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손가락

백성현 글 쓰는 아빠 / 기사승인 : 2021-03-09 00: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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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일기

새끼손가락을 다쳤다. 차마 말하기 민망할 만큼 아주 사소한 일로 오른손 새끼손가락 첫 마디가 구부러졌다. 그런데 마디 관절에 피멍이 든 채로 다시 펴지지 않았다. 신기한 경험이나 기분은 그리 좋지 않았다. 사실 어느 날 등허리가 간지러워 오른손으로 긁다가 그리 됐다. 웃프다.


잠시 내 몸에 이상이 오는 전조인가 싶었다. 가끔 허리 근육통으로 고생한 적이 있었다. 허리 쪽이라 그런 생각에 사로잡히곤 했지만, 금세 회복돼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그래서 평소와 같이 이번 일로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돌아오겠지 하며 마음 편히 가졌다.


며칠이 지나 아내가 자고 나더니 골반이 아프단다. 전날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처음엔 요가로 다져온 몸이라 별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아내는 참다가 더는 견딜 수 없어 결국 동네 정형외과를 찾았다. 의사의 말에 의하면 골반이 조금 틀어졌단다. 물리치료를 받으면 회복할 수 있다고 했다. 가벼운 진단이었지만, 평소 약골이라 몹시 걱정하던 참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병원을 찾은 김에 내 손가락도 어떤지 궁금했다. 아내 차례가 끝나고 의사에게 보였다. 그런데 의사의 예상 밖 진단에 적잖게 놀랐다. 골든타임이 지났단다. 말로만 듣던 ‘골든타임’이라는 단어를 여기서 듣고 보니 비장한 마음까지 들었다. 연세가 지긋한 의사는 그런 상태였다면 당장 왔어야 했다고 권위 섞인 언어로 내게 혼을 냈다. 막상 한 소릴 듣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가까운 날에 수술까지 해야만 했다. 수일이 지난 뒤라 장담할 순 없었지만, 손가락이 다시 펴질지 기다려 보잖다. 이제 세월에 반비례하듯 우리의 몸도 건강도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생각하니 씁쓸했다.


작은 손가락 하나에 석 달은 병원을 다녀야 했다. 그리고 하루아침에 한 손가락이 아닌 한 손을 못 쓰게 됐다. 당황스러웠다. 그냥 그렇게 살 걸 그랬나 싶었다. 이상하게 볼 사람은 있어도 내가 불편한 건 없었으니까.


수술 후 깁스를 한 채로 본업인 카페 일을 해야만 했다. 한 손에 의지해 커피나 음료를 제조하는 게 만만치 않았다. 부자연스럽고 우스꽝스러운 자세가 될 수밖에 없었다. 찾아온 손님들은 그런 나를 보며 한마디씩 거든다. “어쩌다 그랬냐”고. 그러면 나는 사실을 말할 순 없다. 그저 무거운 짐 들다가 그랬다고 둘러댄다. 다만 위로가 되는 건 손님들의 걱정하는 덕담이다. 매번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열 손가락 중에서 무게 중심을 엄지와 검지가 도맡아 왔다. 궂은일 마다하지 않고 척척 해내는 일꾼이다. 그들이 건재하는 한 생업에 문제는 없을 것이다. 반면 중지는 욕먹을 일이 많고, 약지와 소지는 주목받기 어렵다. 하지만 새끼손가락을 다치고 나서는 생각이 좀 달라졌다. 몸의 지체 증 하나라도 소홀히 대해선 안 된다는 걸 새삼 느꼈다. 자그마한 상처에도 온몸이 불편한 법이다. 그것은 한 몸의 일부이지만 전체이기도 하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가족뿐만 아니라 우연일지라도 인연이 닿아 관계 맺은 사람 모두 우리에게 소중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다양한 모양과 내용으로 서로를 만난다. 물론 우리는 서로 거리를 둘 순 있겠지만 소홀히 한다면 함께 살아갈 수 없다. 우리는 모두 한 생활권에서 인생을 가르치고 배우는 귀인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좋든 싫든 감사가 넘친다.


요즘 오른손이 쉬는 틈을 타 왼손이 열일 한다. 기능적으로 늘 오른손을 보조해 왔지만 이젠 젓가락 사용도 제법이다. 밥벌이도 최선이다. 제 일 못 하는 지체가 생기자 그 지체를 대신해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고마운 손이다.


백성현 글 쓰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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