생물



자신의 텃밭에 나온 작물은 대체로 맛있습니다. 직접 길렀다는 자부심과 갓 딴 데서 나오는 신선함 때문에 일단 그렇습니다. 이런 점에서 나아가 작물 고유의 특성이 활활 살아나는 오묘한 맛은 친환경 유기농법에서 더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농법에 대한 믿음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러한 농법인데도 얼마든지 작물의 품질저하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같은 조건이라면 물과 양분이 조금 부족한 상태에서 모든 작물의 맛이 살아납니다. 조금 부족한 상태를 설명하자면 또 다른 글이 필요하겠습니다. 다만 여기서는 과유불급이라는 선문답으로 대신하겠습니다.

 

▲ 채소밭의 신문지+쇠뜨기 덮개

이근우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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