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트초코(mint choco tea)

정온진 글 쓰는 탐험가 / 기사승인 : 2021-09-11 14: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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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와 함께

디저트와 음료에도 유행이 있다. 작년까지는 흑당이 유행의 선두주자였다면, 올해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단연 ‘민트초코’다. 아이스크림이나 음료, 제과는 물론 주류에도 등장했으며, 식음료와는 관계없는 화장품이나 생활용품 등에서도 인기다.


내가 민트초코를 처음 만난 건 무려 18년 전, 민트와 초코의 조합이라고는 서른한 가지 맛 아이스크림을 파는 그곳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대략 십 년 전쯤에는 디저트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알음알음 찾아가는 민트초코 맛집이 생겼고, 민트초코 음료가 출시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민트초코는 매니악한 소수의 취향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 동네의 아무 편의점만 가도 민트와 초코의 조합으로 나온 상품들이 즐비하다. 그리고 그 인기와 함께 문화적 현상으로 자리 잡은 것이 있으니 바로 ‘민초단 VS 반민초단’ 밈이다. 


사실 18년 전에도 민트초코를 두고 ‘먹을 것이 없어서 치약을 먹냐’는 박해(?)가 존재했다. 돌이켜보면 그때는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마다 서로 웃으며 투닥거릴 수 있는 놀이이자 농담거리였다. 그런데 요즘은 단순한 밈을 넘어서 사회적 가치판단의 한 가지 기준이 된 것만 같다. 


점심을 먹던 중에 민초단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한 동료가 장난인지 진심인지 헷갈릴 정도로 진지하고 격앙된 어투로, “민트초코는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혐오스러운 음식”이라며, 마치 독립운동이라도 하듯 결연한 태도로 반민초파임을 선언했다. 그리고 민초단을 힐난했다. 그저 온라인상의 밈에 불과하다고 여겼는데 그 동료의 태도와 발언으로 나는 매국노라도 된 기분이었다. 


SNS에서는 9살짜리 조카가 유튜브를 보고 민초단을 향한 혐오표현을 해서 충격이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또 편의점에서 어린 학생 두 명이 민트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친구에게 면박을 주고 편가르기하는 모습을 본 적도 있다. 


온라인에서도 온라인 밖에서도 ‘민초파 VS 반민초파’는 ‘찍먹파 VS 부먹파’와 함께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 것 같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것이 밈으로 포장된 혐오표현으로 자리 잡은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런 혐오표현이 장난스럽게 포장돼 쉽게 쓰이기 때문에 어린아이들이 그런 방식으로 사고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게 될까 걱정이다. 한 가지 기준으로 이쪽과 저쪽을 나누고, 나와 다른 것을 혐오하는 것. 


이미 많은 ‘어른이’가 어떤 것을 혐오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있고, 혐오 자체가 하나의 감정표현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혐오’라는 단어 자체가 그저 약간 가벼운 자기표현이 된 것 같다. 민트초코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으로 내 가치관과 정체성이 뚜렷해지고, 그것이 다른 이에게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우리는 이미 혐오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말 많은 것을 혐오하고 서로를 ‘극혐’한다. 그냥 ‘싫다’, ‘좋아하지 않는다’와 달리 혐오에는 나와 다른 것에 대한 ‘배척’이 있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음이 깔려있다. 그런데 왜 그것이 하필 민트와 초콜릿이고 탕수육의 소스를 부어 먹고 찍어 먹는 취향의 문제에서 나타날까? 민트초코는 그저 식음료에 불과한 하나의 취향일 뿐이다. 먹고 사는 문제와도 관련 없고, 도덕성이나 준법정신처럼 옳고 그름의 문제도 아니다. 그저 모두가 다 다른 것뿐이다. 


현대사회에서 계속해서 추구해온 가치는 다양성과 다변화다. 그런데 왜 내 취향까지 꼭 남에게 인정받으려 하고 남의 취향까지 내가 검열하려 들며 획일화를 꿈꾸는 걸까.


사실 강경 민초파인 나도 처음 민트초콜릿칩 아이스크림을 먹었을 때는 반민초단의 반응과 다르지 않았다. 그 조합이 솔직하게 말해 너무나도 오묘했다. 달콤하고 따뜻한 느낌의 초코와 입안이 시원해지고 개운해지는 민트라니. 낯설고 오묘한 느낌이 불편하고 싫다는 느낌으로 귀결됐던 것 같다. 그런 내가 민초단이 된 것은 한 잔의 차 덕분이었다. 


코끝에선 화 입안에선 후 때론 달콤하게 때론 시큰하게–MARIAGE FRÈRES:Choco menthe
어느 카페에서 주문 실수로 만나게 된 홍차, 맑고 연한 호박색의 찻물에 쏴한 박하 향과 달콤한 초콜릿 향이 코에 닿았을 때 적잖이 당황했다.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조합인데 갑자기 끌렸다. 


조심스러운 한 모금, 아주 은은한 홍차향 위로 멀리서 불어온 바람 끝에 매달린 시원한 박하 향과 뒤에 따라오는 초콜릿 향. 


이 차는 언제 마셔도 늘, 나를 봄바람이 부는 들판으로 데려다준다. 바람이 불 때마다 멀리 피어 있는 민트의 향이 옅게 스치고 봄바람의 따뜻하고 또 시원함을 느끼며 초콜릿 한 조각을 입안에 물고 있는 듯 달콤함과 청량함으로 기분 좋게 한다.


나는 이 차를 마신 이후로 대부분의 민트와 초코의 조합을 좋아하게 되었다. 홍차를 마시기 시작하면서 얻게 된 좋은 삶의 태도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새로운 것에 대한 시도다. 


동양의 차 문화와는 달리 서양의 차 문화는 무엇이든지 섞고 보는 경향이 있는데, 그들의 실험정신 덕분에 나는 차를 마시면서 온갖 향신료와 식재료를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도대체 왜 이런 걸 섞을 생각을 한 거지?’ 싶은 조합들도 막상 시도해보면, 신기하게 어울리고 새로운 맛의 세계를 알게 한다. 홍차가 좋아서, 다 마셔보고 싶어서 하게 된 시도들은 새로운 세계를 열어줬고, 내 세계를 아주 조금 확장해줬다. 


취향에 대해서 ‘훌륭하다’, ‘형편없다,’ 이런 가치판단을 내릴 필요는 없다. 어떤 것을 좋아할 수도 싫어할 수도 있다. 그냥 그저 너는 그렇구나. 나는 이렇다. 있는 그대로 그냥 그렇구나하고 넘어가면 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고 그래서 어떤 것을 선택했는지가 나를 정의하고 나라는 존재의 한 부분을 이루는 것은 맞지만, 그것은 결코 다른 사람의 판단이나 인정이 필요한 영역이 아니다. 다만, 다양한 선택지들에 대해 가능하다면 도전하고 시도해봤으면 좋겠다. 좋고 싫은 것은 언제든 뒤바뀔 수 있다. 자신의 세계가 확장될 기회를 스스로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분 좋은 날, 이상한 조합의 차 한 잔 시도해보는 걸 어떨까? 실패해봤자 그저 차 한잔일 뿐인데.


정온진 글 쓰는 탐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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