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인간실격>(2)

최미선 시민인문학교 교장 / 기사승인 : 2021-06-09 00: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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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TV 지상중계

인문숲 시즌2-방황

 

▲ 백성현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인문강사(왼쪽)와 최미선 시민인문학교 교장(오른쪽)

 

츠네코와 자살을 감행하다

최미선=요조의 인생에 등장하는 세 명의 여인이 있습니다. 그 여인들 하나하나가 너무도 안쓰럽고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사람들입니다. 첫 번째 여자는 10대 유부녀인 츠네코입니다. 술집 접대부죠. 같이 동반자살을 시도하지만 결국 츠네코만 죽습니다. 츠네코와 요조는 어디 기댈 데가 없는 외로운 우울한 인간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둘이 끌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백성현=츠네코는 요조의 첫사랑인 셈입니다. 요조와 츠네코는 같은 10대죠. 힘든 시기에 둘이 만났습니다. 요조는 집안의 압박이 심해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고, 츠네코는 옥에 갇힌 남편의 옥바라지를 하며 카페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몸도 고생이지만 둘 다 외로움, 쓸쓸함에 힘들어하고 있었죠. 특히 그녀는 누구를 보호할 입장이 아니라 보호받아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츠네코는 요조를 만난 후 더 이상 남편의 옥바라지를 하지 않았습니다. 요조에게 희망을 걸고 싶었을 겁니다. 그에게서 경제력을 원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요조는 하지 말아야 할 말(남자는 돈이 없으면 끝)로 그녀의 마음을 거절합니다. 남자답지 못한 말이었죠.


그러고 난 후 동반자살을 결행하죠. 물론 해선 안 될 일이죠. 이 일로 요조는 살고, 츠네코는 죽습니다. 요조는 죽고 싶었던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듭니다. 그런데 이 일로 상황은 더 나빠졌습니다. 집안의 수치스러운 일이었기에 아버지는 아들의 호적을 팔 기세입니다. 요조는 그녀를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요조의 미성숙함이 만든 일이죠.

시게코의 아빠가 되다

최미선=두 번째 여자는 딸을 키우고 있던 시즈코입니다. 시즈코와 딸이 다정하게 있는 모습을 보고 ‘나만 없다면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에 도망쳐 나옵니다. 


백성현=시즈코의 집에서 나오기 전에 요조와 시즈코의 딸이 함께 그림을 그리며 대화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다정한 모습이죠. 그냥 봐도 아빠와 딸이 노는 장면입니다. 저는 이 부분을 흥미롭게 봤습니다. 요조는 시게코에게 소원이 뭐냐고 물었죠. 딸은 아빠가 있으면 했습니다. 그런데 시게코는 집에서 이미 요조를 보고 아빠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요조는 무슨 마음이었는지 집에서 바로 나옵니다. 요조는 자신의 아버지가 먼저 떠올랐을 겁니다. 시게코의 아빠가 된다면 자신의 아버지처럼 되지나 않을까 덜컥 겁이 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좋은 아빠가 될 수 없다는 자괴감이 들지 않았을까요?


술을 마시고 그 집으로 다시 돌아왔지만 시즈코와 딸의 대화를 엿듣고 그 길로 아주 나와 버립니다. 둘의 모습이 행복해 보였습니다. 요조의 뇌피셜을 들여다보면 자신은 둘의 행복을 방해할 것만 같았겠죠. 아주 살짝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았을 겁니다.

요시코가 위험하다

최미선=세 번째 여자는 담배가게 아가씨 요시코입니다. 가장 논란이 되는 장면의 주인공이죠. 바로 자신과 잘 아는 아오키가 요시코를 성폭행하는 장면입니다. 자신의 아내가 성폭행을 당하는데도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습니다. 옥상에 올라가 그 이후로 세상의 모든 기쁨 등으로부터 멀어졌다는 한탄을 합니다. 그 어디에도 아내 요시코에 대한 염려나 배려가 없어요. 


백성현=요조는 좀처럼 성장하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쌓이면 철이 들게 마련이죠. 과거 자신의 순수와 순결을 짓밟혔을 때, 자신을 지켜줄 곁이 없었던 그때를 거울삼아 아내의 곁을 지키고 위로했어야 했습니다. 이때 요조는 강간을 당하고 있는 아내 요시코를 분명 자신의 아내로 보고 있었던 게 아닙니다. 그랬다면 몽둥이라도 챙겨서 그 사람을 때리고 내쳐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줘야 했습니다. 어쩌면 요조의 마음과 생각에는 관심 없는 과거 아버지의 눈으로 보는 것처럼 아내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계속되는 여인들과의 파행을 보면서 요조가 아버지와 많이 닮아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양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요조를 보며 실망합니다.

호리키와 동무가 되다

최미선=호리키라는 친구가 등장합니다. 이 친구는 어떤 인물인가요?


백성현=요조에게 있어 호리키는 인연이라 말할 수도 악연이라 말할 수도 없죠. 하지만 요조의 인생에 중요한 인물인 것은 사실입니다. 호리키와의 인연은 5엔을 빌려주면서 시작됩니다. 호리키 역시 요조와 마찬가지로 익살꾼입니다. 하지만 익살 외에 많은 가면을 가진 멀티 페르소나의 소유자라 볼 수 있죠. 요조 앞에선 호인인 척, 시즈코 앞에선 신사인 척, 엄마 앞에선 효자인 척, 마담 앞에선 호색남인 척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죠. 상황에 따라선 자신의 욕망을 감추지 않습니다. 요조와 호리키 둘 다 겉과 속이 극명하게 차이를 보이는데요. 음흉한 자신의 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일본인의 자화상을 보는 듯하죠.


최미선=호리키는 또 다른 자아로 여겨졌습니다. 요조가 갖고 있던 욕망과 퇴폐를 여지없이 드러내주는 자아. 호리키가 유혹했다고는 하지만, 요조는 이미 유혹될 준비가 돼 있었어요.


백성현=어른이 되는 길목에서 요조가 익살이라는 가면만으로 세상을 살기엔 부족해 보입니다. 새로운 가면이 필요한 시점에서 요조는 호리키를 만난 셈이죠. 호리키는 친절한 사회 선생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호리키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술과 담배, 여성을 알게 되죠. 어느새 호리키의 도움 없이도 그 문화에 차츰 젖어 들었습니다. 요조 역시 욕망을 숨기지 않는 대담함을 보입니다. 술에 의지한 것이겠지만 아버지로 인한 상처와 좌절을 잊는 데에 도움이 됐을 겁니다.


최미선=요조의 방탕한 생활에 대한 호리키의 경고에 요조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독백으로도 들립니다. 


백성현=호리키와 요조는 동류의 인물이죠. 어느 쪽이 더 속되다 나쁘다 말할 수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던지는 비아냥대는 말들을 사용하는 걸로 보아 서로 다르지 않은 인물이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 침 뱉기죠.

인간 실격이 되다

최미선=정신병원에 입원한 후 요조는 자신이 인간 실격이 됐다고 말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인간 실격이 됐다고 생각했을까요?


백성현=어떤 사람들이 정신병원에 가는 걸까요? 물론 심한 우울증을 앓거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 들어가겠죠. 그런데 여기서 요조가 정신병원에 감금된 것은 요조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었습니다. 또 다시 자살 소동으로 인해 더는 참을 수 없었던 아버지를 대표한 집안의 결론이었겠죠. 아버지의 입장에서 보면 요조는 집단생활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수많은 관계로 얽혀있는 집단생활에선 공동이 이뤄내야 할 꿈과 이상이 더 중요한 법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조는 문제적 인물입니다. 그리고 요조는 정신병원에 갇힘으로써 스스로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여지가 사라졌습니다. 그곳은 자신의 의지가 발현될 수 없는 곳이죠. 그곳이 아니라면 도망이라도 쳤을 텐데 더는 할 수 없게 됐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의지가 발현될 수 없는 상태가 바로 ‘인간실격’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최미선=인간실격이라는 말은 인간적격이라는 말을 전제로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인간이 인간적격이란 말인가요?


백성현=앞서 말한 것과 반대로 말하면 되겠죠. 자신의 의지가 발현되는 삶, 다시 말해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라 말할 수 있겠죠. 우리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반드시 독립이 선행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토록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고자 했지만 벗어나기엔 요조의 무력한 자아를 발견합니다.
최미선=선생님은 적격한 인물인가여?


백성현=실격과 적격을 오가며 그 경계를 넘나들고 있는 사람이겠죠.

<인간실격>은 왜 인기가 있을까

최미선=이 책이 왜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백성현=소설 <인간실격>은 패전으로 인한 방황과 혼란을 겪는 일본인의 자화상을 은유적으로 잘 표현한 작품입니다. 기존 질서와 세계에 억눌린 세대들의 방황과 갈등은 오늘날 청년들과 맥을 같이 합니다. 그래서 청년들에게 많이 읽히는 건 아닐까요? 다소 퇴폐적인 장면과 잦은 자살 이야기로 인해 청소년을 독자로 유도하는 것은 아쉽지만 좋은 소설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최미선=<인간실격>을 모티브로 한 다른 작품들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백성현=일본은 특히 애니메이션 강국이라 <인간실격>을 모티브로 한 애니메이션 작품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끄럼 많은 생애를 살았습니다’를 패러디 한 작품들이 많다고 하죠.


최미선=다자이 오사무의 다른 작품을 소개해 주세요.


백성현=<인간실격>을 읽고 난 후 다자이 오사무의 다른 작품이 궁금했습니다. 그중에서 눈에 띄는 작품이라면, 다자이 오사무를 일본 최고의 작가로 만든 작품, <사양>이라 할 수 있겠죠. 발표가 1947년이니까 <인간실격>이 발표되기 1년 전 작품입니다. <인간실격>과 마찬가지로 패전 이후를 맞은 일본인의 자화상을 그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 속에 자살이 많이 등장하는 것은 그의 성정 때문이라 생각됩니다만, 젊은 독자층을 위해 좀 아쉬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최미선=이 책에서 가장 감명 깊은 부분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백성현=단연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이 아닐까 싶어요. ‘부끄럼 많은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이 두 고백은 서로 쌍벽을 이루는 문장이기도 하면서 이 책의 주제이기도 하죠. 인생을 다 살아야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요조와 같은 삶은 아니겠지만 우리 역시 같은 고백을 하게 될 확률이 높지 않을까요? <인간실격>의 요조는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거울과 같은 존재입니다.


최미선 시민인문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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