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유학의 거장들>을 읽고

김수복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인문강사 / 기사승인 : 2021-06-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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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조선 유학”. 이 단어에서는 ‘양반, 사대주의, 갑갑함, 유물, 고리타분함, 당쟁…’ 등의 부정적인 느낌부터 떠오른다. 조선 유학에 대한 이런 선입견의 원인이 어디에 있든지 말이다. 한형조가 지은 <조선 유학의 거장들>은 조선의 유학을 16세기부터 20세기까지 한 세기씩 분류해 전체적인 흐름과 그 시대 유학의 거장들이 주장했던 핵심적인 사유 세계를 개략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개략적인 설명이긴 하지만 핵심을 비껴가지는 않는다. 한형조는 유서 깊은 학통이나 가문과 관련이 없으며, 거의 ‘인디’로 한학을 공부했다고 자신을 소개한다. 그의 글에서 전통적이거나 보수적이지 않은 신선함이 느껴진다. 막혀 있지 않고 뚫려 있다.


16세기 편에는 ‘백화(百花)의 정원’이라는 제목으로 율곡 이이, 퇴계 이황, 남명 조식의 사유 세계를 풀어낸다. 열여섯에 금강산으로 입산한 율곡이 유교적 진리에 대한 실존적 자각으로 1년여 만에 하산한 것을 ‘청년 율곡과 어느 노승과의 대화’에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율곡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적극적 ‘학문’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율곡의 과제는 투명한 공적 자아로, 사태의 원리를 탐구하고, 그 지식을 토대로 현실을 혁신해 나가는 것이라고 정리한다. 이것을 간단히 주기론(主氣論)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퇴계는 인간에게 있어 사단(四端)과 도심(道心)은 기(氣)라는 대지적 요소의 산물이 아니라, 신적 초월적 능력이며, 그것은 칠정(七情)과 인심으로 대표되는 생리적 외형을 뚫고 돌출하는 영원의 의지라고 믿었다. 그는 세계를 주관하는 이(理)의 실질적 권능을 확인코자 했다고 한다. 이것을 간단히 주리론(主理論)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퇴계가 추만의 <천명도설>을 개정하면서 쓴 “사단(四端)은 이발(理發)이고, 칠정(七情)은 기발(氣發)이다”라는 구절에 대해, 젊은 학자 고봉 기대승이 이의를 제기함으로써 그 유명한 사단칠정론이 시작됐다고 소개한다. 이 논변은 두 사람 사이에서만 오간 것이 아니라, 조선 지식인들의 공통 화제요 철학적 주제였다. 


17세기 편에는 ‘철학적 격돌과 심화’라는 제목으로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에 대해 설명한다. 인물성동이론은 인간과 동물과 식물의 본성이 같은가 다른가에 대한 주기론와 주리론의 입장이다. 한형조는 어느 한쪽의 치우침 없이 두 측의 논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18세기 편, ‘위로부터의 개혁론’은 군주철학자 정조와 다산, 그리고 실학에 대한 내용이다. 조선의 개혁을 바랐던 철인 군주 정조가 다시 주자학을 외쳤고, 실학자 정약용은 기존 주자학을 비판하며 자신만의 이론을 주리론적 입장에서 새롭게 발견했다고 설명한다. 19세기 편에는 ‘도학의 수호자’라는 제목으로 한말의 유학이, 저항과 은둔의 성격을 띤 것은 당시 유학자들의 주기론과 주리론적 신념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한다. 


마지막 20세기 편에는 ‘지구 공동체를 향한 꿈’이라는 제목으로 최한기에 대해 많은 부문을 할애해 설명하고 있다. 혜강 최한기는 “현실이 경전으로 재단돼야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를 읽고 해결하기 위한 참고로서 경전이 있다”고 말하면서, 받아들여야 할 것은 경전이 아니라 자연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를 ‘철두철미한 실용주의자’로, 그의 준거는 ‘지금’에 있지 ‘과거’에 있지 않다고 강조한다. 


주자는 우주의 모든 변이와 변형 생명은 기(氣)의 자체 발현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초자연적인 신의 의지나 외부적 입법이 강제하지 않는다. “기(氣)만이 유위(有爲)하다”고 한다. 하지만 주자는 기(氣)가 자연의 전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기(氣)와 함께 그의 존재를 구성하는 또 다른 요소, 그것이 이(理)다. 이(理)는 감각적 지각의 대상이 아니라 순수 추상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이(理)는 기(氣) 속에, 자연의 사물과 현상 속에 숨 쉬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 둘은 혼동될 수 없다고 한다. “이(理)와 기(氣)는 더불어 있으면서 그러나 더불어 있지 않다. 불리부잡(不離不雜)”으로 설명한다. 이 두 명제에서 주기론(主氣論)과 주리론(主理論)으로 갈라져 조선 유학은 작은 사유의 차이는 있지만, 큰 흐름에는 변화 없이, 앞으로 나아가기보다는 순환하고 반복적이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는 조선 유학의 거장들을 철학자로 명명하는 데 왜 그렇게 인색하고 낯설어했는지 반성한다. 전통과 현대의 단절이 크다. 그 전통의 단절 사이에 일제 강점기가 있었음을 핑계로 삼아서는 안 된다. 이제 더 많이, 플라톤과 소크라테스, 토마스 아퀴나스, 칸트, 스피노자, 데카르트, 베이컨, 니체, 데리다 등 서양 철학자들을 말할 때, 조선 600년 역사의 사유 세계를 펼친, 율곡, 이황, 기대승, 정약용, 최한기 등의 우리 철학자 이름들도 같이 들릴 수 있도록 나서야 할 때다. 물론 조선의 유학이 갖는 한계도 있지만, 그 한계를 현재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가능성에 주시해야 한다. 그때가 지금이다. 연구가나 학자, 교수들이 연구한 조선 유학 관련 책들이 일반 시민들이 접할 수 있는 책들로 넘쳐나기를 기대해본다. 아니다, 그런 도서가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찾지 않아서다. 


이제 ‘조선 유학’은 ‘양반, 사대주의, 갑갑함, 유물, 고리타분함, 당쟁’ 등의 부정적인 느낌이 아니라, ‘우리 것’ ‘조선의 철학 세계를 향한 첫걸음’, ‘숨은 진주’ 등의 신선함으로 다가온다. 한형조의 <조선 유학의 거장들> 덕분이다. 그래서 이 책은 조선 철학자들의 사유 세계를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안성맞춤이다.


김수복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인문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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