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

신미옥 울산고운중학교 교장 / 기사승인 : 2021-04-28 00: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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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톺아보기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그 누구라도 어떤 자리에서 이 세상을 살아간다. 사회적 존재이기도 해서 그럴 것이다. 사회적 존재라는 말은 사람 속에서 사람과 ‘관계 호흡’으로 사람다운 생명이 유지된다는 말이겠다. 관계의 한 올이라도 꼬이면 관계망으로 이어져 있던 사람 올올이 서로 엉키어 든다. 엉킨 관계는 삶을 무겁게 만들고 왜곡시키며 결국에는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생애에 새겨진 상흔은 대대손손 견고하게 이어진다. 무섭도록 끈질기다.


이십 대 후반에 첫아이를 낳았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어떤 부모여야 하는지 배운 적도 없고 내 안에 이미 저장된 믿을 만한 정보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도 걸어가지 않은 낯선 길 앞에 막막하고 무서웠다. 어찌해야 하나. 할머니 할아버지의 ‘인자한’ 품에서 자라면 안심이 될 것 같았다. 그때는 부모로서 최선이 아이에게도 최선이라 굳게 믿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내가 살아가는 동안 내내 풀어나가야 할 부모 자리 내 몫의 숙제였다. 첫 아이를 키우는 것은 정답이 따로 없는 문제였다. 잘못될까 불안하고 제대로 못 할까 초조했다. 엄마 자리에 선 나는 아이를 쉽게 꾸중하고 자주 야단쳤다. 아이는 티 한 점 없는 맑은 눈물로 자주 용서를 빌었다. 때로 떼를 쓰고 고집을 부렸다. 한 번씩 하고 싶은 것을 몰래 하기도 했다. 가끔 야단맞지 않는 동생을 시켜 원하는 것을 얻기도 하며 자랐다. 그렇게 좌충우돌하며 엄마가 돼 갔다. 


인생의 바닥에 다다른 날이 내게도 왔다. 엄마이니 마냥 바닥에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아이가 보고 있으니. 어떻게 살아야 조금은 나아질까 고민하는 시간이 깊었다. 첫아이가 초등학교 삼학년 때 심리상담소에서 꾸리는 부모교육을 받기로 했다. 부모 자리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비로소 내면에 각인된 아픔도 만나 어린아이같이 목놓아 울었다. 나도 모르게 저질렀던 어리석음도 마주했다. 그러고 나니 아이가 받았을 상처가 조금씩 보였다. 아이의 무의식에 새겨졌을 아픔을 생각하니 뼈아팠다. 뒤늦은 후회란 얼마나 쓸모가 없는지, 어리석음 그 자체가 어떻게 죄일 수밖에 없는지 마주했다.


봄 학기에 우리 학교에서는 고운 빛 학부모 교실을 연다. 어머니 교실은 사월부터 칠월 초순까지 한 달에 두 번씩 일곱 번을, 아버지 교실은 한 달에 한 번씩 네 번을 마련했다. 어머니 교실에는 동방심리상담소에 몸담고 있는 전문가를 섭외해 ‘내면의 아이’라는 제목으로 ‘부모교육기초과정’을 진행하고. 아버지 교실은 울산어린이책시민연대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를 섭외해 ‘삶에 질문이 있는 그림책과 바느질’이라는 제목으로 모험을 시작했다. 같은 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이 모여 나누는 이야기는 서로에게 힘으로 작용하리라. 건강한 ‘관계 호흡’을 도와줄 사람이 둘레에 있어 배움의 자리를 꾸릴 수 있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그것은 아마 부모 자리가 만만한 자리가 아님을 누구나 알고 있고 그만큼 귀하고 값진 자리라는 것을 기꺼이 동의하기에 가능했으리라. 먼저 걷고 있는 이 길 위에서 뒤에 걸어오고 있는 부모가 된 어른을 응원하는 마음이고, 이곳의 아이들이 곱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한 아이가 이 세상에 비로소 태어나 저만의 어떤 자리를 잡는다는 것은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우리 아이가 타고난 모습을 한껏 드러내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큼 부모가 기뻐할 일이 달리 또 있을까?


신미옥 울산고운중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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