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아르헨티나의 1976년 쿠데타를 모두 알고 있었다”

원영수 국제포럼 / 기사승인 : 2021-03-31 00: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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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 2017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오월광장 어머니회 집회. 피켓 숫자는 독재 정권에 의해 사망한 3만 명을 의미한다. ©EFE

3월 24일 아르헨티나는 1976년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지 45주년을 맞았다. 미국 정부의 국가안보 문서고(NSA)에서 기밀 해제로 최근 공개된 문서들에서 미국 정부가 호르헨 비델라 장군의 쿠데타 계획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당시 미국 국무장관인 헨리 키신저는 “우리는 당신들이 성공하길 바라며… 친구들은 지지를 받아야 한다. 당신들이 더 빨리 성공하면 할수록 더욱 좋다”는 말로 쿠데타를 지지하고 격려했다.


공개된 케이블 문서는 미국의 아르헨티나 대사인 로버트 힐이 서명했는데, 힐 대사는 쿠데타 기획자인 에밀리오 마세라와 만났다. 마세라는 1976년 3월 24일 구테타로 수립된 군사평의회의 위원이 됐다.


힐은 “미국 대사관은 제3자를 통해 은밀하게 아르헨티나 군부에 미국이 아르헨티나의 새 정부를 승인할 것이란 메시지를 보냈다”고 적었다. 


공개된 문서로 당시 국무부 차관인 윌리엄 로저스가 2월 중순에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이 참석한 백악관 국가안보협의회(NSC)에서 정권 전복 계획을 브리핑한 사실이 확인됐다. 로저스는 “군사정부는 미국에 우호적이겠지만, 게릴라 소탕을 가속화하는 과정에서 인권침해 행위를 저지를 것이며 이로 인해 국제적으로 비판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쿠데타 12일 전에 CIA 요원들이 반공주의로 악명높은 공화당의 제시 헬름스 상원의원을 동행해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방문했다. 대사관 전문을 통해 비델라 장군이 쿠데타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홍보 측면에서 헬름스의 조언을 기대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힐 차관은 “쿠데타가 일어날 때 내가 아르헨티나 국외에 있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미국 대사관과 미국 정부가 쿠데타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발언했다.


아르헨티나의 군사독재는 1983년까지 계속됐고, 3만 명이 실종됐으며 거의 500명이 부모에게서 납치돼 군인 가정에 입양됐다. 1979년 범미주 인권위원회의 조사단이 아르헨티나를 방문했을 때 납치, 고문, 살해에 관한 5580건의 진정이 접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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