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단발이 可한가 否한가

백승아 기억과기록 회원 / 기사승인 : 2021-08-09 00: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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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기록

1929년의 조선 남녀의 토론

“남녀토론 여자단발이 가(可)한가 부(否)한가.”


1929년 1월 1일 잡지 <별건곤> 신년특별호에 실린 글이다. 여성의 짧은 머리가 여전히 대상화되고 있는 2021년의 대한민국을 겪으며 1929년의 토론을 다시 읽어본다. 토론회는 찬성과 반대편에 각각 여성, 남성 연사가 한 명씩 나와 모두 네 사람이 연설하는 방식이었다. 먼저 찬성편에 머리를 짧게 자른 여성운동가, 김활란의 연설이 있었다. 그는 단발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위생상으로 좋다, 외모를 단장하는 시간낭비를 줄일 수 있다, 보기에 아름답다, 남녀 간의 구별과 미혼여자와 기혼여자 간의 구별을 없앨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에 대해 반대편에서는 쪽진 머리의 여성운동가 정종명이 나섰다. 정종명은 “내가 단발을 반대하는 것은 결코 케케묵은 옛날의 도덕관념이나 습관을 가지고서 머리털을 무슨 부모의 유체이니까 깎을 수가 없다든지 선왕의 예법이 아니니까 깎을 수가 없다든지 하는 말은 아니올시다”라며 연설을 시작한다. 그는 여성운동가로서 조선의 일반여성들과 소통해야 하는데, 여성운동가들이 먼저 머리를 자른다면 ‘아주 딴 세계의 사람’처럼 보이고 거리가 멀어지게 돼 소통이 어렵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위생상의 이유나 경제상의 이유에 대해 장발이나 단발이나 ‘자기가 하기에 달렸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조선의 환경이 특수한 까닭에 변장할 일도 있고 변장하고 도망할 일도 있는데 단발을 하면 눈에 띄어 어려움이 있다고도 말한다. 김활란과 정종명 모두 자신의 필요에 따라 머리를 자르는 것과 자르지 않는 것의 이유를 설명하는 주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단발에 대한 의견은 다르지만, 여성의 신체를 대상화하는 것에 반대하고 여성과 남성의 평등을 주장하는 여성해방 운동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이어지는 남성연사들의 주장도 살펴보자. 찬성편의 박사직은 시대의 변천과 생활양식의 변화는 필연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남자들이 양복을 입는 것도 옛 제도를 깨트리고라도 이로운 점이 있기 때문에 선택한 것처럼 여자의 단발이라는 것도 미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얻는 이점이 있는 새로운 생활양식이라고 주장한다. 한편, 반대편의 김병준은 새로운 풍조라고 다 좋고 옳은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여자가 머리를 깎는다면 그만한 무슨 위대한 결심과 굳은 마음이 있어야 할 것”인데 머리를 자르는 여성들에게는 그런 굳은 마음이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는 “여성의 미(美)는 머리에 있다”, “조선 여성들이 머리 빗는 시간까지 경제를 해서 무슨 큰일을 할 것 같습니까. 좀 부지런하면 될 것이지”, “아무리 남녀평등이 되었다고 여자가 남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또 “여성의 특징을 잃지 말고 외관에 있어서만 남달리 차리지 말고 내적 충실에 힘쓰라”고 충고한다. 전에 단발했던 여성 중에 다시 장발로 되돌아온 사람들을 생각이 깊다고 치켜세우며 “만약 단발이 하고 싶거든 미국이나 중국으로 가시오. 그리고 조선으로 돌아올 때는 다시 길러 가지고 오시기를 바랍니다”라고 연설을 마쳤다. 청중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90여 년 전 토론회의 말들이 낯설지가 않다. 2021년의 대한민국에서도 김활란처럼 여성운동의 하나의 표현으로 머리를 짧게 자르기도 하고, 정종명처럼 자기가 대변하고자 하는 이들과 같은 모습을 함으로써 그들과 연대함을 표현하기도 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김활란과 정종명처럼 여성운동가가 아니어도 많은 여성이 ‘편해서’ ‘나한테 잘 어울려서’ ‘해보고 싶어서’ 등 다양한 이유로 머리를 짧게 자른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여성의 단발에 굳이 이유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 여성의 단발(斷髮)은 더 이상 문젯거리도 토론거리도 아니라는 것이다. 


한편 남성 토론자 박사직과 김병준의 말 역시 낯설지가 않다. 시대의 변화, 사회의 진보로서 여성운동을 이해하고 함께 연대하는 남성들이 있는가 하면, 공론의 장에서 혐오의 말을 당당하게 외치고도 박수를 받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혐오의 말을 토론회 연단 위에 세워주지 않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리고 더 많은 박수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혐오를 바탕으로 하는 발언과 행동들이 ‘논쟁’, ‘논란’, ‘갈등’ 등의 말로 포장돼 공론의 장으로 슬며시 들어오지 않도록 우리가 함께 맞서야 할 ‘폭력’과 ‘학대’로 규정되고 있는 것이다. 


백승아 기억과기록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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