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으로부터,

이은민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인문강사 / 기사승인 : 2021-08-10 00: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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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시선으로부터,>는 <보건교사 안은영>으로 유명한 작가 정세랑의 장편소설로 세상을 뜬 지 십 년이 지난 친정어머니의 제사를 하와이에서 지내려 하면서 일어나는 가족 간의 이야기와 시대의 이야기, 우리 사회의 이야기가 재미있게 나온다. 소설이 낯설어서 기대 반 설렘 반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순식간에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소설은 제목부터 다중성을 담고 있다. <시선으로부터,>는 주인공 심시선 여사의 ‘시선’과 타인의 ‘시선’, 사회의 ‘시선’ 등 여러 해석이 가능해 제목 작명도 센스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인물들의 캐릭터는 분명했고 심시선과의 추억이 깃든 이야기는 현재의 인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어린 심시선이 살았던 전쟁의 시대와 이민자로 겪어야 했던 타국에서의 삶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 누린 예술가로서의 인생 등은 흥미진진했다. 한마디로 거칠 것 없는 그녀의 치열한 이야기는 시대상과 연결돼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생각할 공간을 준다. 소설의 주요 소재로 ‘제사’가 등장하는데 제사와 얽힌 추억과 지금의 양태, 제사의 형식과 의미를 생각하게 됐다. 심시선이 살았던 삶을 통해 형식적인 제사의 탈바꿈 이야기인가 싶다가도 시선으로부터 나온 가족들의 이야기는 현재와 미래의 서사로 이어져서 이야기가 풍성했다. 


작가는 혹독한 지난 세기를 누볐던 여성 예술가가 끈질기게 살아남아 일가를 이룬 이야기 속에 예술계 내 권력의 작동 방식에 대한 소설이라고 소개한다. 아울러 한국전쟁의 민간인 학살 이야기와 지금 한국 사회를 감아 도는 따가운 혐오의 공기에 대한 긴 토로는 현실을 돌아볼 수 있게 해준다. 작가가 늘 관심을 갖고 있는 제국주의와 생태주의에 닿아 있는 부분은 친밀감과 이해를 보여준다.


심시선의 삶은 2021년의 시선으로 봐도 대한민국의 평범한 평균의 삶은 아니다. 그녀는 한 가정의 조용한 아내와는 거리가 먼 ‘사진 신부’로 미국 하와이로 건너간다. 그곳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하지만 성격이 괴팍한 예술가를 만나 그를 따라 독일로 이주해 그의 그림자로, 독일 사회의 이방인으로 정신적으로 어려운 삶을 살아낸다. 우여곡절 끝에 현지인과 결혼해 피난 오듯 한국으로 돌아와 예술 평론을 하며 삶을 이어나간다. 남편과의 사이에 3명의 자녀를 뒀지만 한국에 적응하지 못한 남편은 고향으로 떠나 돌아오지 않고 그렇게 이별하게 된다. 이후 재혼한 남자에게서 딸을 얻어 친자식처럼 키운다. 혈연으로 연결되지 않은 가족의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사회의 소수자들에 대한 열린 태도는 신선하게 보였다. 이 모든 과정에서 심시선은 좌절하지 않고 유쾌하고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는 열린 자유로운 삶을 보여준다. 


작품 속 그녀의 성격과 삶은 깊은 감동과 울림을 줬다. 타인의 비난과 사회적 편견에 전혀 개의치 않는 과감한 성격과 선택들은 대리만족이 됐고 소소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다. 나이 지긋한 계층의 깨어있는 사고방식은 젊은 세대와 편하게 통할 수 있는 필수조건으로 보인다. 가부장제에서 벗어난 진취적인 여성이 가장일 때 그 가족들이 어떤 결을 갖고 살아갈지 그려지는 대목은 앞으로 내 삶을 그릴 때 지침이 될 것 같다. 심시선으로부터 뻗어 나온 가족들은 다양한 무지개를 보는 듯하다. 시선의 성격을 닮아 당당한 첫째 딸과 시선을 따라 성을 바꾼 둘째 딸, 믿음직스럽지 못한 아들과 엄청난 독서가인 며느리, 가슴으로 낳아 깊은 사랑을 준 셋째 딸 그리고 개성 넘치는 손녀들과 내성적인 손자까지.


개개인의 입장에 따라 사회적인 사건이나 현상에 대한 생각은 다르겠지만 사회적 시선으로부터 유쾌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아낸 이들에게 빚을 지고 있음은 사실이다. 주인공처럼 인생을 살 수 있을까? 어떤 삶의 선택이 다른가? 우리 각자의 이름을 넣어 ‘OO으로부터,’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소설의 마지막 문장인 ‘세상을 뜬 지 십 년이 지나서도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의 조각이 우리 안에 있으니까.’에서 느껴지는 자부심은 우리에게 ‘자신의 삶을 살아라! 열정적으로’라고 전해주는 것 같다.


이은민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인문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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