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에 핀 진달래

김윤경 글 쓰는 엄마 / 기사승인 : 2021-04-12 00: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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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일기

엄마와 바람 쐬러 통도사에 다녀왔다. 자연풍경을 좋아하는 엄마에게 취향 저격이다. 키 높은 소나무들이 길 양쪽으로 드리워져 장관이다. 지저귀는 새소리와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겹치니 머리가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다. 계곡물은 또 어찌나 맑은지. 한 쌍의 오리가 노닐고 있다. 군데군데 피어있는 봄꽃들에 눈길도 발걸음도 멈춘다. 봄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우산이 없지만 괜찮다. 기꺼이 젖어준다는 마음으로 걷는다. 그러다 빗방울이 굵어지면 처마 밑에서 기다린다. 건축물의 곡선과 맞닿은 산과 하늘에 내 눈높이도 맞춰 본다. 


고즈넉하고 편안한 절 풍경에 심취해 있다 보니 교회가 생각난다. 내가 다니는 교회는 도심에 있는 콘크리트 건물이다. 빨간 십자가가 달려있어 위로 높다. 엘리베이터가 지하에서 4층까지 이어져 있다. 직선과 직선의 만남이다. 그에 비해 절은 아담한 돌계단만 몇 칸 올라가면 된다. 희끗희끗 바랜 탱화, 때 묻은 돌, 갈라진 나무 기둥에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고개를 돌리다 보면 꽃나무와 이내 눈이 마주친다. 엄마가 꽃을 찍는다. 나는 꽃을 찍는 엄마를 찍는다. 


엄마가 앞서 걷다가 우리 가족과 거리가 제법 벌어졌다. 계곡물을 내려다보는 할머니를 멀찍이 보면서 큰애가 내게 묻는다. “엄마, 할머니가 할아버지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아이의 동심은 동심일 뿐, 지난 결혼 생활을 지옥에 비유하는 할머니의 속사정을 손주는 모른다. 할머니가 손주의 동심을 들었다면 콧방귀를 뀌었을 테다. 자식으로서 애석하다. 


아빠가 돌아 가신지 반년이 흘렀다. 애들이 이따금 할아버지를 찾는다. 아빠의 임종 장면이 떠오른다. 나는 걸어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한다. ‘엄마의 임종도 내가 지킬 것 같은데? 내 임종은 누가 지킬까? 태어난 순으로 치면 작은애가 되려나? 불의의 사고로 죽는다면 가족이 곁에 없을 수도 있겠구나.’ 


아빠의 죽음을 체험했기에 내게 죽음은 멀리 있지 않다. 어떻게 죽고 싶은지, 어디에 묻히고 싶은지, 추모는 어떤 식으로 해줄지 등 생전에 나누면 좋겠다. 아빠는 할머니 무덤 밑에 묻히고 싶다는 말만 남기고 가셨다. 병실에서도 죽음에 대해 나누지 못했다. 아픈 아빠에게 죽음을 준비하자고 말할 용기가 안 났다. 아빠는 당뇨가 약만 잘 먹으면 되는 줄 알았다며 뒤늦게 후회하셨다. 병원 신세 진 걸 눈 감을 때까지 부담스러워하셨다. 


명성교회 목사님을 좋아했던 아빠가 몇 년 전에 교회 세습을 보고 크게 실망하셨다. 아침마다 성경 읽고 기도하고 찬송 부르던 아빠가 교회를 끊었다. 아빠의 목숨이 위태롭다는 걸 알았을 때 마지막 예배를 드리자고 했지만 대답이 없으셨다. 기독교 장례로 치렀고 추모도 가정예배로 하고 있다. 명절에 제사상은 안 차리지만 아빠가 좋아했던 음식을 가족과 나눠 먹는다. 무덤에 찾아갈 때도 오징어땅콩 과자와 딸기를 준비해간다. 아빠가 좋아하겠지 짐작만 될 뿐이다. 생전에 이런 얘기를 나눌 걸 아쉽다. 


더 걷기 힘들어하는 애들은 남편이 데리고 있고 나는 앞서 걷던 엄마를 따라잡았다. 여전히 엄마는 자주 아빠 얘기를 꺼낸다. 조금도 줄지 않았다. 아빠가 생전에 좋아했던 것들을 엄마는 잘 찾아낸다. 아빠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좋은 것을 보면 아빠가 그립다. 진달래가 피었다며 꽃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던 아빠다. 진달래를 통해 아빠가 봄이 왔다고 알려준다. 아빠는 갔지만 가지 않았다. 드문드문 이곳저곳에 남아 있다. 


김윤경 글 쓰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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