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박호진의 ‘여직공 방문기’

백승아 기억과기록 회원 / 기사승인 : 2021-03-09 00: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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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기록

박호진은 여성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인 독립운동가다. 일제의 자본은 조선인의 값싼 노동력을 착취하며 막대한 이윤을 남겼다. 그중에서도 여성 노동자는 가장 싸게 구할 수 있는 노동력이었다. 조선인 여공들은 열악한 노동환경과 저임금에 시달렸고, 이에 저항하며 노동운동을 하기도 했다. 박호진이 본 일제시기 조선인 여성 노동자들의 모습은 어땠을까? 


박호진은 1906년 신의주에서 태어나 평양 숭의여학교를 졸업했다. 중국으로 유학 가서 남경 고등여학교, 광동대학, 금릉대학 및 상해 영어학교에서 공부했다. 이후 귀국해 독립운동 단체 활동에 뛰어들었다. 천도교 여성동맹 창립에 참여했고, 전국적인 여성 항일운동 단체인 근우회 본부 집행위원장 및 경성지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여성의 지위 향상을 주제로 수많은 전국순회강연을 하는 등 적극적인 운동을 펼친 인물이다. 울산에서도 1929년 6월 22일 울산여자청년회 주최로 울산청년회관에서 박호진의 강연회가 열리기도 했다.


근우회로 통합된 여성 항일운동은 여성해방을 통한 민족해방을 지향하며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한 운동을 전개했다. 특히 박호진은 여성노동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성차별이 생긴 것은 경제적 권리가 남성에게만 있기 때문이며 경제적 역할분담의 재분배를 통해 성차별을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당시 농업과 공업 분야에서 수많은 여성 노동자가 일하고 있음에도 이들의 노동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함을 지적했다. 


근우회에서 발간한 잡지 <근우> 제1호에는 박호진 쓴 ‘여직공 방문기’가 실려 있다. 직접 여성 노동자가 많이 일하는 서울 고무회사, 조선제사주식회사, 조선견직주식회사, 영광정미소를 찾아가서 그 실태를 조사하고 소개한 것이다. 


서울 고무회사는 조선인이 경영하는 조선 제일의 고무공장이었다. 15세~40세의 여공 120여 명이 일하고 있었다. 겨울에는 얼어 터진 손등으로 고무신을 풀로 붙이고 망치로 두들겨야 했다. 여름에는 더위에 고무 냄새와 기계의 열기가 더해져 질식할 듯한 공기 속에서 온몸이 땀띠로 뒤덮이며 고무신을 만들었다. 조선제사주식회사는 14세~20세의 어린 여공 500여 명이 일했다. 매일 12시간의 고된 노동과 저임금에도 어린 소녀들은 펄펄 끓는 고치가마 앞에 앉아 있어야 했다. 이곳의 여공 200여 명은 기숙사에서 지냈는데 온돌방 1칸에 70~80명이 함께 지냈다고 하니, 그 열악함을 상상하기도 어렵다. 제사공장 옆에 있는 조선견직주식회사에는 90여 명의 여공이 일하고 있었는데, 12시간 동안 앉지 못하고 온종일 서서 일해야 했다. 영광정미소는 가장 비위생적인 곳이었다. 쌀그릇을 안고 앉아서 얼굴, 손, 온몸이 쌀겨에 묻혀서 일하지만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의 적은 임금을 받아야 했다. 


박호진의 조사보고에 따라 근우회는 ‘노농부’를 신설하고 계몽운동과 노농운동을 펼쳐 나갔다. 노동여성, 농민여성에 관해 크게 관심을 갖고 노동조건 개선과 인권수호를 행동강령으로 삼았다. 부산에서는 여공조합조직을 구상했으며, 1930년 1월 조선방직여공들이 파업했을 때 근우회 부산지회가 이를 적극 지원했다. 때문에 일제 경찰의 감시대상이 돼 회원의 활동이 저지당하거나 활동 중 경찰에 잡혀가서 고초를 겪기도 했다. 


박호진의 ‘여직공 방문기’는 식민지의 국민이 받는 차별에 성차별이 더해져 복합적인 차별에 던져져 있었던 여성 노동자들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가부장제 가족구조 속에서 부당한 대우에도 참고 견디는 것을 미덕으로 배운 어린 소녀들은 내몰리듯 나간 사회 속에서도 같은 위치에 있었다. 이런 다층적인 취약성은 독립운동의 역사에서 그들의 모습을 흐릿하게 만들었다. 흐릿한 모습을 포착하기 위해 굳이 그들을 찾아가서 기록한 박호진의 노력처럼, 독립운동의 역사에서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운동, 항일운동의 모습을 굳이 찾고 기억하려는 지금의 노력이 필요하다.


백승아 기억과기록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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